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결 Dec 27. 2023

닭볶음탕의 시간

감성 에세이 4

[에세이] 닭볶음탕의 시간

한결


날씨가 갑자기 영하 십여 도 밑으로 떨어지면서 강추위가 찾아왔다. 체감온도 이십도를 밑돈다니 근래들어 경험해보지 못한 추위다. 이런 날엔 뜨끈한 보양식이 언 몸을 녹이기에 제격인데 그 중에서도 얼큰한 국물이있는 음식이 딱이다. 경기도 북부의 고향마을에서 살던 어린시절, 이런 강추위가 찾아 올때면 어머니께서는 닭볶음탕을 해주셨다. 생선이 귀한 내륙의 농촌이었고 소는 농사일에 쓰였으니 소고기는 명절이 아니면 구경도 못했고 주로 돼지고기나 닭고기가 단백질 섭취원이었다. 그때 우리 집엔 닭장이 있었는데 닭을 키우는 목적이 계란과 고기를 얻기 위함이었기에 추운 겨울 한파가 몰아닥칠 때 쯤이면 아버지께서 손수 닭을 잡으셨다. 그때만해도 마을에 통닭집도 없었고 음식 배달도 안되는 시절이었으니 가장 편한 방법은 오일장이 열리는 날 시장에서 살아있는 닭을 사다가 직접 잡아 해먹는 것이었는데 우리집은 닭을 키웠으므로 그럴 수고를 덜 수 있었다.


닭을 잡는 날,  아버지는 낫과 칼을 먼저 갈았다.  선택당한 닭의 죽음을 예고하는 서걱서걱 낫 가는 소리가 무섭기도 했지만 그 후에 있을 만찬에 대한 기대가 닭에 대한 미안함을 잠재우는 순간이다.  이버지는 닭장에서 푸드덕거리는 닭의 날개를 잡고서는 낫과 칼을 가지고  뒷뜰로 가시고 그곳에는 따뜻한 물이 준비되어있었는데 내게는 한번도 닭잡는 광경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닭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 몸뚱아리가 되어있을 때쯤 나를 부르는 때가 있었는데 바로 그건 암탉을 잡았다는 신호였다. 닭의 몸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입에 넣어주었는데 바로 계란 노른자였다. 아직 껍질이 형성되지 않은 닭의 배안에 들어있던 동그란 노른자를 씹지말고 그냥 삼키라고 하여 목구멍으로 넘기면 '탁'하고  알이 터지면서 느껴지는 고소함의 풍미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의 아이들은 날계란을 먹지 않는다. 먹어본 적도 없고 비린내가 나서 먹지도 못할 것이다. 게다가 갖가지 화학조미료 맛에 익숙해져 있기에 닭볶음탕보다 프라이드나 양념 등의 치킨 요리를 더 선호한다. 나 또한 삶이 바쁜 탓에 집에서 닭볶음탕을 조리해 먹기란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고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입에 착착 감기는 맛난 음식이 휴대폰 클릭 몇 번이면 몇 분 안되어 식탁에 오른다. 이제 닭볶음탕은 굳이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먹을 필요가 없는 음식이 된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 갔다가 우연히 닭볶음탕 집을 발견하고 무작정 들어가 먹어보았는데 나름 맛은 있었다. 그러나 그 옛날에 먹었던 맛은 아니다. 더 좋은 조리기구를 썼을 것이고 더 많은 양념이 들어갔을텐데 차이가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겨울철에는 닭모이를 사료를 주었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풀어놓고 키웠기에 닭들은 풀을 뜯어먹거나 벌레를 잡아 먹고 자랐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내가 개구리를 잡아서 삶은 것을 모이로 주었었다. 지금은 개구리를 잡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그 시절엔 여름 밤이면 울음소리에 잠을 못잘정도로 개구리가 지천이었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 사람도 개구리 다리를 석쇠에 구워먹던 때였으니 영양가 풍부한 개구리 고기를 먹고 자란 닭이 얼마나 튼튼했을까. 그 튼튼한 닭과 식구를 위해 귀한 닭을 잡던 아버지의 사랑,  가족을 위해 정성을 다해 조리했던 어머니의 마음, 어린 시절 난 닭복음탕을 먹은 것이 아니라 자연과 부모님의 사랑을 먹은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부모님은 지금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이제 아버지는 낫을 갈 일도 없고 어머니는 닭볶음탕을 조리하기에 힘에 부친다. 주말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달콤한 닭강정과 생선구이,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달달한 군고구마 를 사서 부모님 댁을 방문한다. 부모님은 이제 매운 음식을 못드신다. 대신 닭강정과 군고구마를 연신 맛있다고 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닭을 잡던 젊은 날의 아버지와 부엌에서 조리하던 어머니의 젊음은 사라지고 그 날의 겨울 추위만 남은 지금 , 부모님의 사랑이 가득 담긴  닭볶음탕의 비법을 뒤로한 채 거스를 수 없는 더 많은 세월의 흐름이 부모님과 나의 얼굴에 새겨져 있음을 본다.

사진 전체 출처 네이버


작가의 이전글 을왕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