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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런 Nov 23. 2015

단식, 실패

두 번째 단식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끝났다




어릴 적부터 나는 꽤 긍정적인 편이다. 때로는 정도가 지나쳐서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다양한 실패를 맛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나는 꽤 긍정적인 편이다.


첫 번째 단식을 하기 전, 나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살 따위 금방 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멈출 줄 모르고 불어나는 뱃살은 또 다른 실패를 예고하는 것 같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이러다가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첫 번째 단식은 결과적으로 굉장히 성공적이었지만, 한 가지 엄청난 부작용이 남았다.


그것은 바로 '그래, 이거라면 언제든지 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었다. 단식이 끝난 후, 급작스러운 요요현상이 없었기에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평생 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길이 열렸구나. 단식 전과 같이 아니, 오히려 더 걱정 없이 먹기 시작했다. 나에겐 격일 단식이 있어. 다시, 당연히, 조금씩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렇게 먹고 살 찌던 어느 날, 샤워를 하기 전 나는, 매일 애써 못 본 척했던 그래서 어느덧 너무나 낯설어진 몸뚱이와 마주했다. 첫 번째 단식을 결심하게 했던 그때보다 더 형편없어진 몸. 처방이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단식을 떠올렸다. 그리고 며칠 뒤, 두 번째 단식을 시작했다.


완벽한 실패.


두 번째 단식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끝났다. 세 번째 '굶는 날'의 아침, 나는 생각했다. 먹어야겠다. 2년 동안 몸이 조금씩 망가지며 의지도 함께 무뎌진 듯했다. 하지만 단순히 의지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첫 번째 단식과 비교했을 때 몸의 반응이 확연히 달랐다. 잘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격일 단식만 믿고 있던 나는 매우 당혹스럽고 아쉬웠지만 서둘러 단식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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