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 Day-77

고통의 총량

by SUN KIM

어떤 이가 인생에 고통의 총량이 있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인생 전체를 봤을 때 우리가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의 종류는 정해져 있다. 소중한 이의 죽음은 누구나 경험한다. 언제 겪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실패도 누구나 경험한다. 어느 정도의 크기냐와 언제 겪느냐가 다른 뿐이다.

하지만 유독 인생에 굴곡이 많다거나 안 좋은 일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대인관계에서 안 좋은 일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인관계의 어려움은 어릴 적 상처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 용어로는 불안정 애착 관계에서 파생된 어려움일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마음이 많이 아팠던 이는 마음의 고통이 있어야만 정상처럼 느낀다. 그래서 행복하기만 한 상태가 불안하고 어색하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받는 걸 어색하게 여긴다. 사랑을 받는 그 상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왠지 불편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같고 불안해한다. 겁이 나는 거다. 익숙하지 않은 그 사랑이 금방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고, 미리 밀어내기까지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익숙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마치 자기 마음에 채워져야 하는 고통의 일정량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이들이 변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있던 자리에 사랑과 행복이 가득 채워지는 경험이 필요하다. 변하지 않는 사랑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고통의 자리에 자꾸만 다른 종류의 고통을 채워 넣으려는 무의식적인 선택을 한다. 가령 학대받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폭력적인 애인을 선택하는 것처럼. 끝내 자신을 괴롭혀야만 정상인 것처럼 느끼는 안타까운 현상이다.

이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라"거나 "자신을 아껴라"라는 말은 그다지 소용이 없다. 그렇게 사랑받아 본 적이, 아낌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보지 않은 것은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부모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사랑을 어디서 배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들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부모상이다. 육적인 부모가 아닌 영적인 부모를 구해야 한다.

완전한 사랑을 경험하면 더 이상 고통스러운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안다. 편안하고 아늑한 상태가 진짜임을 체험하면, 마음이 필요한 고통의 총량이 줄어든다. 그렇게 마음에 구멍이 줄어들면 새로운 사랑을 할 수가 있다. 자신을 괴롭히지 않아도 되는 사랑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흔히 자존감이 낮다는 말은 이 말과 다르지 않다. 자존감이 낮다는 말은 '난 이 정도 행복도 과분해'라고 스스로 선을 긋는 일이다. 그 선을 넘는 일이 일어나면 불편하고 불안해서 얼른 그 선 아래로 내려가는 선택을 한다. 자존감을 높이는 일은 그 선을 높이는 일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가장 좋은 일은 선 자체를 없애는 일이지만 조금씩 자신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의 수준을 높여가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단순하다. 보지 듣고 배우지 않은 건 행할 수가 없다. 의식적으로라도 좋은 것을 보고 들어야만 기본적인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익숙하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조금은 어색하더라도 밝고 좋은 쪽으로 자꾸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그렇게 괴로움의 총량을 줄여나가야 한다. 그래야 더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에 조금 더 익숙해질 수 있다.


[제목: 자신만 아는 고통의 총량]


2019년 05월 09일 목요일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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