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없지만 추억은 있어
시니컬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
"요즘은 우리 때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지는 않을 걸요?"
모르는 이야깁니다. 이미 '않을 걸요?' 하며 확신 없는 말투로 대사를 끝마쳤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렇게밖에 얘기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 말을 제게 건넨 사람은 적어도 저와 동년배이거나 한두 살 많았거든요.
20대에는 기고만장한 태도로 마치 청담동을 씹어먹다시피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녔습니다. 그중에는 단골집들도 더러 있었고,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식당도, 전국구로 확장된 식당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보통 술과 안주를 파는 술집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은 식사 위주의 식당에서 지인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꼭 한번 위의 대화를 하곤 합니다.
"요즘 애들은 예전처럼 술 잘 안 마시지?"
술이 약한 저는 술을 많이 마시는 문화를 싫어합니다. 안타깝게도 그 문화는 한 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인은 술을 잘 마신다는 인식이 세계 어디에서도 통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이미 가정을 이룬 저는 그 문화의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합니다.
아무튼 저는 술에 취해야 재밌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를 싫어합니다.
주량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는 술은 잘 못하지만 술자리는 좋아한다고 대답해 왔습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수다를 좋아하지만 술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임에는 늘 술이 동행한다는 전제가 성립되기 때문에 가능한 대답입니다. 이 대답이 십수 년 간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변치 않는 대답이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주량, 술자리, 사람, 모임 등의 단어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공감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모임에는 술이 함께하고, 많이 마시는 것이 더 즐겁다'라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요즘에는 적당히 기분 좋게 마시고, 술잔을 강요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것 같습니다. 술 강요를 하지 말라는 상사의 지시가 함께하는 회식자리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물론, 회식 내내 강요하지 말라는 배려가 반복되는 바람에 오히려 분위기가 싸해진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요.
경우야 어찌 되었든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분위기를 아는 사람,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사회적 공감대를 싫어합니다.
알코올쓰레기인 줄 알면서도 친구가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 부어라 마셔라 하며 어린 시절 달밤을 지샜습니다. 1차에서 넉다운, 눈뜨면 2차, 눈뜨면 3차, 눈뜨면 4차. 정신을 차려보면 친구에게 부축받으며 현관 앞 아버지 품으로 넘어가면서도 24시간 운영하는 금수복국, 새벽집, 신의주찹쌀순대는 꼭 들러 해장술 한잔을 했었습니다. 기억도 나지 않지만 즐거웠겠거니 믿으며 다음 날 신물을 게워냈습니다.
나이가 들어 자연스레 주변 친구들의 주량이 약해지고, 출근해야 할 내일이 있고,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 보니 제게 맞는 모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직도 지인 몇몇은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지 못하는 아쉬움에 신세한탄이 가득하지만, 그래 봐야 이제는 술 한 병보다 맛있는 안주를 더 좋아할 것이라는 알기에 모임 참여가 즐겁습니다. 회사 회식에서도 알콜쓰레기에 대한 배려가 적당히 자리를 잡은 탓에 앞선 걱정이 필요 없어 편안합니다.
하루 밤 만에 가게 벽을 따라 맥주병을 빼곡히 세워두던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어느덧 맛있는 안주의 탐닉으로 바뀌어버린 요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엔 기억이 나지 않도록 퍼마셨고, 지금은 배가 터지도록 안주를 퍼먹고 있습니다. 즐기는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추억과 관계는 지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