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사이에서 중견국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이 글은 2026 다보스포럼의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연설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202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연단에 섰습니다.
"우리가 수십 년간 믿어온 '규칙 기반 국제 질서'는 달콤한 허구였습니다."
이 고백은 청중을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파열(Rupture)'의 시대, 그리고 중견국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무엇일까요?
"Every morning, this shopkeeper places a sign in his window, 'Workers of the world unite.' He doesn't believe it. No one does. But he places a sign anyway to avoid trouble."
카니 총리는 체코의 반체제 인사 바츨라프 하벨의 에세이를 인용합니다. 공산주의 체제 아래 채소 가게 주인이 매일 아침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표지판을 걸어두는 이야기입니다.
그 표지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인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피하기 위해, 체제에 순응하기 위해 모두가 표지판을 걸어둡니다. 하벨은 이것을 "거짓 속에 사는 것(living within a lie)"이라 불렀습니다.
카니 총리의 핵심 주장은 이것입니다: 수십 년간 국제 사회도 똑같이 해왔다는 것입니다.
"규칙 기반 국제 질서"라는 표지판을 창문에 걸어두고, 그것이 완전히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가 그 의식에 참여해왔습니다. 강대국이 규칙을 어겨도 눈감았고, 무역 규칙이 비대칭적으로 적용되어도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거래(bargain)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We are in the midst of a rupture, not a transition. Great powers have begun using economic integration as weapons."
카니 총리는 지금을 '전환기'가 아닌 '파열'이라고 규정합니다. 전환기라면 새로운 질서로 부드럽게 넘어가겠지만, 파열은 기존 시스템 자체가 깨지는 것입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과거에는 경제적 통합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무역하고, 투자하고, 공급망을 연결하면 모두가 번영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강대국들은 그 통합 자체를 무기로 사용합니다. 관세를 지렛대로, 금융 인프라를 강압 도구로, 공급망을 취약점 공격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예전에는 함께 장사하면 친해졌는데, 이제는 "내가 너한테 물건 안 팔면 너 망해"라며 협박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입니다.
\"If we're not at the table, we're on the menu. When we only negotiate bilaterally with a hegemon, we negotiate from weakness."
이 발언이 연설의 핵심입니다.
중견국이 강대국과 일대일로 협상하면, 그것은 주권의 행사가 아니라 "주권을 연기하는 것(performance of sovereignty)"에 불과하다고 카니 총리는 말합니다. 제안받은 것을 수락하고, 서로 누가 더 협조적인지 경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중견국들의 연대입니다.
혼자서는 약하지만, 함께하면 제3의 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경쟁하는 대신, 연합하여 영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We aim to be both principled and pragmatic. We actively take on the world as it is, not wait around for a world we wish to be."
카니 총리는 캐나다의 새로운 외교 노선을 "가치 기반 현실주의(value-based realism)"라고 부릅니다. 핀란드 스투브 대통령이 먼저 사용한 표현입니다.
원칙과 실용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원칙적인 면: 주권, 영토 보전, UN 헌장에 따른 무력 사용 금지, 인권 존중
실용적인 면: 진전은 점진적이고, 이해관계는 다르며, 모든 파트너가 같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현실 인정
그래서 캐나다는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EU와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 체결
중국, 카타르와 새로운 전략 파트너십
인도, 아세안, 메르코수르와 자유무역협정 협상
북유럽 국가들과 안보 협력 강화
6개월 만에 4개 대륙에서 12개의 무역·안보 협정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On Arctic sovereignty, we stand firmly with Greenland and Denmark and fully support their unique right to determine Greenland's future."
트럼프 행정부가 그린란드에 대한 관세 위협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카니 총리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린란드의 미래는 그린란드 국민이 결정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캐나다는 덴마크와 함께 이 원칙을 지지합니다.
동시에 그는 실용적 해법도 제시합니다. 북극 안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자는 것입니다. 캐나다는 국방비를 두 배로 늘리고, 잠수함과 전투기를 증강하며, "얼음 위의 군화(boots on the ice)"를 배치할 계획입니다.
"Being detached from where you live and the broader needs of society... there is an epithet for that."
파이낸셜타임스 편집장이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당신은 골드만삭스 출신에, 중앙은행 총재 출신에, 여러 나라에서 살았습니다. 세계화주의자(globalist)의 전형 아닙니까? 세계화는 끝난 건가요?"
카니 총리의 답변은 미묘했습니다.
세계를 이해하고,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기술·무역·투자·문화를 통해 연결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사는 곳, 더 넓은 사회의 필요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면, 그것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가 그리는 미래는 "글로벌"하지 않습니다. 전 지구를 포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이 연합하여, 시민들과 세계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카니 총리의 연설은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다보스에서 기립박수는 흔치 않다고 사회자도 언급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옛 질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것을 슬퍼하지 마십시오. 노스탤지어는 전략이 아닙니다.
하지만 파열에서 더 크고, 더 낫고, 더 정의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것이 중견국의 과제입니다.
한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메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표지판을 창문에 걸어두고 있을까요? 그리고 언제 그것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영상: [2026 다보스 포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단독 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