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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워홀러 이야기 ①

일단 떠나기

by 임성모 Sungmo Lim
생선(김동영),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꺼야


캐나다 Workingholiday visa 신청하기


뇌 구조 사진이 한창 유행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나의 뇌에는 ‘사랑’과 ‘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코딱지 만한 ‘슬픔’도 한편에 있었다. 나는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왜 이런 고민을 대학도 다 졸업하고 군 전역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이 시점에서 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뭐하며 살았나 싶으면서도 이제라도 이란 궁금점을 갖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항상 막연했다. 내 가치관을 확립시키는 연습이 부족했다. 물론 지금도 엉망이지만.


진호에게 연락이 왔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같이 신청하자는 것 이었다. 군 복무 중이라 제약도 많았지만, 진호의 도움으로 서류를 갖췄다. 무슨 일이든 맡기기보다는 직접 해보는, 호기심이 많은 친구였다.

캐나다는 연간 4,000명(전 후반기 각각 2,000명씩)을 선발하여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주고 있다. 전역 후 서류 합격 소식을 들었고 신체검사도 받았다. 그즈음 경기대 교학처의 조교로 임용되었는데, 시간을 잘 쪼개어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와 관심사인 목조주택에 관련된 책을 틈틈이 읽으며, 영어 공부도 깨알만큼 하였다. 개인적으로 니어링 부부의 ‘지혜로운 삶’이라는 책이 20대 중 후반,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준 것 같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다음 카페 ‘빨간 깻잎의 나라’에서 비자 신청부터 방 구하기, 구인구직 등의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2011년 5월. 서로의 한국 생활을 정리한 뒤 토론토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진호는 아프가니스탄 파병과 미국 여행 등 비행기를 탄 경험이 많지만, 나는 처음이었다. 어떤 이의 블로그에서 본 내용인데 비행기 이륙 시 엉덩이를 살짝 들어줘야 비행기가 스무스하게 이륙을 할 수 있다는 글이 생각났다. 기장님은 내 덕을 분명 톡톡히 보셨을 것이다.


토론토는 진호의 친척이 살고 있는 곳 이었다. 입국 심사 시 현지의 연락처가 필요했고, 실제로 일과 숙소를 구할 때까지 잠시 머물 생각이었지만, 혈기 왕성한 우리는 호스텔을 미리 사흘 간 예약해두어 신 세를 지지 않기로 하였다. Wifi와 전화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곳 이었다. 외국인의 한국 이름에 대한 발음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진호는 Taem(여자친구의 애칭), 나는 Terry(k.o.f에서 내가 즐겨 쓰는 캐릭터)라는 이름도 지었다. Yellowpage를 뒤져 토론토에 있는 carpenter나 cabinetmaker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일자리를 물었다. 제대로 정리도 안 된 영어로 모든 연락처에 전화를 했다. 지금 생각해 도 도무지 막무가내에 엉터리였다.


“안녕? 잘 지내? 난 테리 야. 너 일할 사람 안 필요하니?”


뭐 이런 식의 질문들이었다.

정말 웃기게도 두 곳에서 resume를 보내라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 카페 ‘빨간 깻잎의 나라’에서도 꾸준히 일자리를 살핀 결과, B.C주 dawsoncreek이라는 도시에서 housekeeping 및 maintenance 일자리도 구하고 있었다. Resume를 보냈고, 오라는 연락도 받았다. 선택의 길만 남았다. 외국인과 일 할 것인가(무슨 배짱인지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다), 아니면 월급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숙식이 보장되는 한인 사장님 밑에서 둘이 함께 일을 할 것인가.

서로 800불 정도씩을 갖고 왔기 때문에 경제적,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전자를 선택할 경우 interview를 보러 어떻게 갈 것이며, 방은 어떻게 구하고, damage deposit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물론, 이 상황도 인터뷰에 합격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가난한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고, 미국 여행의 경험으로 진호는 greyhound를 예약했다. 72시간이 조금 안 되는 이동이었다. 엉덩이가 정말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 에어컨은 왜 달리는 내내 켜 놓았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떠나기 전 날 호스텔에 있는 여행객들과 술자리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인 남성과 일본 여성 이었는데 모두들 서툰 영어로 대화를 하였다. 하지만 만국 공통어인 바디랭귀지가 있었기에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우리는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한 아끼고 아끼던 소주를 꺼내어 신라면을 안주 삼아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줬다.


*아메리카를 횡단하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그레이하운드 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고속버스 정도를 생각하면 될 듯. 뒤에 화장실도 있으나 이용이 금지된 상태였다.

www.greyhound.ca에서 예약을 할 수 있다.




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
그가 일하는 이유도 간단했다. 매년 8월이 되면 두 달 동안 인도네시아의 럼복이라는 섬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일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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