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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Dec 01. 2019

하늘 아래 같은 소금은 없다

소금도 와인처럼, 소금 소믈리에가 산지별로 추천해주는 소금 전문점.

어제는 오랜만에 아자부주반역에 갈 일이 있었다.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역 근처 소금 전문점 마스야(塩屋)에 들러 소금을 샀다. 필자에게 이 가게는 갈 때마다 신기한 곳이다. 아자부주반 역 근처 금싸라기 땅에 이 정도 규모로 가게를 냈는데 취급하는 제품이 오직 소금 뿐이라니. 언제 망해도 신기하지 않은 곳인데 이상하게 갈 때마다 손님들로 북적인다. 체감상 뜨내기 관광객보다는 집에 두고 먹을 소금을 사러 온 일본인들이 많다.


소금이야 다 같은 소금이라지만


소금이야 다 같은 소금이라지만, 최근에는 좀 괜찮은 식당에 가면 하다못해 고기나 튀김에 찍어먹을 소금을 주더라도 히말라야 핑크 솔트라든지 녹차맛 소금이라든지, 뭐든지 뭔가 특별한 소금을 내 주어 차별화를 꾀하는 것 같다. 맛이야 그렇다치고, 확실히 마트에서 대량으로 사다 먹는 흰 소금을 먹을때와는 느낌적인 느낌이 다를수밖에.


마트에서 휙 집어오면 그만인 저관여 제품에서

전문 소믈리에와의 상담을 거쳐 신중하게 골라 사는 고관여 제품으로.


얼핏 대동강 물을 돈 받고 팔았다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떠오르지만, 그 봉이 김선달이 공짜 물을 어떻게 재화(財貨)로 바꾸었는지를 뜯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럼, 아자부주반의 소금 전문점을 소개합니다.





가게 정면 칠판에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오늘의 추천 소금]을 적어두었다.


소금은 어느 음식에나 꼭 들어가는 기본적인 재료다. 소금을 잘 팔려면 우리가 평소에 어떤 음식을 먹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각 문화권마다 주로 먹는 음식이 다르겠지만, 이 곳 마스야에서 생각하기에 일본인들이 많이 먹는 음식은 밥과 고기, 생선, 야채로 구분할 수 있나보다.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칠판에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오늘의 추천 소금]을 적어둔 게 보인다. 밥과 잘 어울리는 소금으로는 오키나와에서 온 [오니기리(주먹밥) 소금]이, 야채와 잘 어울리는 소금으로는 영국 왕실에 납품했다는 [Maldon]이 1위로 꼽혔다.


칠판 아래에는 각각의 음식에 어울리는 소금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시식대가 마련되어 있다


그 아래는 소금 시식대가 마련되어 있다.

네 가지 카테고리에 맞게 50여종의 소금을 늘어놓고, 조금씩 맛볼 수 있도록 테스터 제품을 꺼내두었다.


소금 시식대를 클로즈업 한 모습. 각 소금 옆의 네임 카드에 주목해보자.


와인을 살 때 우리는 원산지, 포도의 품종, 마리아주 등을 꼼꼼히 따진다.

이 가게에서만은 소금도 마치 와인처럼 전시된다.


마스야의 소금 시식대에는 와인샵을 연상시키는 네임카드가 마련되어 있다. 일본 오키나와현, 와카야마현 하는 식으로 원산지를 먼저 적고, Sea salt 또는 Rock salt 라는 식으로 소금의 종류도 알 수 있다. 채소, 오니기리, 생선 등 음식과의 마리아주는 물론, 대략적인 입자의 굵기까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진열대로 가 보자. 장난 아니고 진짜로 소금만으로 가득한 풍경. 각 제품 앞에도 네임카드가 붙어있는데, 가격표 역할은 물론 각 소금에 고유한 스토리를 제공해주는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진열대 안에서도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오니기리 소금의 네임카드를 보자.



240g에 무려 만 원이나 하는 가격. 그치만 소금 소믈리에가 오키나와현산 천일염 3종을 블렌딩 해서 오니기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맛으로 개발해 냈다고 한다.


