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저만치 앞에서 손짓을 하는 그러나 아직은 쌀쌀함이 남아있는 주말의 오후다. 대 여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아파트 공원에서 즐겁게 놀고 있다. 맑은 모습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문득 생각나는 얼굴 들이 있다. 예전에 경기 안산에서 근무할 당시 십 년도 훨씬 전의 일인데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아련해져오는 어느 남매와 아이들의 아빠의 이야기이다. 내 나이와 비슷해 보이는 한 남자가 있었다. 회사 동료의 소개로 알게 된 사람이었는데
동료의 고향 후배로 무척 성실한 사람이었고 일용 직일을 하기엔 아깝고 사는 환경이 어려워 정기적인 일자리라도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하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가 오른 손에 깁스를 하고 내가 일하는 사무실을 방문했다.
“웬일로 여길, 그리고 어쩌다가 이리 다쳤어요!”
“일당 일 나갔다가 좀 다쳤습니다.”
“아이고, 얼마나 다치셨어요. 이래선 일 못하실 텐데.”
“저도 걱정입니다. 한 달 이상을 쉬어야할 것 같아요. 병원 다녀오는 길에 문득 선생님 회사가 근처에 있는 것이 기억나 인사나 하려고 들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밥은 먹고 사는 줄 알았다. 이혼 후 아이 둘을 홀로 키우는 한 부모 가정인 것은 동료로 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일정 부분 국가의 보조도 받을 수 있었고, 노동일이라도 가끔 하기에 살만하려니 하고 시간 날 때 형편이 어떤지 한 번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며칠 후 그의 집을 방문할 짬이 생겼다.
다세대 주택 지하 원룸이 그의 집이었는데 겨우 화장실 하나가 딸린 한 평 남짓한 방이었다. 그곳에서 아직 미취학 아동인 듯한 사내아이와 여자아이, 남자가 살고 있었다. 노크를 하자 문을 열어주는데 바로 방이었고
가재도구라고는 구형 텔레비젼 한 대가 전부였다.
방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부침개를 부치고 있었는데 말이 부침개지 밀가루만 풀어서 부치는 그냥 밀가루 전 인거다. 그럼에도 맛있겠다며 천진난만하게 방을 뛰어다니는 아이 들의 눈망울을 보니 엄마가 없음에도 밝은 모습이 너무 기특하고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그 남자의 눈빛이 너무 따뜻해서 울컥했다. 쌀 봉지에 쌀이 조금 남아 있긴 했으나 찬이 없는 듯하여 급한 대로 쌀 한 봉지 하고 일회용 김 몇개, 참치 캔 몇 개를 사주고는 부침개를 같이 먹고 가라는 붙잡는 그의 성의를 뒤로하고 바쁜 업무로 그냥 돌아서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아이 들 마실 것과 과자라도 사주고 올걸!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못한 것 같은 후회감이 물밀 듯 밀려오고 의도는 아니지만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아낀 것 같아 미안하고 부끄럽다. 혹시 그 사람은 어린 아이들을 하루 종일 집에 놔두고 일을 다녔던 것 아닌가. 노동현장에서 아이 들 걱정은 하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져 다친 것은 아닌지 착잡한 마음에 하루 종일 머릿 속이 복잡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십 층이 넘는 빌딩과 번쩍거리는 도시의 겉만큼이나 그늘진 곳이 있다. 그곳에서 숨을 쉬고 세상과 부대끼며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희망을 꿈꾸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벌집이라고 불리는 쪽방에서 정부지원금으로 겨우 살아가는 노인 빈곤층, 어두컴컴한 고시원에서 월세 내기도 빠듯해 고시원에서 제공하는 밥과 김치가 전부인 청년 들, 그마저도 힘들어 무료급식소를 찾는 노숙인 들이 있다. 선진국이라는 빛나는 성과를 자랑하는 만큼이나 모든 이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 또한 우리 모두의 책임일 것이다. 산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은 숭고한 것이다. 존중받아야할 삶이 어려울 때 누군가가 조금씩 보탬이 되어준다면 내게 없어도 되는 작은 거지만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고 힘이 되지 않을까.
연탄 한 장, 도시락 하나가 모든 부족함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의 나눔이 함께 사는 세상을 더 가까워지게 한다. 크지 않아도 좋다. 따뜻한 작은 마음 조각 하나가 전달되면 그것을 받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사랑과 감사가 자라 함께라는 커다란 동행의 나무가 자랄 것이다. 세상은 누구 하나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닌 함께 사는 따뜻한 동행의 여정이다.
그 후 그는 힘든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아이 들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에 오니 마음도 편하고 아이 들도 좋아한다고 소식을 들려주던 그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하다. 여전히 햇살은 밝게 비추고 놀이터의 아이들 역시 즐겁고 힘이 넘친다. 신나게 뛰어노는 동네 아이들과 그 때 방안에서 뛰어놀던 남매의 환한 웃음이 겹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