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알빠노 시대
민병식
건강 관리를 위해 헬스클럽을 다니고 있다. 걷기를 시작한지 30분이 지날 무렵, 땀이 비오듯이 흐른다. 게다가 요즘 코로나 19변이가 생기고 또 유행할 조짐이 보인다고하여 다시 마스크까지 착용했더니 안그래도 더운데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 헬스클럽은 건강을 관리하는 장소이면서도 호흡과 헉헉대는 숨소리가 가득한 코로나 감염방 예방의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50이 넘어서부터 조금씩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기계로 따지면 거의 60년가까이 오로지 하나를 가지고 쓰고 있는 셈인데 세월엔 장사가 없으니 몸 이 곳 저곳에서 조금씩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하긴 25년이 넘은 직장 생활을 견디어낸 부침의 세월 동안의 감가상각을 무슨 수로 돌릴 수 있을까.
근육운동과 걷기 운동을 거의 매일 약 한 시간 이상 씩 하고 있는데 운동이라는게 규칙적인 간격과 흐름의 루틴이 있다. 그런데 기구를 사용하는 사람 들이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일어나지를 않는다. 한 번 이용하고 잠시 쉬는 시간에 자리를 양보하고 다른 사람이 이용할 차례를 주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서 휴대폰만 뚫어지게 본다. 휴대폰을 보는 시간이 길어지니 한 사람이 기구를 사용하는 시간이 끝없이 늘어나는 거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세입자'라고 지칭하는데 기구를 전세냈다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
'도대체 언제 일어나는 거지, 오늘 저 기구 이용하기는 글렀네'
이런 모습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니 어떤 날은 이용하고 싶은 기구를 이용하지 못하는 날이 허다하다. 헬스장 운영요원은 쳐다만 볼 뿐이다. 돈이 되는 고객이니 되도록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거다. 기본 예절의 부족이다. 타인을 위해 배려하는 마음을 찾을 수 없는 모습들은 우리의 일상생활
에서 쉽게 수시로 마주치는데 가장 대표적인 장소인 지하철 승강장과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 앞은 내리기 전에 먼저 타려고 하는 모습과 더불어 이제 우리의 모든 생활에 깊숙히 침투해있다.
이른 바 알빠노의 시대인 것이다. 알빠노란 '알 바' 와 'No'의 합성인 신조어인데 '내 알바 아니다'라는 뜻이다. 남이야 어떻게되는 나만 편하면 되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알빠 노가 선(善)의 마음을 녹슬게한다. 세상은 자꾸 경쟁사회가 되어가고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내가 선택받아야하니 모든 것이 내 위주이고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니 착하게 살면 손해본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착하게 산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삶의 태도였고 누구나 지녀야할 도덕적 가치관이었다. 지금은 착하면 어리숙하고 속여먹기 쉬운 바보취급을 받는다. 결국 당하지 않기위해 눈감으면 코를 베어갈까 CCTV처럼 전우좌후로 눈동자를 굴린다.
사람사는 꼭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배려, 양심 도덕, 질서 등 여러가지가 있을텐데 이 모두가 내면의 선함에서 나온다. 인간은 자기를 위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동물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자기 자신이고 이는 생존의 본능에서 출발하기에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내게 중요한 것은 남들도 중요하다는 대명제를 잊고 사는 듯한 모습을 볼 때면 서글퍼지기도 한다.
봄물 가득 머금은 벛꽃이 한창인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초록이 무성한 녹음이 우거진 여름을 지나 가을로 가는 입구에 성큼 한 발을 내딛고 있는 지금, 금방 어느새 포근한 이불같은 흰 눈 내리는 겨울을 맞을 것인데 계절은 정확히 오고 감의 순서를 지킨다. 내가 먼저 라는 조급함이 없이 그저 차례를 기다리다가 자신의 순서가 되면 사람들에게 갖가지 향기와 아름다움을 선사하면서 순환한다.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자연을 닮아야 할 듯싶다.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대가가 없어도 탓하지 않는 마음, 지하철에 분홍색 자리를 만들어 놓고 끈을 매달은 인형을 갖다놓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임산부를 위해 일어나는 마음, 내 앞으로 노인이 오면 눈을 질끈 감고 나이 듦을 모른 체하는 젊음이 아닌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먼저 도착한 수고한 분에 대한 예의로 생각하는 측은지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혼자가 아니다. 샘에서 물이 솟아 계곡을 흐르고 강물이 되듯 행복한 세상은 누군가 시작한 가장 작은 선함으로 부터 출발하는 사랑의 선순환이다.
선은 감사와 긍정의 향기를 뿜어낸다. 어두운 골목길을 밝히는 것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아니라 은은한 가로등인 것처럼 강퍅한 세상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은 배려, 양보, 위로 등의 작은 조각 들이다. 그 조각 들은 어디서나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놓여 있는데 못본 체하는 건 세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서로를 강퍅하게 만드는 알빠노보다 각자가 지닌 선한 마음 조각들을 서로 잘 맞추어 사랑의 퍼즐을 완성시킬 수 있는 착한 바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함께 살아가고자 할때 인간은 제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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