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처음 본 건, 동네 서점이었다.
작은 골목 끝에 자리한 오래된 서점.
책 냄새와 먼지가 섞인 공기가 있고,
조용한 재즈 음악이 흐르는 그곳에서
그는 한 권의 시집을 들고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눈길이 간 건, 그의 어깨 위에 피어오르던 색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색이었다.
푸른색도 아니고, 초록도 아닌…
차분하면서도 단단한, 이끼 낀 돌처럼 오래된 색.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색은 감정의 껍질이 아니라, 감정 그 자체라는 걸.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의 눈동자 주변에서 번지는 미세한 빛.
그건 누군가의 감정을 ‘보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미묘한 흔들림이었다.
그도, 나처럼 보는 사람이었다.
“이 책, 예쁘죠.”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 활자보다 그 사이에 번지는 감정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돼요.”
그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감정을 본다는 것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었던 사람.
우리는 오랫동안 책장을 넘기며 이야기했다.
책의 문장들, 좋아하는 계절,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느껴졌던 낯선 감정에 대해서.
그는 말했다.
“사람의 감정은 본다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때로는 그걸 말해줄 필요도 있어요.
그게 위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숨을 들이켰다.
지금껏 나는 감정을 보았지만, 말한 적은 없었다.
그저 바라보다, 지나가고, 마음속에 쌓아두기만 했다.
그게 배려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침묵일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그 서점에 들렀다.
우리는 말 없이 책을 읽고,
가끔은 서로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 마음은 아주 조용한 색을 가지고 있어요. 말하자면, 안개 낀 새벽 같은 색이요.
차분하고, 외롭고… 그래서 더 소중한 색.”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내 감정의 색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안에 어떤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