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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Mar 11. 2023

60. 진정한 자기애란 내 관심을 하나님과 타인으로 옮

성경에도 나와있듯 주님이 주신 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가장 관심이 많고 모든 것이 내 중심인 현대사회를 살고 있다. 교육도 사회도 모두 나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한다. 나르시시즘.


당대 미소년이었던 나르키소스는 한 요정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 요정이 요정이 복수의 신 네메시스에게 빌어 나르키소스는 샘에 비친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결국 물속에 비친 자신을 잡기 위해물에 빠져 죽게 된다. 자신에게 사랑에 빠져 물에 빠져 죽고 만 나르시스의 이야기는 자기중심만을 강조하는 요즘 세태와도 연관이 된다.

물질문명의 현대 사회에서 이렇게 풍족한데 자살률이 더 높아 가고 있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들이 가진 문제들 전체를 깊이 들어가다 보면 결국에는 그들 모두 이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타인과 비교했을 때, 내가 가장 잘나고 중요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으니 우울하고,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중심이 되니 질투가 난다.

이 세상은 “너 자신을 사랑하라!” 는 메시지로 가득 찬 세상이다. 그 메시지로 광고해 물건을 팔고 그것들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시키고 일을 시킨다. 자유가 아니라 너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런 이런 이런 조건들이 있으니 이 많은 것들을 갖기 위해 죽도록 공부하게 하고 일하라고 다그친다. 나만 사랑하는 순간, 남들과 경쟁하게 되고 자유를 빼앗기게 된다. 그렇게 죄의 종노릇을 하게 된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빠져 죽는 나르시스와 같다.


모든 짜증과 화는 이렇게 자기중심이 될 때, 나오는 괴팍한 감정들이다. 자기 연민도 그 밑바닥에는 자기가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것에서부터 기인된다. 결국 자기애란 자기 마음의 주인이고 자신이 하나님이다는 마음이다. 더 문제는 현대 사회는 점점 더 자기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서적과 강의들이 즐비해 있다는 것이다. 매일 생활 전반에 거쳐 점점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잖아도 죄성을 가진 모든 인간들이 갖고 있는 나르시시즘에 그것을 더 부추기는 “네 마음대로 편하게 살아라!”하는 메시지들은  불나는데 기름 붓는 격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기애와 자유는 무엇일까?

성경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명령 중 “너 자신을 사랑해라!”는 어디에도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단 두 가지 명령뿐이다. 거기에 답이 있다.

진정한 자기애란 자기를 만든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있다. 그분은 나를 어떤 목적으로 지으셨고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 주님께는 내가 아주 귀한 사람이고 주님 눈에는 더도 덜도 아닌 꼭 맞는 목적대로 잘 사는 아주 소중한 인간이다. 남들과 비교해 무엇을 더 잘할 필요도 없는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한 사람이다. 나를 목적대로 창조하시고 나를 사랑하셔서 목숨까지 버리시면서까지 구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면 어떻게 죄인인 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실 수

있으셨는지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주님이 목숨을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우리가 그분께 그만큼 귀한 존재 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잘하

고 잘나서 전제 따위는 0도 없다.


또,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는 어떤가? 우리가 사랑에 빠지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고 싶고 만들어 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고 그 사람의 웃음과 기쁨이 되고 싶다. 거기에서 오는 순수한 기쁨과 뿌듯함을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누군가를 위할 때, 목적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내가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것은 순수한 기쁨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은 결국 자기를 위하는 것이다. 그 목적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아 결국 자신을 타인에게 멋진 사람으로 보여서 타인에게나 자신에게나 자신을 높이고 싶은 것뿐이다.


순전히 남을 사랑하면서 얻는 기쁨이어야 한다. 그 기쁨이 커서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고 내 시간과 노력을 쓰는 일이 즐거우며 다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이 생기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찰하게 된다.  관찰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의 문제를  보게 되고 해결해 주고 싶어 함께 노력하고 살피는 것. 그것이 곧 기쁨이 되는 것. 그것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잘 나가고, 성공하고,  특별한 것을 가진 이유로 사람들이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나를 통해 그 사람의 무엇인가 채우려고 이용하는 것이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먼저 관심 갖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노력할 때에는 내가 잘나지 못해도 진정으로 내 존재를 사랑해 준다.

그렇기에 사랑받는 존재가 되려면 개인적으로 성공하고 잘 나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된다.


지금껏 나는 늘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가장 크게 관심을 갖고 내 어려움만 살펴왔다. 그래서 내 연민에 빠져왔고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을 이용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주님 명령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닫게 되어 내 존재 자체로만으로도 나는 가치가 있다. 또, 이웃을 사랑하면 그 사람들도 내가 잘 나가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진정 나를 믿고 사랑한다. 또, 이웃 사랑은 주님 계명을 따르는 일이니 궁극적으로 이웃과 동시에 주님께도 사랑을 드리는 일이다.

 하나님과 타인을 사랑하라는 말은 나 자신을 내팽개치라는 말이 아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나 자신을 벗어나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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