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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un 09. 2019

순백의 눈밭에 첫 발자국을 남기며, 알펜루트 (2편)

세 가지 하이라이트로 짚어보는 알펜루트 여행기

도야마 알펜루트 여행기, 2편은 알펜루트에서의 고생스러운 기억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1편에서 도야마까지 가는 길에 생각보다 돈이 꽤 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다고 알펜루트 여행을 후회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일본에 살면서 한 번쯤은 꼭 가보아야 할 목적지고, 교통이나 숙박 등에서 계획하기가 쉽지 않은 여정인만큼 무모하게나마 실행에 옮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번은 가고싶지 않다.


하지만 두 번은 가고싶지 않다. 정말 인간적으로, 알펜루트에서의 1박2일이 너무너무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알펜루트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져 온 교통편 개요. 이렇게만 보면 또 굉장히 순조로울 것 같다.


알펜루트 교통편은 편한 듯 편하지 않다. 해발 2,450m 지점까지 전문 등산장비 없이 버스나 케이블카를 타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랴 싶지만, 다시 말하면 각 교통수단을 제때 갈아타지 못하면 정상까지 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방향은 오직 한 방향. 중도포기란 없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 본 설산의 풍경. 이 날은 하늘이 흐려 먹구름과 산을 구분하기 어렵다.
나름 아찔한 경사.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을 감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교통이며 숙박을 미리 예약해놓았더라도, 알펜루트에 정말 갈 수 있게 될지는 불확실하다. 날씨 변수가 있기 떄문이다. 산 꼭대기에서 연결되는 케이블카이니만큼, 눈보라라도 불면 지연 또는 운행중지 되는 경우도 있다고. 다행히 필자가 방문한 1박2일 동안 하루는 쾌청했고 하루는 흐렸지만 그래도 교통에 지장이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문제는, 교통수단을 갈아탈때마다 엄청난 인파 속에서 대기해야 했다는 것. 각 구간마다 배차간격이 조금 다르지만, 단체관광객 그룹과 잘못 만나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어,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아랍어 등등... 온갖 언어들이 뒤섞여 들리는 통에 머리가 아팠다.


더군다나 산 속에 만들어 둔 간이역이다보니 휴게공간도 마땅치 않다. 하루종일 서서 기다리고 이동하고 를 반복하다 보니 저녁 즈음에는 정말 눈물 날 정도로 피곤해졌다.


쿠로베댐으로 가는 로프웨이 대기 줄. 로프웨이는 5분에 한 번씩 있어서 그나마 대기줄이 짧은 편이다.


그래도 여정 중간중간, 아 오길 잘했다! 싶은 순간들이 있어서 고생스러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필자의 경험으로 꼽아 본 알펜루트의 세 가지 하이라이트가 있다.


무로도역에서 이어지는 설벽 '눈의 회랑',

역시 무로도역에서 갈 수 있는 산 속 유황온천 '미쿠리가이케 온천',

인간의 땀방울으로 빚어낸 스케일을 느낄 수 있는 '쿠로베 댐'.


하나씩 소개해본다.




무로도역에서 고원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길 설벽의 풍경. 흰 눈에 자외선이 반사되어 잘 타기 떄문에 선크림을 잘 발라줘야 한다.


첫 번, 4월의 알펜루트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그 유명한 설벽(雪壁)인 '눈의 회랑'. 알펜루트에서도 최고점(最高点)인 해발 2,450m 지점에 위치한 무로도역(室堂駅)에서 걸어나갈 수 있다.


사실 여행을 오기 전에는 최대 높이가 20m에 달하는 이 설벽 구간이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원버스를 타고 1시간 남짓 굽이굽이 올라오면서 이미 질리도록 본 풍경이라, 막상 역사 밖으로 나가서 설벽을 따라 걸어보아도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예고편이 너무 훌륭한 영화를 본 기분이랄까?


무로도역의 2층에서 내려다 본 전망. 자연이 만든 스키장 같다. 실제로 스노보드를 들고 와 언덕을 내달리는 사람도 드문드문 있었다.


