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부터 간간히 서버가 불안하더니 이제 접속조차 쉽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컴퓨터를 켰다. '내 오늘은 기필코 귀찮음을 이겨내고 사진을 백업하리라'는 결연한 마음을 먹었다. 10년 전, 주소창에 수도 없이 입력했던 그 단어 '쵸재깅'을 입력했다. 죽을 듯 죽지 않는 최종 보스처럼 죽어가다 살아나다를 반복하던 때에도 접속은 원활했었는데 연말정산 첫날의 국세청 사이트처럼 엄청나게 버벅거렸다. 수없는 시도와 기다림, 그리고 궁시렁거림끝에 몇 년 만에 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현재는 이 다음화면으로 넘어가지지 않는다.
그곳엔 요정과의 내기에서 져서 입고 있을 법한 옷을 입고도 빙구처럼 웃고 있는 내가 가득했다. '셀카는 또 왜 이렇게 많이 올린 거야... 자의식 쩐다... 앞머리는 왜 이마 한가운데에서 끝나는 거지... 와 진호 선배 진짜 오랜만이다 여전히 무섭게 생겼으려나... 호주 다시 가고 싶다...' 한참이나 스크롤을 내리다 든 마지막에 생각은 지난 추억에 대한 그리움, 돌아갈 수 없음에 대한 헛헛함, 보고픈 이들에 대한 애틋함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와, 나 이때 엄청 날씬했네?'였다. 그랬다. 아무렇게나 찍힌 내 모습은 어떻게 봐도 날씬했다!
싸이월드가 한창 전성기를 누릴 무렵,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뜻하는 '리즈시절'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했고 그것은 약 15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관용어처럼 쓰인다. 오랜만에 방송에 복귀한 연예인들에게 '리즈 갱신'이라는 말만큼 듣기 좋은 말이 있을까? 나는 연예인이 아니므로 리즈시절을 갱신할 필요까진 없지만, 어쨌거나 '리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시절을 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그곳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딱 원하는 모습의 내가, 그러니까 '나의 워너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워너비는 다양하다. '이 사람의 엉덩이를 갖고야 말겠어'라는 워너비부터 라이프스타일을 닮고 싶은 워너비도 있다. 이를테면 둘 모두에 해당되는 대표주자는 이효리다. 2000년대 초반에는 '효리처럼 예뻐지자'라는 카페가 있을 만큼 이효리의 외모, 몸매, 패션이 단연 워너비의 대상이었다. 현재는 작은 결혼식을 시작으로 유기견을 돌보고, 채식을 하며, 요가를 하는 이효리의 삶의 방식 그 자체를 워너비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 시대가 변하면 워너비도 변하고, 워너비를 결정하는 기준도 변한다. 요즘은 워너비가 없는 시대에 가깝다.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언제든 누구에게든 실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상처 받지 않을 만큼만 기대하고, 배신당해도 괜찮을 만큼만 믿다 보니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입밖에 내기가 선뜻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의 '당신'이었던 사람이 어느 날 사회면에 얼굴을 드리미는 일이 꽤 자주 일어나니 말이다. 마치 싸이월드에서 발견되는 흑역사처럼 '내가 이 사람처럼 되고 싶어 했다고?' 하며 부끄러운 일도 종종 생긴다.
그런 이유로 한동안 비워놓았던 워너비의 자리를 채워줄, 절대 배신하지 않을 나의 워너비가 되어 줄 사람을 나의 싸이월드에서 찾았다. 그것은 바로 사진첩과 다이어리, 그리고 사람들과 주고받은 댓글에서 발견한 '과거의 나'였다. 그곳에서 발견한 리즈시절의 나는 몸이 날씬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곳의 나는 사람들과 구김살 없이 어울리고, 편견 없이 모두에게 친절하고, 상처 받아도 꿋꿋이 일어나서 도전하고,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미숙한 감정 표현으로 상처 받은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사과할 줄도 알았고, 온전하게 매달려본 뒤에 포기할 줄도 알았다. 서툴긴 했어도 고집, 아집, 겁, 편견 같은 것들이 없기에 마음의 무게도 가벼워 보였다. 그래서 무언가를 덜어낼 필요가 없어 보였다.
마흔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참 싫었다. '내 뜻대로 살아지는 삶도 아닌데 왜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람?' 꽤 오랫동안 그런 무책임한 태도로 살아왔기 때문일까? 최근 내 두 볼은 날계란을 얹어놓은 듯 빵빵해졌고, 아랫배는 나날이 그 위용을 자랑했다. 내가 평소에 30킬로쯤 나가는 줄 아는 할머니가 '이제야 좀 보기 좋다'라고 말할 정도다. 싸이월드 속 나는 화장은커녕 선크림도 제대로 바르지 않아서 피부는 얼룩덜룩하고, 국군장병도 탐내지 않을 카고 바지를 입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방해공작들로도 가릴 수 없는 생동감과 건강함을 뽐내고 있다. 학교를, 동아리를, 전국 각지와 세계를 정신없이 누비며 말이다. 꽤 오래 방구석에 혼자 누워만 있던 내가 지금 당장 박차고 일어나 변신하고 싶은 모습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우리에겐 모두 리즈시절이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삶이란 과거의 나와 끝없이 싸우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추억하는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로 돌아가기 위한 전투. 그때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는 없더라도, 그때의 나만큼은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 이루기 간단해 보여도 결코 쉽지 않은 그 희망이 결국 오늘의 나를, 그리고 내일의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리즈시절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과거이기에 늘 그대로 거기에 있다. 비현실적인 목표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내가 거쳐왔던 과거이기에, 내가 언젠가 해냈던 일이기에 다시금 해낼 수 있다. '수영을 할 줄 알게 되면 수영을 못하던 시절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내가 이걸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내 몸은 물살을 가르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겠지만, 어쨌거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내가 해냈는데 지금의 내가, 그리고 앞으로의 내가 못할 리 있겠는가.
싸이월드의 존폐를 두고 아직도 의견이 다양하다. 대표는 3200만 명의 추억 보전을 위해 서버를 보존하고, 투자를 기다리는 등 회생 의사를 다지고 있지만, 이미 급변한 SNS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싸이월드의 재기가 가능할 것인가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다운 법이고, 삼순이의 명대사처럼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그저 추억을 추억으로 남겨두려는 마음으로 접속했으나, 의외로 추억에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은 이 공간에 고맙고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백업 프로그램이 다 돌고 사진 저장이 끝났다. 오늘은 오랜만에 그 시절 따라 했던 다이어트 비디오를 틀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날씬하고 당당한 소라 언니가 좋을 것 같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