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담 끝에 나온 말 “하느님은 개 OO”

잊힌 시간의 조각들 — 말해지지 못한 존재와 기억을 복원하는 시간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해 질 녘 주황빛 하늘 아래, 학교 운동장의 전경이 넓게 펼쳐져 있다. 트랙 옆 벤치에 성인 여성과 청소년 여자아이가 나란히 앉아있다. - ©ai]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은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차별과 불신의 색이 짙게 남아 있다. 담임이었던 여자 선생님은 노골적으로 촌지를 바랐다. 그 시절엔 ‘촌지 금지’가 지금처럼 엄격하지 않았고, 선생님 눈에 잘 보여야 아이가 덜 힘들다는 게 부모들 사이의 공공연한 분위기였다.


엄마는 원래 옳고 그름에 단호했고, 작은 감사도 꼭 표현하는 분이었다. 우유 배달을 해주시는 분께도 계절마다 양말, 손수건, 자양강장제 세트 등 감사 인사와 함께 작은 선물을 빼놓지 않았다.


그런 엄마에게 집안의 첫째인 오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시련이 닥쳤다. 선생님은 은근히 촌지를 요구했고, 엄마는 모른 척 넘어갔다. 그 결과 오빠는 점점 말수가 줄었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얼굴이 굳어갔다.


결국 엄마는 자신의 지향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교육 시스템에 환멸이 난 엄마는 나를 전학시킬 때 빼고는 다시는 학교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 그래도 자식 차별받는 꼴은 못 보겠기에 속상한 마음 부여잡고, 소풍 때마다 삼 남매의 손에 엄마표 김밥과 흰 봉투를 쥐여 주었다고 했다.


5학년 담임은, 그런 엄마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었다. 같은 반 남자 짝꿍의 엄마는 학교를 제집 드나들 듯했고, 담임과도 각별해 보였다.


어느 날, 그 짝꿍은 책상 위에 금을 긋고 넘어오면 자기 물건이라 으름장을 놓았다. 말싸움은 곧 몸싸움으로 번졌다.


"너, 일어나."

담임은 내 쪽만 보았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사랑의 매’라고 적힌 얇은 매가 허공을 가르더니 내 등에 내려앉았다. 아픈 것보다 억울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승자의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고 웃던 그 아이. 나는 울고 말아 버릴 아이가 아니었다. 어른들이 모르는 2차전을 치렀고, 기어이 사과를 받아냈다.


그날 이후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내게 경계와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 흰 봉투의 의미를 안건 먼 훗날이었다. 소풍날 무심한 얼굴로 봉투를 받던 담임의 표정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다.


6학년 담임은 파마머리의 남자 미술 선생님이었다. 이미 경계가 깊었던 나는 그에게도 거리를 뒀다.

아이 눈에도 그는 남학생들을 유독 편애했다.


담임은 자주 칠판 가득 필기를 시키고, 이유 없이 남자아이들을 책상 앞으로 불러냈다.

그날도 아이를 불러내는 찰나, 떨어진 지우개를 주우려 허리 숙였을 때였다. 책상 밑 틈새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보고 말았다.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뒤로 주춤하는 아이를 자기 쪽으로 당겼고, 다른 손으로는 아이의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있었다.


형제복지원에서의 음습하고 불쾌했던 기억이 덮쳐왔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슬프게도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다행이다... 내가 아니어서.”였다.


누구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친한 몇몇 친구에게만 털어놓고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선생님’이란 존재는 내 세계에서 더욱 멀어졌고, 마주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사춘기가 절정이었던 중학교 3학년.

불행 중 다행으로 믿음 속에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났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마음은 한없이 공허했다. 동정받는 게 싫어 표면적으로는 쾌활하게 굴었지만, 속은 점점 더 삐뚤어졌다.


어느 날 아침, 학교를 가지 않은 채 담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희야 안 그래도 걱정했는데, 무슨 일 있니? 왜 학교에 안 왔니?”

선생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조심스레 파고들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내뱉었다.

“선생님, 저 학교 가기 싫은데요.”

“왜?”

“그냥... 그냥 싫어요.”