두 번째, 발 딛을때마다 푹푹 빠지는 눈밭을 20분 이상 걸어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던 '미쿠리가이케 온천'. 개인적으로는 '눈의 회랑'보다 더 인상깊은 장소였다. 이런 곳에 온천이?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흰 눈 속에 난쟁이 건물이 수줍게 숨어있었다.


아래 사진으로 가는 길의 고생을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을까? 콘크리트로 길이 나 있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눈 밭 오프로드를 걸어야 해 같은 거리를 가도 두 배는 힘이 들었다.


미쿠리가이케 온천의 외관. 보기에는 가까워보여도, 설원(雪原)을 가로질러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린다.
컴퓨터그래픽으로 합성해 놓은 것처럼, 현실감이 잘 들지 않는 눈 덮인 산의 풍경. 먼저 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그나마 발이 덜 빠진다.


이 곳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온천으로, 나름 천연 온천수다. 유황 성분이 섞였다는데 과연 물에서 기분좋은 점도가 느껴진다.


입장료 700엔을 내면 당일치기 온천을 이용할 수 있다. 노천온천이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실내이고, 탕도 그렇게 크지는 않다. 그래도 유리로 창이 넓게 뚫려있어 창 밖으로 흰 눈밭을 바라보며 뜨끈하게 몸을 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루종일 온갖 교통수단을 갈아탄 데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을 걸으며 쌓인 피로를 조금이라도 풀고 갈 수 있는 곳이다.


산 꼭대기에 있는 작은 온천이다보니, 물의 청결도나 관리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 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가 보길 잘한 것 같다.


쿠로베 댐으로 가는 길, 쿠로베평원 정류장.


세 번째, 알펜루트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아치식 댐이자, 당시 일본의 공학적 성취를 한데 모은 거대 프로젝트인 '쿠로베 댐'이다. 7년간 연간 1000만명의 노동력을 동원해 1963년 완공되었다. 공사 과정에서 무려 171명이 사고로 사망했을 정도로 난공사였다고 한다.


애초에 알펜루트도 댐 공사를 위해 산 꼭대기에 사람을 보내려고 만든 길을 관광지로 재개발한 거라고 한다. 관광객 입장에서 깔끔하게 정비된 길을 따라가는 것만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당시 공사장에 가기 위해 이 길을 가야 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고생에 고생을 거듭했을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쿠로베 댐의 풍경. 댐 위에 까맣게 보이는 점들이 사람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다.


6월 말, 알펜루트의 설벽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시기가 되면 쿠로베 댐의 방류 이벤트가 시작된다. 여름 날 사방이 푸르른 풍경이 호수에 비치고, 거대한 댐 한켠으로 시원하게 물까지 쏟아내면 얼마나 멋질지 상상해본다.


물론, 그렇다고 여름에 다시 오겠다는 뜻은 아니고... (너무 힘드니까)


자연의 스케일, 인간의 스케일. 1960년대의 공학기술로 한땀한땀 빚어낸 흑백의 스케일을 감상하는 것도 나름대로 감동이 있다.
깎아내린 듯한 산간 지형을 이용해 쌓아올린 구조물이 고대 문명의 유적 같기도 하고. 이 곳에서는 내내 스케일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쿠로베 댐 한정으로 말하면, 여기는 겨울보다는 여름에 더 아름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삭막하니까 이 곳을 만들면서 171명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떠오르고, 좀 으스스했다.




필자는 1편에서 교통 부분을 정할 때 도야마를 왕복하는 항공편을 예약했기 때문에, 알펜루트의 3분의 2 지점에 해당하는 쿠로베 댐까지 찍고 다시 같은 길을 따라 도야마역으로 돌아갔다. 이 코스가 1박2일. 아주 서두르지도, 아주 여유롭지도 못하게 이틀을 꼬박 채웠다.


사진을 다시 보니 고생했던 시간들도 다 추억이 되어 몽글몽글한 기분이 된다. 이러다 또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니겠지. 설마.


다음으로 3편에서는 알펜루트에서의 1박2일을 풍요롭게 만들어줬던 텐구다이라 산장에서의 하룻밤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해 질 녘 환상적인 노을 풍경과 별이 쏟아지는 듯한 밤하늘, 맛있는 아침과 저녁 식사를 선사한 곳이었다.


오늘의 관련글은 알펜루트 여행기 1편으로 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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