몇 년 전 어느 추운 겨울, 시댁의 김장날이었습니다. 안절부절못하던 저는 어머니께 조심스레 말씀드렸습니다. ‘저, 어머니. 저 글 좀 쓰고 올게요.’ 그리고는 곧장 카페로 향했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려서 그 두근거림을 이기지 못하고 거의 뛰듯이 걸었습니다. 그날은 미약하지만 내 꿈에 대해 당당히 말하고 그에 대한 노력을 처음으로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사실 그날 아침에서야 김장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내가 세웠던 원래 계획대로 할 것이냐, 김장을 도울 것이냐. 그 날은 미리부터 내 꿈을 위한 첫걸음을 시작하는 날로 정해 둔 날이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다이어리에 디데이를 적어놓고 꿈에 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 무엇보다 나의 꿈을 우선순위에 두기로 결심했습니다. 저의 꿈은 작가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 아침을 챙기고 매일 오전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시작이 김장 날과 겹칠 줄이야. 하지만 김장이라고 그것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계획을 실행하러 시댁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냥 눌러앉아 김치를 버무릴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꿈을 위해 첫발을 내딛는 시작부터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김장은 매년 하겠지만 제 꿈의 시작은 다시없을 것이니까요. 지금 주춤하면 왠지 패기가 꺾일 것 같은 기분에 용기를 내어 시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시부모님은 좋으신 분들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며느리가, 그것도 전업 작가도 아닌 며느리가 김장을 마다하고 글을 쓰고 오겠다고 말하는 것을 받아주시는 것은 시어머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했고 다행히 승낙을 받았습니다.
그 용기는 비움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비움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자 저는 이전과 많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세상에 살았던 전업주부가 김장을 마다하고 시댁에서 도망쳐 나와 카페로 가서 글을 쓰다니.
비움은 나에게 이런 강단을 주었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하게 해 준 것입니다. 비움은 내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판단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했습니다. 과거의 나라면 꿈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미루고 김장을 도와드렸을 것입니다. 김치를 버무리는 동안 정신은 딴 데가 있으면서도 그 자리를 지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당히 요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 꿈을 위한 시간, 2시간만 주세요!" 하고.
제가 몸담고 있는 ‘미소의 미니멀라이프 연구소’의 로고를 만들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로고를 만드는 동안 디자인 전문가와 작업을 진행하면서 의견을 나눌 때마다 번호를 매겨가며 원하는 바를 조목조목 알렸습니다. 스스로 조금 깐깐하다 싶기도 했는데 상대편에서 이렇게 피드백이 돌아왔습니다.
“대표님은 원하시는 게 정확해서 작업이 너무 편합니다!”
순간,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명확한 사람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향적인 성향인 저는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제가 많이 변했습니다. 물건을 비우기 시작한 지 어느덧 5년 차. 비움을 할 때마다 계속해서 자신에게 질문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 가치관은 무엇인지 돌아보다 보니 이렇게 원하는 게 명확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비움은 나에 대한 공부입니다. 내면 공부는 어느 곳을 가나 빛을 발합니다. 살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려야 할 때가 찾아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어떤 것으로 타인을 도울 수 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나의 욕구와 타인의 욕구의 접합점이 생길 때 자신의 영향력이 커집니다. 우리는 의외로 타인의 욕구와 대중적인 트렌드에는 관심이 많으나 자신의 욕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타인의 욕구만 쫓다 보면 허망한 삶이 됩니다. 자신을 찾아갈수록, 자신을 세상에 알릴수록 비움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움을 통해 내 안의 소리를 명확히 듣고 행동하면 많은 부침이 있더라도 계속 나아갈 수 있습니다. 비움은 자신의 비전, 가치관, 취향이 명확한 사람,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만들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