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교 3학년 때 대기업 취직이 확정되고, 그렇게 나는 평범함과 안정감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다. 하고 싶은 일 또는 공부를 찾아 많은 것을 져버리고 훌훌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심장이 빠르게 뛸 때, 약 1년 전부터 출근을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출근을 할 수 없는 마음이 될 때에도, 나는 나를 계속 속였다. 다들 그러는 거라고, 괜찮다고, 남의 돈 버는 건 원래 어려운 거고, 이 고비만 넘기면 괜찮아질 거라고. 몇 번이나 ‘휴직/복직’ 앱에 커서를 갖다 대면서도 과장을 1년 앞둔 중요한 시점에 육아휴직도 아닌 일신상의 휴직은 잃는 게 확실한 게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주지 시키며, 점점 고장 나는 나를 모른 체했다. 의외로 마음보다 몸이 먼저 무너지며 휴직을 하게 되기 전까지 말이다.
인생은 경쟁으로 시작해서 경쟁으로 끝날 것만 같았다.
나의 다이어트는 그렇게 휴직과 함께 시작되었다. 우선은 작년보다 15kg이 늘어난 내 몸이 살려달라고 보내는 신호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숨 쉴 때마다 느껴지는 남방에 닿는 배의 감촉, 발등이 아닌 배에 떨어지는 치약이 주는 불쾌감은 차치하고, 거울 속의 나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를 살펴주기 위해 '잠시 멈춤'을 선택했는데 나를 마주할 용기조차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그래, 더 이상 나를 외면하지 말고, 남에게도 나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나로 살자. 나를 속이지 말자.’ 굳센 다짐은 월요일 출근 걱정에 금요일 퇴근길조차 신나지 않았던 회사만 사라지면 실현 가능할 줄 알았다. ‘당분간 내 직업은 다이어터다, 다이어트만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나는 여전히 계속 누군갈 속이고 있었다.
휴직 한 달째, 그러니까 백수로 맞이하는 아침. 눈을 뜬 시간은 10시지만 ‘괜찮아 그렇게 많이 늦지 않았어’라며 우선 나를 속인다. 밥 솥에 현미 대신 흰 쌀이 가득한 밥을 보면서도 엄마에게 “오늘은 백미밥이야?”라고 묻지 않는다. 엄마에게 물어보면 아마 어딘가에 있는 현미밥을 꺼내 줄지도 모르지만, 나는 평소와의 차이를 못 알아챈 척 흰 밥을 입 안에 넣는다. (그러나 현미보다 100배는 맛있어서 표정은 속이지 못한다.) 열두 시 반에는 ‘네가 과연 할 수 있겠냐’는 우려의 시선을 잔뜩 받으며 신청한 그룹 PT 수업이 있지만 오늘은 왠지 갈 기분이 아니다. 내 돈 내고 내가 안 가는 건 내 자유지만, 차마 ‘공식적으로’ 안 간다고 할 순 없다. 나는 현재 직업이 없고, 하는 일이라곤 다이어트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충 운동복을 챙기는 시늉을 하고 집을 나와서 지하철을 타고, 아이코, 한 정거장 실수로(?) 지나친다. 그룹 PT는 3호선 양재역 근처에서 있지만 어쩐지 나는 5호선으로 갈아탄다. 도착지는 피트니스 센터가 아닌 광화문의 어느 서점. 가벼운 에세이집 몇 권을 꺼내 들고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읽다가 운동이 끝날 시간쯤 엄마에게 카톡을 보낸다. ‘운동 끝! 저녁 먹고 들어갈게!’
속임, 내 눈에만 보이지 않으면 마치 없는 일이 되는 것처럼
속인다는 것은 당당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다.
인지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그럴듯한 스토리를 엮어 아무도 내가 당당하지 못한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고도의 시나리오 작업이다. ‘아무도 너에게 관심 없어’라는 말을 머리론 이해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끝없이 나를 증명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사람처럼 우리는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에 익숙하다. 괜찮지 않은 나를 끝없이 괜찮다고 속인 대가로 이렇게 골병이 났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백미를 현미로, 5호선을 3호선으로, 서점을 헬스장으로. 나는 그렇게 상상 속에서만 완벽한 다이어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한 말을 지키지 못하는 순간 세상은 나를 패배자, 믿음을 주지 못하는 사람, 의지가 박약한 사람으로 낙인찍을 것이라는 두려움. 그 두려움 때문에 성공은 과장하여 드러내고, 실패는 숨겨버리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습관은 회사에서의 나, 가정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 그리고 이제는 다이어트를 하는 나에게까지 그림자를 드리웠다.
