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카미니토 거리
보카를 여행한 건 10여 년 전이다. 서울과는 밤낮도 계절도 정반대인 곳이다. 서울에서 지구 중심을 통과하면 정확히 보카에 닿는다.
보카가 부산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항구 도시라를 공통점 때문인가 보다. 아르헨티나 보카와 부산 남포동은 열정의 고장이다. 향수를 달래려는 사람들의 격정의 몸부림이 넘쳐난다. 다만 그 방법에 차이가 있다.
보카는 탱고의 본향이다. 탱고는 매우 현란한 춤이다. 한국적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원색적 매력의 춤이다. 우리의 춤은 남녀상열지사를 표현할 때 스카프나 천을 이용한다. 긴 보자기를 사용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휘감는 동작 등으로 애정을 묘사한다. 살풀이춤, 승무 등 애잔한 연가에는 모두 천이 사용된다. 여기서 천은 감정을 형상화한다. 간접적이다.
탱고는 강렬하다. 섹시하고 직설적이다. 보이는 대로 이해하므로 더 생각할 게 없다.
남포동엔 촉수 떨어지는 백열등 아래서 술잔을 기울이는 하선 어부들로 초저녁 기운이 으스스하다. 뱃멀미를 내려놓은 안도와 오랜만에 육지를 밟은 감격으로 선원들은 삼삼오오 술집으로 몰린다. 남포동은 떠들썩하지만 그들의 술잔엔 한이 떠 있다. 남포동의 밤은 조용히 깊어간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옛 항구 도시였던 보카는 유럽의 이민자들, 특히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온 인부로 넘쳐났던 곳이다. 이들은 고된 일상을 마치거나 먼바다에서 돌아오면 춤과 노래로 향수를 달랬는데, 이방에서 추는 춤이라 그랬는지 이들의 춤은 본래의 격식과 우아함이 없어지고 강렬하고 빠른 리듬으로 변형되었다.
보카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은 카미니토 거리다. 레스토랑이 다닥다닥 연이어 붙어 있고, 가게마다 탱고를 출 수 있는 작은 노천무대를 갖추고 있다. 골목마다 낡은 채 서 있는 집들 외벽은 비비드톤의 페인트로 마감되었다. 그 뒤로 탱고 이미지의 벽화가 끝없이 이어진다. 풍경은 조잡하고 사람들은 취했지만 끊임없이 공중회전하는 탱고 음악은 이런 너저분한 광경을 찬란함으로 치환한다. 유래가 어떻든 형식이 어떻든 흥에 겨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보카에서 탱고보다 적절한 은유는 없어 보인다. 탱고는 그들의 화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