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21 - 귀국
바닷가에서 더 즐기고 싶지만, 상파울루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고, 바다가 지겹기도 하고, 여행도 너무 힘들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고속도로가 너무 복잡해서 길을 많이 헤맸다. 공원으로 빠지는 길이 있어서 점심을 해결한 후 다시 출발했다.
상 파울로로 가는 길이 바리케이트로 막혀있다. 무시하고 올라간다. 근데 트럭들이 막 내려온다. 분명 상행선인데... 매우 위험했다. 다시 돌아가서 다른 길을 찾을까도 생각했지만 주변 지명도 잘 몰라서 이정표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계속 올라간다. 대형 트럭들이 우리 옆을 스치듯이 무섭게 내려온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서 옆에 나타난 반대 차선을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반대쪽 도로가 공사 중이어서 차선을 반대로 열어놓았던 것. 지금껏 많은 오르막길을 달려왔지만 유난히 힘들고 무엇보다 굉장히 위험했다. 도로 옆에 작은 약수터 같은 곳을 두 번 발견했다. 물도 시원한 것으로 바꿔 채우고, 씻고, 배도 조금 채우고 다시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상파울루 시내에 들어왔다. 대도시다. 한 편의점에서, 아주머니가 적어주셨던 주소가 적힌 쪽지를 보여줬다. 바로 옆 피씨방에서 구글 지도를 검색하더니 무료로 출력하여 줬다. 고마워~!
지도를 들고 있었지만, 길이 너무 복잡했다. 묻고, 묻고, 물어 아주머니 댁 근처에 도착했다. 잡지를 파는 가판대 아저씨께 전화를 빌려 아주머니와 다시 통화를 했고, 잠시 뒤 아주머니를 만나 집으로 올라갔다. 우리 꼴을 보고는 웬 그지 두 명이 자전거를 타고 오더랬다.
계단형 아파트였다. 지하 주차장 창고에 자전거를 넣어두고 짐을 챙겨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바로 현관이었다. 집 안 거실에는 작은 bar 가 있었다. 엄청 부자이신가 보다. 눈물인지 따듯한 물인지도 모르게 감격의 샤워를 마쳤다. 식탁에는 따뜻한 집밥과 김치, 김치찌개, 블랙이 있었다. 너무나 잘 대해주셨다. 여행을 좋아해 이곳저곳 다니다가 한국 청년을 만나게 되면, 브라질에 올 계획이 있으면 자기 집 주소를 서슴없이 가르쳐주고 꼭 들르라고 하신단다. 왕년에 사진가로 활동하시던 아저씨는 북한 방문 시절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찰 진 욕을 섞어가며 재미있게 해주셨다. 블랙은 얼마든 있으니 마음껏 마시라고도 하셨다.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한인 동료들에게 종종하셨다는데 우리가 진짜 자전거를 타고 올 줄 몰랐다며, 한 친구분이 집으로 우리를 초대해 주셨다. 술자리는 즐거웠다. 아저씨들은 김광석 노래를 그들의 기타 연주에 맞춰 떼창 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뒤 지하에 있는 노래방으로 2 차를 갔다. 매장이 아니고, 집 지하에 노래방 스테이지가 있었다. 나올 때의 기억은 없다.
이곳에 있는 한인 대부분은 의류 업에 종사하는데, 그들이 브라질 전체의 패션을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라질 전역의 의류 매장에서 이 곳, 상 파울로로 옷을 때러 온다고 한다. 동대문과 비슷한 시스템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그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아주머니, 아저씨는 부지런이 일을 나가신다. 동네 구경하고 싶으면 같이 나가던지, 아니면 편히 쉬라며 늘 부담 없이 우리를 대해 주셨다. 5일 정도 집에만 있었다. 그냥 집에서 먹고, 싸고, 자고, 씻고, TV를 보는 일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주말에 상 파울로의 축구 홈경기가 있어서 보러 갈까 하다가 귀찮아서 집에서 시청했는데, 다음 날 뉴스에서 그 경기 후 양팀 축구 팬들끼리의 충돌로 한 명이 총으로 사망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안 가길 잘했다.
일주일 동안 한국과 브라질 전통 음식, 전통 술을 사주셨고, 시장 구경도 시켜 주셨다. 부모님께 선물 하라며 프로폴리오 약도 사주시고, 비행기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셨다. 한 아주머니께서는 어머니께 선물하라며 옷도 여러 벌 챙겨 주셨다. 너무 많은 신세를 지고 간다.
아, 자전거를 한국에 갖고 가기도 귀찮고, 가난한 브라질 소년에게 주고 싶었지만 밖은 갱들의 천국이고(어제 밤 술자리에서 아저씨는 12 인조 강도단이 집에 쳐들어왔단 이야기도 해주셨다), 처분이 골치였다. 아들과 그 친구에게 각각 주기로 했다. 부잣집 아들래미 눈에 성이 찰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건강하시고, 술 많이 드시지 마세요. 고맙습니다~!!!
유난히 아름다운 경치에 카메라를 꺼내 들었을 때, 이미 그 장면은 지나간 이후이다. 가물가물한 기억조차 유난히 아름다웠던 순간, 화양연화는 늘 당신의 5분 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