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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래 Oct 13. 2020

결혼하면 원래 살찌는 거 아닌가요?

지속가능한 음주생활을 위한 다이어트


'남편은 회식 때보다 더 자주 꽐라가 되곤 했다.'

   나는 결혼을 하면 어설프지만 함께 끓인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등으로 간단히 저녁을 먹고, 함께 설거지를 마치면 사이좋게 손잡고 동네 산책을 나갈 줄 알았다. 그리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오순도순 얘기하다 잠이 들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매일이 폭식과 폭음의 연속이었고, 자주 필름이 끊긴 채 잠들었다. 일과 생활에 대한 즐거움과 노여움, 관계와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대 등 우리는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대화 주제를 식탁 앞에서 펼쳐 놓고 안주와 함께 먹고 마셨다.

계속 술만 마셨어 그냥

   

   연애 시절 유효했던 ‘싸울 때에도 손잡고 싸우자’는 룰은 깨진 지 오래였지만, ‘싸우더라도 우리 건배는 하고 마시자’라는 새로운 암묵적인 룰이 생겨났다. 서로 사소한 잘못을 했을 때에도 우리는 ‘짠’을 잊지 않았다. 물론 평소처럼 속없이 소리 높여 “짠!!”하지는 않았고, 그저 무심하지만 당연한 의례처럼 잔을 톡-하고 부딪힐 뿐이었다. 


   그렇게 몇 잔을 주고받다보면, 어른의 대화(?)를 나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그 기분에 취해서 서먹하게 각자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식당에 들어갔다가도, 불콰하게 취한 채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나오곤 했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로 인해 우리 부부는 몹시 뚱뚱해졌다. 특히 나는 결혼을 준비하며 대부분의 예비신부들이 그렇듯 군살을 한 번 정리했던터라, 그 변화가 더 드라마틱했다. 봄 웨딩촬영 때 입은 바지는 가을이 되자 무릎까지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남편은 치약이 자꾸 발등이 아니라 배 위에 떨어진다고 했다. 


   그 해 건강검진 결과, 나는 결혼식 때보다 12kg이 늘어난 '경도비만' 상태가 되어 있었고, 남편은 지방으로 인해 담낭벽이 두꺼워졌으므로, 재검을 권한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쯧쯧, 어쩌다 이런 형편없는 남자를 만나서...'

출처 : 네이트판 ('20.9.22)


   ‘결혼하면 살이 찐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진다. 더 이상 성적인 매력을 유지하고 관리할 필요성을 적게 느끼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이치다. (아, 가끔 결혼과 동시에 ‘아내는 남편에게 밥을 먹이는 사람으로 변신한다’고 믿는 어떤 사람들은 결혼 후에도 살이 오르지 못한 남자를 동정하기도 한다.) 


   나 역시 날개뼈가 튀어나오던 결혼식 때의 몸매를 유지하겠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아랫배에 냄비 손잡이가 생기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다. 더불어 ‘담낭벽 비후’라는 생전 처음 듣는 증상을 하루 종일 검색하게 될 줄도 몰랐다.    


   한창 네이트판이 흥하던 시절, 가끔 올라오는 ‘결혼 후, 살이 찐 아내가 실망스럽다’와 같은 류의 글을 볼 때마다 글쓴이를 혐오하곤 했다. ‘한평생 외모 강박에 시달려왔을 당신 아내가 이제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조금 마음 편하게 살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아니꼬울까’ 하는 반발심이 일었다. (혹시 몰라 네이트판에 '20kg'을 검색해보니 아직도 비슷한 종류의 고민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그러니까 내 뱃살도 사랑해주는 남자와 결혼해야지 저런 형편없는 남자는 만나지 않을거야'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주 러닝머신 위에 올랐으며, 덤벨을 들었다.


'나는 누구를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가'

매일이 사이즈와의 전쟁이었던 삶,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을까.

   분명 20대의 나는 모든 이성을 잠재적 연인 상대로 여겼으며, 그들이 원하는 ‘날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위해 다이어트를 했다.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는 운명의 남자를 겨우 만났는데 ‘어머, 당신은 모든 것이 맘에 들지만, 너무 뚱뚱하셔서 제 운명의 상대가 되실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상상도 하곤 했다. 


   내가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지에 집중하지 않고, 누군가가 좋아하는 대상이 되기 위해 다이어트를 했던 셈이다. 그런 피해의식 때문에 ‘살찐 아내에게 실망하는 남편’에게 유독 심하게 분노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렇게 될까봐, 나 역시 누군가를 실망시킬까봐.      


   지금의 남편이 운명의 상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함께하는 야식이 주는 즐거움이 낯선 이와의 설렘을 찾고 싶다는 욕망을 이긴지는 오래되었다. 그리고 다행히 (아직) 그는 무릎까지밖에 안 올라가는 바지를 붙들고 실성한 사람처럼 웃고 있는 내게 실망이라느니, 자기 관리를 하라느니와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덩달아 같이 늘어난 뱃살을 걱정하면서도, ‘아, 오늘 약간 칙칙고기 느낌인데...’라는 (너무 크게 말해서 다 들리는) 나의 혼잣말에 못 이기는 척 단골 고깃집으로 운전대를 돌릴 뿐이다. 아마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운명의 상대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함께 산 신발처럼 천천히 몸이 낡아가는 것, 함께 보내는 시간의 줄기만큼 이마의 주름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가 처음 반했던 그 시절의 나,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 시절 그의 모습을 조금은 더 길게 유지하고 싶은 마음 또한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큰 걱정 없이 내가 원할 때 고기를 굽고, 원하는 사람과 술을 마실 수 있는 정상의 상태로 몸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삶의 이유에 가까웠던 남편과의 야식&음주타임에 대한 기대에 '이대로 괜찮을까'라는 걱정이 한 스푼 얹어지자 그제서야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과 함께하는 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시 다이어트를 하기로 했다. 물론 남편도 함께 말이다.   


'우리 같이 오래오래 해 먹어요...'

오래오래 함께 해먹으며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인 그들처럼

   어제는 장을 보러 갈 때마다 디폴트로 카트에 담던 ‘참이슬 6병’과 ‘블랑 4캔’을 담지 않았다. 대신 현미쌀과 귀리, 백오이와 방울토마토, 양상추와 닭가슴살 등을 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래전에 지운 ‘런데이(RunDay)’앱을 다시 깔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뜀박질을 시작했다.


   역시 둘이 같이 뛰니 힘듦이 절반이 되...지는 않고 힘든 사람이 2명이 되었지만, 그래도 다이어트 전 과정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시작하기’ 미션을 해낸 것만으로 괜히 큰 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시간여의 러닝을 마치고 엘리베이터에서 숨을 헐떡이며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우리 같이 오래오래 해 먹어요..." 남편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 알겠다고 했고, 나는 그의 표정이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FIN.

 

  * 커버는 Youtube 땅끄부부(Thankyou BUBU) 영상 중 일부 캡쳐입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c/thankyoubu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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