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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런 Nov 25. 2015

첫날은 '먹는 날'

나쁘지 않은 몸이 아니라, 좋은 몸을 갖고 싶다




11월 25일 수요일. 오늘은 '굶는 날'이다.


두 번째 단식을 실패한 후, 한동안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먹고 살쪘다. 옷을 갈아입거나 샤워를 할 때마다 매번 흠칫 놀라긴 했지만, 단식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허무하게 잃어버리고 맥이 빠진 상태였기에 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내 몸을 평생 외면하고 살 수는 없는데. 이대로 몸망아저씨가 되는 걸까. 어린 시절 목욕탕에 가득했던 아저씨들의 복부가 떠올랐다. 무기한 방치된 육체의 감히 기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배.


그 순간, 나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몇 시에 퇴근을 했든, 몇 차까지 술을 마셨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운동 흉내라도 냈다. 사실 대단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어느새 또 게을러져서 그냥 잠드는 날도 있었지만 조금씩 몸에 힘이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팔굽혀펴기 몇 번에 근육통이 생기는 것, 그것이 며칠 동안이나 지속된다는 사실은 꽤 서글펐지만, 통증은 언제나 좋은 신호였다.


몇 달 전, 한동안 중단되었던 풋살 모임이 재개되었다. 대학 선후배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야간 풋살을 했었는데 모임을 추진하던 나의 결혼과 동시에 중단되었던 것을 기특한 후배 한 명이 부활시켰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참석했지만 경기 내내 사경을 헤맸다. 거칠어진 호흡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고, 몇 시간 내내 뛰어도 끄떡없던 몸은 고작 15분 경기에도 비명을 질렀다. 어쨌든 풋살 모임은 매달 몸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열심히 참석했고, 매달 조금씩 나아졌다. 죽기 직전이었다가, 이제 겨우 살만해진 정도랄까.


10월의 마지막 날. 나쁘지 않은 몸이 아니라, 좋은 몸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세 번째 단식을 결심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 11월 한 달동안 단식하려고.

- 오, 열심히 해. 그럼 내일 굶는 거야?

- 아니, 내일은 첫날이니까... '먹는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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