어떤 이유도, 어떤 감정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모든 것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선생님이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오늘 수업이 끝나기 전까지 선생님 만나러 오면, 결석 처리는 안 할게. 선생님은 오늘 우리 진희 얼굴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날따라 학교를 가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고, 만사가 귀찮았다. 끊어질 듯 팽팽한 마음으로 무작정 버스를 탔다. 버스에선 배우 김미숙 씨가 진행하던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버스 종점에서 종점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앉아 있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 내려 터벅터벅 길을 걷고 또 걸었섰다.


“선생님은 오늘 우리 진희 얼굴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고, 걱정하고 있을 친구들이 떠올랐다.


결국 발길을 돌려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근엄함 표정 속에 안도하는 선생님의 얼굴, 수업이 끝나고도 기다려준 친구들의 등짝 스매싱.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그래,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 뒤로 선생님은 더 자주 내 상태를 살폈다. 어느 날 그녀는 내 손을 감싸며 말했다.

"엄마도 없고, 아빠도 예전 같지 않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나 세상이 원망스러울 거야. 그런데 살다 보면 보면 무조건 나쁜 일만 생기진 않아.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선생님 말 믿으렴. 넌 꼭 이겨낼 거다. 네가 신을 믿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하느님을 걸고 장담할게. 내 말이 틀리면..."


감싸 쥔 손에 힘이 느껴졌고, 나를 보는 눈동자는 확신에 차있었다.

"... 하느님은 개새끼야."


그 순간, 신선한 충격과 함께 무언가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의 그 진심 어린 장담 덕에 세상에는 좋은 어른도, 나쁜 어른도 있다는 걸 비로소 받아들였다.

그리고 피하고만 싶었던 선생님의 눈을 드디어 마주 볼 수 있었다.



그 시절 엄마 없이, 변해버린 아빠는 집으로 빚쟁이를 들이닥치게 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우리 삼 남매는 아빠를 다그쳤다.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우리도 피해서 몰래 집을 드나들더니 결국엔 집을 나가버렸다. 그렇게 집안의 가장은 오빠로 바뀌어 버렸고, 풍족했던 집안 환경은 어느새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형제복지원의 기억 위로 깊은 상처가 덧나 버렸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냥 막살아버릴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한 편에선

“제발 나 좀 붙잡아줘.”라고 속삭였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의 관심이 차가워진 심장을 조금씩 녹였다.

그리고 그 위태로웠던 빈자리를 채워준 건, 내 곁을 지켜준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초등학교 5, 6학년 이후로 한 번도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지만, 윗동네에 살던 내가 제일 좋아했던 친구 미은. 엄마의 초상을 치르던 집 현관 앞. 어둡고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얼굴이 보였다. 미은이였다.


"진희야..."

이름을 부르며 내밀던 손끝에, 국화꽃 한 송이가 보였다. 꽃을 받아 들자, 미은이의 눈이 무너졌다.

나를 잡고 흐느끼는 그 울음은 넋이 빠져 어쩔 줄 몰라하던 나를 대신하는 내 울음이었다.


형제복지원에서 강제 예배와 기도문 암송, 체벌이 얽힌 기억 때문에 교회는 나에게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은 곳이었다. 내 친구 미영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 몰래 빠져나와 교회로 가 비밀이야기를 나누던 밤이 아직도 선하다. 그러는 사이 교회에 대한 미움 또한 조금씩 누그러졌다.


중학교 이후 학교는 달랐지만 같은 독서실을 다녔던 내 친구 영미 마이콜.

추운 겨울 새벽녘 졸음이 쏟아질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깨를 툭 치며 건넸던 따뜻한 믹스커피…


그 무렵, 그 친구들이 있었기에 나는 여전히 아이 같은 순수함을 품고 살 수 있었다.


이제는 아련하고 소중한 기억들이 되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럼에도 그 힘든 시절 곁을 지켜준, 이 글에 다 담지 못한 나의 친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들 덕분에 녹록지 않은 삶,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부정보다는 긍정을, 절망보다는 희망을 쫒으며 오늘을 살고 있다.


오늘을 지켜주는 얼굴들이 있다는 건,

더 따뜻한 시선으로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싶게 하는 의지를 품게 한다.



글을 읽고 문득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면,

그 이름을 마음으로 불러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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