역시 이런 상황에는 일본어의 코다와리(こだわり)라는 말이 딱 달라붙는다. 한국어나 영어로 딱 들어맞는 번역을 찾기 어려운 일본식 표현인데, 말하자면 오니기리의 사소한 일부분인 소금 하나도 '대충 아무거나'라고 넘어가지 않고 끊임없이 탐구해서 딱 맞는 소금을 얻어냈다는 뜻이다.



이 쪽은 마스야의 자체제작 소금 코너로, 다양한 소금 중 원하는 종류를 소포장으로 구입할 수 있어 뭘 살지 잘 모르겠을 때 적당한 선택지를 준다.


프랑스, 이탈리아, 파키스탄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수입산 소금도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이 큰 가게 전체에 일본산 소금만 있는 건 아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파키스탄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수입산 소금도 만나볼 수 있다. 히말라야 핑크 솔트나, 트러플 소금 종류가 많아서 한참을 들었다 놨다 해 보았다. 가게 홈페이지의 설명을 보니, 이 작은 가게에서 무려 600여종이나 되는 소금을 취급하고 있다고 한다. 오마이갓.


이건 뭐 요리에 큰 관심 없는 내가 봐도 신기한데, 주위에 요리 좋아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다가는 눈이 돌아갈 것 같다.


사진을 다 찍지는 못했지만, 소금으로 만든 과자나 아이스크림, 스킨케어 제품까지 갖춰져 있다.


각 소금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거나, 이런 상황에 어떤 소금을 쓰면 좋을지 궁금한 마음이 든다면 가게에 상주해 있는 소금 소믈리에와 상담도 할 수 있다. 옆 사람이 상담하는 내용을 살짝 들어보니, 이 소금은 어느 소금대회에서 1위 수상을 한 소금이라든지, 파스타에 넣으면 풍미가 살아난다든지 하며 '하늘 아래 같은 소금은 없다'는 취지로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을 그냥 점원이 아니라 소금 소믈리에 라고 이름 붙이고, 그 사실을 유독 강조하는 것도 재미있던 포인트.





한참 전에 긴자의 쌀 전문 편집샵 아코메야(Akomeya)를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다. 이 곳 마스야는 말하자면 소금 전문 편집샵 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필자가 도쿄에 와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점 중 하나가 이렇게 컨셉이 뚜렷한 편집샵이 많다는 점이다. 의류 편집샵은 우리에게도 익숙한데 의류를 넘어 식료품까지.


이런 편집샵들이 마트에서 사는 대량생산 식료품 말고, 지역 생산자들이 소규모로 생산한 고부가가치 식료품을 비싼 값 받고 팔 수 있는 유통채널로 기능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조금 더 다양한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참 부럽다.


그치만 소비자 입장에서 가게를 구경하다보면, 한국에서는 이런 형태의 편집샵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의 힘 때문이다. 우리 모두 네선생님의 '최저가 비교'에 익숙해져 있는 탓에, 오프라인에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온라인에 상품명을 검색해본다.


필자도 일본 편집샵을 구경하면서 여러 번 시도해보았고, 당연하게도 거의 항상 온라인에서 같은 제품을 더 싸게 살 수 있었다. 왠지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편집샵에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게 손해보는 기분이 들어서 사고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추측컨대, 한국과 비교해 일본에는 필자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일본 소비자들이 온라인 쇼핑에 익숙하지 않기 떄문이다. 신용카드를 넘어 가상화폐 시대를 맞는 오늘날에도 80%가 넘는 현금 사용률을 기록하는 나라 아닌가.


설령 온라인에서 더 저렴한 가격으로 같은 물건을 구입할 수 있더라도, 내가 신뢰하는 유통채널인 편집샵에서 더 비싼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예쁜 포장지에 정성스럽게 포장해 오는 편을 선호한다. 당장은 웃돈을 주고 물건을 산 셈이지만, 덕분에 이런 형태의 편집샵이 오래 살아남아 내 취향에 맞는 좋은 상품을 '제안'해줄 수 있으니 길게 보면 편집샵에도, 소비자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다.


뭐 그렇다고 어느편이 좋고 어느편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본의 편집샵이 좋아 보인다고 해서 한국에 그대로 가져다 쓰기에는 사회경제적, 문화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필자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럼, 아자부주반의 소금 전문 편집샵을 소개한 포스팅은 여기까지.

오늘의 관련글은 쌀 전문 편집샵 아코메야를 소개했던 포스팅으로 달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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