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커피 한 잔의 온도[6화]

6화. 반지하방의 밤

by 선비천사

6화. 반지하방의 밤


그날 밤, 선호는 잠들 수 없었다.

천장을 바라봤다. 물 얼룩이 희미하게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자꾸 떠올랐다. 그녀의 미소.

웃었어. 나한테 웃었어.

선호는 이불을 끌어안고 옆으로 누웠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멈출 수 없었다. 혼자 방에서 피식 웃고 있다는 게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미쳤나 봐. 그 미소가 뭐라고.

찰나였다. 1초? 2초? 아니, 그보다 짧았을지도 모른다. 눈이 마주치고, 살짝 웃고, 시선을 돌렸다. 그게 전부. 그런데 왜 심장이 이렇게까지 뛰는 걸까.

선호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아직도 두근거렸다. 몇 시간이 지났는데. 도서관에서 집까지 오는 동안에도, 라면을 끓여 먹는 동안에도, 샤워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두근. 두근. 두근.

선호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진짜 미쳤다. 서른 살 먹은 남자가 이름도 모르는 여자한테 이러고 있다니. 하지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기분 얼마 만이지.

기억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누군가 때문에 가슴이 뛴 게 언제였는지. 대학 때? 아니, 그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건 뭘까. 설렘? 그 단어가 맞는 걸까.

선호는 다시 천장을 봤다. 물 얼룩이 웃는 것 같았다. '야, 너 지금 완전히 빠졌다?' 그렇게 놀리는 것 같았다.

선호는 피식 웃었다. “그래, 빠졌나 봐.”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 * *


새벽 두 시.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선호는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서랍을 열었다.

캔커피 빈 캔들. 열네 개.

하나하나 모아뒀던 것들. 선호는 캔 하나를 집어 들었다. 빈 캔은 가볍고 허전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겼던 마음은 무겁고 따뜻했다.

왜 이런 걸 주는 걸까.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나 같은 사람한테. 매일 지친 얼굴로 책만 들여다보는, 어딘가 허름해 보이는 남자한테. 왜.

선호는 캔을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반지하 창문으로는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검은 벽과 가로등 불빛 일부만 보일 뿐.

그녀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자고 있겠지. 예쁘게 자고 있겠지. 그 생각만으로 미소가 났다. 내일도 보고 싶다.

선호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으면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선명하지 않았다. 먼 거리에서만 봤으니까. 하지만 윤곽은 알았다. 긴 머리, 밝은 옷, 조용한 분위기.

내일은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

그 작은 바람을 안고. 선호는 겨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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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커피 한 잔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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