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소설 <퀴즈쇼>를 읽고
오늘 문득 이 소설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고시원에 방을 알아보는 장면이었다. 창 있는 방은 2만원, 인터넷 있는 방은 1만원 월세를 더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주인공은 돈이 궁하다. 잠깐 고민하다가 창 대신 인터넷을 선택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현실의 창 대신에 빌 게이츠의 창,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를 선택했다. 그 때는 햇빛이 소중하다는 것을, 한 달에 이만원 정도의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오늘은 고약하게도 딱 이 구절만 머릿속을 맴돌고, 제목도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야, 왜 그, 고시원에서 창문 대신 인터넷을 선택하는 소설, 그거 뭐지." 동생에게 카톡도 해 보았다. 동생은 요즘 사회초년생 티를 팍팍 내며 회사에서는 카톡을 읽지도 않는다. 다행히도 동생의 답장을 기다리던 중 제목이 떠올랐다.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였다. 생각 난 김에 전자책으로 구입해서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이 소설이 김영하의 여러 작품 중 특별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야기의 구조가 전반부(퀴즈방), 중반부(퀴즈쇼), 후반부(회사) 의 세 덩어리로 나누어지는데, 나는 이 소설의 전반부를 좋아한다. 중반부도 뭐 꽤나 볼만하다.
후반부로 넘어가면 좀 뭐랄까, 좀 김이 빠진다. 야구를 하다가 야구공이 야구장 바깥으로 멀리멀리 날아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전반부와 중반부에서 워낙 인상이 좋았기 때문에 매번 다시 읽을때마다 그냥 꾹 참고 끝까지 읽게 된다. 전반부와 중반부가 워낙 재미있어서 비교가 되는거지, 후반부조차도 나 같은 참을성없는 독자를 마지막 장까지 읽도록 끌어당길 정도의 흡인력은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의 전반부를 왜 좋아하냐면, 주인공이 '퀴즈방'이라는 채팅방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누군가들과 채팅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보면 내 10대와 20대에 모니터 앞에 앉아 보냈던 어느 날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때문이다. 특히 이 구절은 매번 읽을 때마다 무릎을 친다.
그것은 영원히 예술로 인정받지 못할 예술이자 마지막 한 사람이 채팅방을 떠나면 흔적없이 사라져버릴 작품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서 주인공 '롱맨'은 채팅방 속 '벽 속의 요정'과 랜선을 통해 사랑에 빠지고, '벽 속의 요정'에게 전화를 받고는 이게 혹시 사이비 종교나 사기수법은 아닐까 고뇌하면서도 약속장소까지 가서 기다린다.
이 부분을 읽을때마다 전파를 타고 훨훨 날아가버린 인터넷 세상 속 내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MSN 메신저, 버디버디, 네이트온, 세이클럽, 싸이월드, 다음 카페, 네이버나 이글루스 티스토리 등에 개설했던 블로그, 페이스북, 그리고 요즘 많이들 쓰는 인스타그램...
몇년 전 싸이월드가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이제는 누구도 싸이월드에는 들어가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뒤져보면 과거에 애틋했던 기억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다들 새삼 그 시절 기억을 백업하느라고 난리였던 기억이다.
나는 플랫폼 전환이 좀, 아니 많이 느린 편이다. 친구들이 다 떠나 간 다음에도 꽤 오래 싸이월드에 남아 아무도 보지 않는 글들을 올렸다. 그 다음이 페이스북이었던가? 페이스북을 일기장처럼 쓰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올려두었다. 요즘도 가끔 글을 올리지만 독백일뿐이다. 친구들은 이제 다 인스타그램으로 떠나갔다.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디지털의 역설이랄까? 요즘은 일반인들도 테라바이트(TB) 단위의 저장장치를 구입하는 게 그리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뭐든 기록되는 세상인데, 정작 아주 오래전부터 디지털 세상에 차곡차곡 쌓아 온 기억들은 어느 순간 어디에도 없는 것이 되어버리다니.
