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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6. 2021

25주. 캐치 미 이프 유 캔(2003)

2019. 12. 23. by 감자

크리스마스를 낀 주가 다가오고 있고 당신이 두 영화 연속으로 크리스마스가 떠오르는 영화를 선정해 주었기에, 나 역시 덩달아 생각을 해 보았다. 내게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무엇일까? 답은 수월하게 나왔다. 바로 이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다.


10대부터 맹위를 떨쳤던 희대의 수표 위조범 및 사기꾼 프랭크 윌리엄 애버그네일 주니어의 범죄행각과 그를 잡으려는 FBI 요원 칼 헨레티의 쫓고 쫓기는 대결이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주요 골자이다. 도대체 이 사기꾼 이야기가 어째서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되었는가? 사실 그건 이 영화의 최초 개봉일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처음 개봉한 이 영화는 무려 2002년 12월 25일에 첫 상영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영화계의 패권자인 ‘나 홀로 집에’의 뒤를 잇겠다는 야심을 희번득하니 드러내었으나 이듬해 나온 ‘러브 액추얼리’의 사랑 공격에 짧은 집권기를 끝내고 왕좌를 내어놓아야 했던 영화다. 그래도 극동아시아에 거주하는 한 관객의 뇌리에는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되었으니 일말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아야 하겠지?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만듦새가 좋은 오락영화다. 영화는 현재-과거-대과거-현재 등 시간을 이리저리로 오가며 속도감 넘치게 진행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력이 시종일관 관객들을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1970년대의 급변하는 미국 사회를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흥겨운 음악에 얹어 보여준다. 거기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름다운 얼굴이 전 세계를 따뜻하게 하였던 2000년대 초반의 작품이니 크리스마스 선물로 충분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가 크리스마스용 영화인 내용적 이유는 결국 소년이 가족을 갈망하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가족을 잃은 소년이 방황하다가 대체가족을 만들어 정착한다. ‘나 홀로 집에’에서 케빈이 가족 없이 홀로 용맹하게 도둑들과 맞서다 위기를 물리치고 결국 가족을 만나는 이야기와 비교하면 약간의 파격이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어쨌든 소년에게는 가족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주제는 두 영화 모두 대동소이하게 공유한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라는 북미 정서가 잘 표현된 작품들이다. 물론 극동아시아의 한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는 연인과 함께’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더 우세하긴 하지만……. 그래서 ‘러브 액추얼리’가 인기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하긴 요즘은 다 필요 없고 ‘겨울왕국’이 점령한 것 같다.


2000년대 중반 이후가 괴로운 이유 중 하나로 디카프리오의 아름다운 얼굴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꼽을 수도 있을 만큼, 이 영화에서 디카프리오의 미모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주인공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끊임없는 사기 행각이 개연성을 갖는 이유가 바로 디카프리오의 외모에서 나온다. 어리고 순진한 눈을 한 금발의 미청년이 내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고, 나의 ‘약간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까짓것, 도와주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말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영화는 프랭크의 사기가 먹히는 순간들에 대부분 디카프리오의 미모를 써먹는 장면들을 집어넣는다. FBI의 수사망이 타국으로 도주하러 공항으로 달려온 프랭크의 목덜미를 낚아채려는, 서스펜스가 극에 치달은 바로 그때, 영화는 디카프리오에게 팬 아메리카 항공 기장의 정복 유니폼을 입히고 파일럿 햇을 씌운 뒤 그의 양 옆으로 화기애애한 표정의 금발 미인 스튜어디스를 각각 네 명씩 배치시키고는, 배경음악으로 ‘Come Fly with Me’를 틀어주어 프랭크가 써먹은 ‘시선 분산하기 기술’을 관객들에게도 똑같이 써먹어 버리는 거다. 그 기술에서 빠져나갈 수가 있겠는가? 관객이 에바 그린이라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프랭크, 아니, 디카프리오를 잡는 대항마로 톰 행크스가 캐스팅된 것은 너무나 적절한 것이다. 봄바람 같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벽창호 같은 소리를 하는 역할에 그보다 어울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실제로 톰 행크스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디카프리오 옆에서 시종일관 나무 장승처럼 존재한다. 내가 이제껏 내가 본 영화 역사상 최고의 유혹씬이라 꼽는 장면이 바로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데, 그게 뭐냐면 FBI 요원 칼 핸레티가 천신만고 끝에 프랭크를 잡은 뒤 그를 수표 위조 범죄 수사 자문단으로 새 삶을 살게 만들고 난 다음 이어지는 씬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옴에도 삭막한 FBI 사무실에 홀로 앉아 일이나 하고 있던(… 너무나 공감이 가 버린다) 칼 핸래티에게 프랭크는 조심스레 다가가 ‘우리 외로운 사람들끼리 함께 밤을 보내요(그게 절대로 성적인 뜻은 아님을 밝힌다)’라고 제안한다. 예의 수줍은 미소를 걸치고, 약간의 떨리는 눈을 하고는, 칼의 데스크에 놓인 스탠드의 길쭉한 스위치를 똑, 딱, 똑, 딱, 하며 켰다, 껐다, 켰다, 껐다를 반복하면서. 건조한 스탠드 불빛이 켜지고 꺼지는 그 짧은 순간에 프랭크의, 아니, 디카프리오의 간절한 얼굴이 밝아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는데, 아, 그 장면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손이 떨린다. 그런데 칼이, 아니, 톰 행크스가, 거기다 대고 어떻게 했는지 아나? ‘개소리 하고 있네’라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는 파리 쫓듯이 허공으로 손을 탈탈 털고, 끝이었다. 오오, 이 시대 진정한 헤테로남이여!


연말은 어쩔 수 없이 바쁘고 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부푸는 시기다. 한 해의 마지막이 2002년 디카프리오의 얼굴과 같은 이미지로 반짝인다면 ‘아, 역시 연말이군.’이라는 푸근한 감상에 젖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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