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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찬바람 들어서며 무가 쏙쏙 나오기 시작한다. 매번 드는 생각인데 난 눈곱만 한 씨를 어리숙하게 심었는데 어쩜 신기하게 바람이 부채질하고 비를 뿌리고 볕을 쪼이면 잎이 나고 마술처럼 무도 배추도 나올까! 이제 비둘기만 나오면 난 마술사다. 그뿐 아니다. 오동나무 잎 나부낄 때마다 참새도 박새도 난다. 가끔 뚱뚱한 뻐꾸기도 멋쟁이 까치도.
시장엔 벌써 무가 다발로 나와서 팔린다. 역시나 우리 텃밭은 또 늦은 감이 든다. 무청이 우거진 밭고랑 사이사이 후비고 다니며 누런 잎을 따고 솎아냈다. 무청 아래로 드러난 무에 북을 돋워 놓고 담장 옆 열무 밭 한 줄은 뽑고 무씨를 또 뿌렸다. 겨우 밭 두어 줄 가지고 땀을 흘렸다. 마당에 뽑은 열무를 부려놓고 다듬느라 또 두어 시간 지났다. 줄곧 내 손이 움직일 때마다 충성스레 앉아서 지켜보는 강아지 콩쥐.
"너도 배우게?"
갸웃거리는 강아지에게 무 꽁지를 내어주니 아작아작 맛있게 깨물어 먹는다. 맛있나 싶어 나도 한 입 먹어봤지만 맵기만 한데 끝 맛은 달고 시원하다. 저녁밥에 넣을 생각으로 서리태 콩 나무 두어 개를 뽑아 현관 앞에서 따닥따닥 뜯었다. 땀이 식어선지 으스스해서 딸내미에게 커피 한 잔 부탁했다. 커피가 꿀맛이다. 딸에게 금동이랑 콩쥐랑 축구 좀 하고 들어가라고 했다. 딸내미의 슬리퍼 끄는 소리에 껑충대며 난리 난 녀석들. 금동 이는 완벽 골키퍼다. '공 어디 있어?' 하면 두리번대며 공을 찾아 제 앞에 놓고 기다린다. 샘 쟁이 콩쥐도 콩콩 뛰며 짖어대니 마당에 흙먼지가 일고 매우 시끄럽다.
저녁 지을 무렵이면 부엌 창으로 노을을 볼 수 있었는데 동네 곳곳에 창고가 속속 들어서니 하늘을 가리고 바람을 막는다. 내가 하도 투덜거리니 딸내미가 '엄마의 노을 볼 조망권'을 침해했다고 신고하란다. 저녁 먹을 즘 깜깜해졌다. 가을 깊숙이 들어와 버린 것이다. 오동잎은 날마다 떨어져 내리고 낙엽은 날마다 부지런히 쓸어야 한다. 재봉틀로 박아 놓을까! 가을이 좀 더 머물게.
서리태 콩밥 뜸 들이는 밥솥의 추가 조용한 저녁 시간을 흔들고 있다. 이제 내가 손만 까딱이면 구수한 저녁 밥상이 짠. 나타날 것이다. (2013.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