오프라인 세상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은 그래도 어찌어찌 기억을 되살릴 방법이 있다. 같이 있었던 장소, 그 날의 날씨, 같이 먹었던 음식, 거리의 냄새나 소리. 또는 그 시간을 사진으로 남겨두어 사진을 보며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반면 모니터 안 누군가와 텍스트로 나눴던 이야기들은 분명 어딘가의 서버에 저장이 되어 있기야 하겠지만, 그거야 뭔가 법적인 다툼이 생기거나 해서 증거를 찾을때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감정적으로는 시간이 지나면 그 때의 감정을 다시 찾을 방도가 없다. 그래서 저 문장이 더 와닿나보다. 마지막 한 사람이 채팅방을 떠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채팅방에 있는 모두의 가슴을 치는, 어떤 작품 말이다.
나는 이 글을 거의 일주일에 걸쳐 쓰고 있다.
쓰다보니 인터넷 세상 어딘가에 잠들어있는 내 기억들을 자꾸 들춰보고 싶어진다. 20대 초반에 영어공부 한답시고 이메일로 주고받았던 펜팔을 들춰본다든지, 싸이월드의 자료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해서 새삼 싸이월드에 접속해본다든지. 뭐 그런 것들.
참 이상하다. 그 시절 미니홈피에 사진도 올리고 BGM도 붙여가며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정작 그 시절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아무래도 온라인에서 나눴던 이야기는 거의 언급이 되지 않는다. 엠티를 갔다거나, 맛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거나, 뭐 이렇게 실제 현실세계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만 추억하게 된다.
이 글을 쓰다보니, 모니터 앞에서 설레가며 키보드를 두드리던 그 시간들을 전부 다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분이 좀 그랬고, 그래서 <퀴즈쇼>를 보면 그 시간들이 아주 없었던 일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좋아지나보다.
고등학교 다닐 때 나는 (교과서에 나오는) 한국 소설이 마음에 안 들었다. 촌스럽고, 공감이 잘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도 그럴것이 교과서에 실리는 소설이라는 게 다 옛날 이야기니까. 한국은 최근 몇십 년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나라다. 그들의 고민과 나의 고민이 같지 않아서 재미가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는 내 선택과 판단으로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읽을 수 있는 지금 나는 한국 소설을 읽는 시간이 즐겁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신작을 접하는 게 좋다. 젊은 작가들이 전면에 나서서 내가 쓰는 언어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국 소설에서 얻는 이런 즐거움은 내 나이가 20대 후반을 넘기면서 더욱 커졌다. 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10대나 20대 초반에 등단해서 소설책을 출간하기는 어렵다. 젊은 작가라고는 해도 나이를 보면 최소가 20대 후반에서 시작한다. 뭐 어디 소설뿐인가? 이제는 영화를 봐도, 드라마를 봐도 점점 주인공의 나이가 나랑 비슷하거나 어리거나 한 경우가 많다. 내가 겪고있거나, 이미 겪었던 시기를 이야기로 만들어 들려주니 조금 감정을 이입하기가 쉽다.
나이 드는 게 마냥 기분좋을 리 없지만, 나이가 들 수록 내 또래의 고민과 이야기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점에서는 좋다. 이 재미를 어른들만 알고 있었다니, 어른들의 언어로 쓰여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반쯤 공감하고 반쯤 갸웃하며 보낸 내 청소년기의 독서가 좀 안타까워지기도 하고.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는 최은영 작가의 <그 여름>이라는 작품이 비슷한 의미에서 내게 울림을 줬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헤드폰으로 야매 라디오를 틀어주는 이야기라든지, MSN이나 네이트온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야기라든지. 과거 어느 시점에선가 내가 했던 짓들을 주인공들이 하고 있어서 새삼 반갑고 친하게 느껴졌다.
혹시 이런 소설이 더 있을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께, 생각나시는 작품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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