‘인간 증발’이라는 책은 매년 8만 명의 일본인이 ‘증발’되어버리는 충격적인 사실을 목도하고, 이를 세상에 알린다. 입시, 사업, 결혼 등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포함한 모든 것을 버리고 실종 상태가 되어 대도시에 숨죽여 가명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세상에서 자기를 숨겨버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인데, 그들은 사람들 눈에 자신이 보이지 않으면 자신이 실패한 사실도 없어진다고 믿는다. 그렇게 세상과 자신을 속여, 자신의 존재까지 부정하기에 이른다. 처음 그 이야기를 접했을 때 ‘무언가를 이루어내지 못한 나는 온전한 나일수 없는 걸까’ 생각이 드는 동시에 내가 나를 잃어갈까 봐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불현듯 가방에 운동복을 넣고 광화문 교보문고 한 구석에 앉아있는 내가 왠지 0.1g 정도 세상에서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현재 나의 공식 좌표는 강남 피트니스센터인 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재하는 나는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조차 제대로 못하는 내가 아무런 의지도 없고 기능도 못하는 돌멩이처럼 느껴졌다. 우울한 마음에 그동안 잘 지켜오던 식단조차 지키기 싫어, 저녁이나 흥청망청 먹을 요량으로 친구들을 불러냈다. ‘그래 오늘은 치팅데이야!’라고 외치며 또 괜찮을 것이라고 나를 속였다. 아마 다이어터라면 제대로 된 스쿼트 방법은 잘 몰라도 치팅데이가 뭔지는 누구보다 정확히 알 것이다. 턱 근육이 아플 만큼 질긴 풀떼기와 알약으로 만들어 한 번에 삼키고 싶을 만큼 맛없는 단백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합당한 날이다. 밀가루와 탄산, 튀김과 맵고 짠 것. 수많은 선택지 중, 몇 개를 아주 세심하게 골라서 적정량을 먹어야 하지만 그 날의 치팅데이는 화약고에 있는 폭죽을 모두 터트리기로 작정한 미치광이 왕이 벌이는 축제 같았다. 곱창으로 쇼케이스를 시작한 축제는 치킨과 떡볶이, 라면이라는 메인 공연을 거쳐 새벽 네 시가 다 되어서야 해장국을 피날레로 화려한 막을 내렸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후 처음 가져보는 환상적인 치팅데이, 아니 치팅 페스티벌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꿈도 없고, 돈도 못 버는데, 살도 못 빼..” 입안에 음식을 잔뜩 넣고 술주정도 했다.
나는 꿈도 없고, 나는 돈도 없는데, 나는 살도 못빼
그러나, 놀랍게도 체중의 변화는 없었다.(물론 다음날 엄청난 숙취로 인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긴 했지만)
잘못 본 줄 알고 몇 번을 확인했지만, 체중계는 3초 정도 같은 숫자를 깜빡-깜빡- 거리다가 계속 같은 숫자를 보여주었다. 어제 잰 몸무게와 같았다. 치팅데이는 제한된 칼로리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섭취된 고칼로리 음식을 지방으로 흡수시키지 않고 몸 밖으로 배출시켜버리는 원리다. 몸의 항상성,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해 ‘이게 진짜일 리 없다’는 몸의 자연스러운 거부반응을 이용한 상당히 과학적인 방법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과학적(?)이라니. 체중계의 숫자를 보는데 눈물이 찔끔 맺혔다.
‘그동안 열심히 했잖아. 한 번쯤은 눈 감아줄게’ 숫자가 깜빡거릴 때마다 그동안 내게만 등을 돌리고 있던 세상이 갑자기 인자한 윙크를 날려주는 기분이었다. 잠깐 세상에서 잃었던 내 0.1g을 다시 찾은 기분마저 들었다. 몸무게가 다시 돌아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 몸이 그동안의 나를 믿어주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하루쯤 먹어도 괜찮을 만큼 열심히 다이어트했다고, 한 번쯤 쉬어가도 괜찮을 만큼 열심히 살아왔다고, 그렇게 위로를 받는 기분 때문이기도 했다.
그 날 나는 체중계 앞에서 경건하게 섰다. 그리고 내가 손에서 조금만 힘을 풀면 모든 걸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조금은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아가 완벽하지 않은 나도 나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내 몸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나를 눈 감아주듯, 한 번의 실패가 그동안의 나를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도 가져 보았다. 모든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인 것은 아니다. 세상은 한 번의 실수로 나를 파멸시킬 만큼 잔인하지도 않으며, 생각해보면 무언가 망가질 때까지 소모하며 살아왔다는 것은 꽤나 열심히 살아왔다는 반증이지 않은가. 버티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온전히 휴식하는 마음으로 내 몸과 마음을 들여다 봐 주기로 했다. 내 몸은 10번 중 7번 정도는 최선을 다하는 나를 꽤나 믿고 있지 않은가! 옆 길로 빠져버린 3번에 대한 자책이 끝나면, 최선을 다한 7번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공평하지 않겠는가!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일단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렇다 할 꿈도 없고, 돈도 못 벌고, 그렇다고 회사로 돌아갈 용기도 없으며, 심지어 살도 드라마틱하게 빼고 있지 못하다.그러나 늦게까지 자고 싶으면 자고, 책을 읽고 싶으면 읽고, 밖에 나가 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들어오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책을 오래 읽을 수 있구나, 내가 생각보다 걷는 것을 그렇게 막 좋아하지는 않는구나, 나는 원래 발라드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그루비한 음악을 꽤 좋아하는구나, 오전의 지하철은 이런 풍경이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오롯이 나를 돌아보며 하루를 보낸다. 뱃속에서 나는 천둥소리를 견디며 평일을 보내지만, 주말에는 일주일의 굶주림이 아깝지 않도록 마음껏 먹는다. 그것을 원동력 삼아 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지금은 그저 그뿐이지만, 나의 요즘은 별 것 없이도 꽤나 잘 굴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