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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Dec 29. 2019

구급차를 탄 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구급차에 실려간 적이 있다. 2-3달 전이었다. 회사 전체 회의가 끝나고 회식을 하러 갔다. 회사 근처에 소문난 맛집으로 회식을 갔다. 그러나, 나는 정말 회식을 싫어한다. 회식을 하면 최소 2-3시간, 길면 6시간 이상 자리를 지켜야 한다. 내가 정말 원하지 않는 곳에서, 내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이 너무나 많이 든다. 회식을 하지 않으면 집에 가서 조용히 책을 보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그 외에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할 수 있다. 


 회식을 가면, 일단 사람들이 엄청 많다. 잔에 술을 채우고 건배를 하고 마시고,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최대한 사교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지배하는 것 같다. 게다가, 난 술도 싫어하고, 진짜 못 마신다. 회식 참석은 자발적이지만, 사실 빠지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일이 있거나 정말 피치못할 사정이 있으면 빠지는데, 나는 되도록이면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회식도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비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 지는 장소이기 때문에 여러 높은 사람들에게 나 라는 존재를 알려야 하고, 그들과 사적인 친밀감을 갖는 자리이다. 추가로, 회사의 여러가지 소문들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 교환의 자리이기도 하다. 


 그날도 소맥을 깨작거리면서 건배를 하는데, 내 주변으로 평소에 인사는 하지만 이러한 회식 자리를 처음 갖는 분들과 자리를 했다. 당연히 그 분들은 내가 술을 잘 마시는지, 못 마시는지 모른다. 대충 직장생활을 그 정도 하고, 그 정도 나이면 어느정도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러 번 건배를 하고, 그 분들 모두 원샷을 하는데, 나만 꺽어 마실 수 없어서 나 역시 원샷을 했다. 3시간에 걸쳐서 소주를 한 병 마시는 것은 가능한데, 1시간에 소주 한병이면 난 거의 Dead man이다. 매우 짧은 시간 동안 건배를 여러 번 하고, 주는 대로 넙죽 마셨다. 마시면서, ‘오늘은 그냥 죽는 날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포 자기 심정으로 마셨다. 


 너무 얼굴이 화끈해서 잠깐 바람을 쐴려고 밖에 나왔다. 밖에는 같이 회식하는 사람 중에 흡연자들이 삼삼 오오모여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적당히 바람을 쏘이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도저히 계단을 못 올라가겠다. 식당이 3층인데, 2층까지는 난간을 붙잡고 올라갔는데, 3층을 올라가는데, 누가 자꾸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계단에서 구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서 바람을 쐬는데, 순간적으로 너무 어지러웠다. 자세를 구부정하게 있으면 괜찮은데, 일어만 나면 뒤로 몸이 넘어갔다. 옆에 있는 동료가 내가 너무 이상한 걸 알아채고, 119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에 실려서 그대로 병원에 갔다. 머리가 너무 어지럽다고 하니, 뇌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려고 구급차에서 계속 말을 시키고, 다리를 들어 보라고 하고, 뭐 여러가지 동작을 시켰다. 그 와중에 갑자기 공항장애 쇼크도 왔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마음 속으로는 이렇게 죽을 수도 있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난 너무 아쉽다. 죽기전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죽기전에 걸작을 써서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고, 전문 경영인으로 나의 역량을 발휘하고 싶고, 많은 책들을 더 많이 쓰고 싶다. 그런 것들을 하지 못한 채로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내가 죽으면 남아 있는 가족들은 어떡하지 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구급차 안에서 죽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별로 생각이 안 났다. 


 차라리 그냥 이대로 의식을 잃고 기절해서 죽는 것도 괜찮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으면 다 끝 인걸 뭘 그렇게 바둥거리냐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없어도 남아 있는 가족들은 잘 살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걸작을 못 쓴 후회에 대해서도 그거 못쓰면 어떠냐, 죽으면 기억도 못할 텐데라는 생각에 별로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쨋거나, 난 죽지 않았고, 심각한 탈수 증상과 저협압 쇼크 때문이라고 의사가 이야기를 했다. 12시가 다 돼서 집에 갔고, Suna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을 했다. Suna는 이를 믿지 않았고, 그럴 때를 대비해서 구급차에서부터 병원을 나올 때 까지 나의 보호자 역할을 한 직장동료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고, 그 사진을 보여주니 Suna는 믿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Suna가 나에 대한 태도가 혹은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넌 건강해, 꾀병 부리지마’ 라는 마음은 계속 갖고 있다. 2019년에 평생 처음 구급차도 타보고, 내가 세금 낸 보람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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