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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Nov 21. 2023

김장

초고령화 시대 에세이 8

[에세이] 김장

민병식


한 해가 거의 다가는 듯 벌써 김장 철에 접어 들었다. 날이 점점 추워지다보니 김장을 준비하는 집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요즘이야  핵가족 시대를 거쳐 혼자사는 단일가구도 많으니 도시에서 김장을 하는 집은 적어졌지만 예전에는  대가족에다가 겨울철 먹거리도 부족했던 때라 김장을 해 놓아야 한 식구가 길고도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었다.


해마다 이 맘때면 어머니께서 김장을 하시던 생각이 난다. 빠알간 무채, 고춧가루에 갖은 양념을 섞은 소를 준비해 두면 어느 새인가 머리에 수건을 덮어 쓴 동네 아주머니 들이 마징가제트처럼 '짠' 하고 나타나 서너 번 말갛게 헹구어 절여진 배추에 붉은 옷을 입힌다. 노란 속살 고갱이에  붉은 양념을 바르고 그녀들의 수다도 흠뻑 넣어 함께 버무린다.


아궁이에서는 따끈 따끈 흰 쌀밥 뜸 들이는 치익 치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양은 솥뚜껑이 들썩 들썩하고, 배추 속 아삭거리는 소리에 군침이 돈다. 나는 옆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구경하거나  잔심부름을 한다. 동네 아주머니 들의 깔깔거리며 떠드는 소리를 한참 듣다보면 어느새 김장이 끝나고  뭐라고 할 것도 없이 김장 김치 파티가 열린다. 김장 김치에 속을 넣고 돌돌말아 입에 넣어 주시는 김치는 매워서 혀를 낼름거리면서도 최고의 맛난 먹거리였고, 김치를 쭉쭉 찢어 김이 모락 모락나는 밥을 한 수저 뜨고 그 위에 척 걸쳐놓고 먹는 밥은 최고의 만찬이었다.


날이 어스름 해질 때 김치 한 두포기에 정을 담아 가는 아름 다운 고향의 풍경을 본지도 벌써 수십년이 지났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김장 독을 묻는 것은 아버지의 일이었는데 아버지가 뜰에 김장독을 묻으려고 삽질을 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물론 그때도 나는 어려서 구경만 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땀 덕분에 겨울 내내 아삭거리는 김치를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 추억으로 떠오르는지금 부모님은 자른 배추 속의 셀 수 없는 결 만큼이나 나이를 드셨다.


올해는 12월에말에 이사를 해야해서 돈을주고 김장을 맞추기로했다. 국거리도반찬도 김장까지 모두 포장이 가능한 편리한 시대이다. 한국사람은 김치 없이는 못산다고 반찬가게나 아파트에 장이서는 날 조금씩 사다먹기도 하지만 예전의 어머니가 해주시던 손맛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지금 아파트 장에서 배추를 쌓아놓고 파는 모습을 보니 지금은 남의 것이 되어버린 어린 시절 고향의 배추밭과  집 뜰 앞에 쌓아놓았던 배추 더미가 스쳐지나간다.


아파트 장에서 먹음직스러워보이는 김치 두어포기를 사서 부모님께 가져다 드렸다.


"요새 김장철이라 싱싱해 보이길래 사왔는데 좀 드셔보셔요!"


"네. 아버지  이제 매운거 잘 못드신다. 나도 속이 않좋아 죽만먹고''


어렸을 때 김치를 물에 씻어 숟가락위에 얹어 주시며 내게 밥을 먹여 주셨던 것처럼 이제 내가 김치를 물에 헹궈 드려야할 차례인 것같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하나도 안 매운 백김치로 준비해올께요!!"


돌아나오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진다. 너무 연로하셔서 얼큰한 찌개, 고추가루가 많이 들어간 김치도 잘 못드셔서 죽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이지만 매운 음식을 못 드셔도 좋고 죽은 얼마든지 사드릴테니 오래오래 내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어머니께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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