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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야마 가타이의 '이불'에서 보는 인간의 한없는 미약함

문학 칼럼9

by 한결

[문학칼럼] 다야마 가타이의 '이불'에서 보는 인간의 한없는 미약함

한결


서구의 자연주의 문학은 19세기 에밀 졸라 등을 중심으로 프랑스에서 일어난 문예 사조로 이전의 낭만주의에 대응하여 인간의 사회와 현실에 참여하려는 방향으로 전개 되었다. 일본의 자연주의 문학은 처음엔 서구의 자연주의 문학 사조를 받아들였으나 점점 개인의 감정, 생활 등 을 드러내는 사소설의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다야마 가타이(1872 ~ 1930)는 1907년에 작품 ‘이불’을 발표하여 그 이후 자연주의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일본의 소설가로 고향, 시골교사, 백야 등의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다야마 가타이와 그 제자 오카다 미치요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서 봉건적인 윤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학 드러낸 사소설(私小說)이라는 일본 특유의 소설 양식의 선구적인 작품이다.


다케나카 도키오. 지리서 편집을 하면서 소설을 쓰고 있는 그는 출근길에 만나는 예쁜 여교사를 보는 것이 그날 그날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어느 날 고베의 여학교 학생이자 도키오의 작품을 좋아하는 요코야마 요시코라는 여성으로부터 연거푸 편지 세 통을 받는데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었다. 도키오는 거절을 하지만 요시코가 도쿄로 상경해서 제대로 문학을 배워보고 싶다며 다시 편지를 보내오자, 결국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다음 해 2월 요시코가 아버지와 함께 도키오의 집을 방문하고, 한 달 동안 도키오의 집에 머무른다. 도키오는 자신의 집에 하숙하게 된 요시코의 요염한 자태를 보며 신혼 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집에 가까워지면 가슴이 뛰었다. 도키오는 볼품없는 아내를 무엇보다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요시코를 만나고는 가슴이 요동친다. 그러나 아내가 불편해하자, 아내 쪽 친척들의 성화로 요시코를 처형 집에 맡긴다.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고 1년 정도 지날 시점에 요시코는 문학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 농부의 아내가 되겠다는 편지를 보내온다. 도키오는 요시코에게 성실하게 문학에 정진할 것을 권유하지만 요시코는 건강이 안 좋아져 4월에 고향으로 갔다가 9월에 돌아온다. 그 사이에 요시코에게 애인이 생긴다. 상대는 대학교 2학년, 21살 다나카 히데오다. 요시코는 교토를 출발해서 도쿄에 도착하기까지 이틀 정도의 차이가 있었는데 다나카와 같이 2일을 지낸다. 도키오는 질투가 타올라 매일 저녁 술잔을 기울이고, 요시코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부모님의 허락을 받을 때까지 지금은 공부에 전진하는 편이 좋겠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요시코는 매일 다나카를 그리워하고, 다나카도 빈번하게 편지를 보내온다.


얼마 후 다나카가 문학을 공부한다며 상경하고, 도키오는 요시코가 다나카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두려워하며 감시한다. 그리고 다나카를 찾아가서 요시코를 고향에 돌려보내든지, 아니면 요시코의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위협한다. 다나카가 요시코의 집을 찾아오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도키오는 불편함과 불안함 그리고 질투심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요시코는 다나카와 함께 하겠다는 뜻의 편지를 남기고 집을 나간다. 결국 도키오는 요시코의 부모에게 편지를 써서 그녀를 고향으로 데려가라고 한다. 도쿄로 상경한 아버지와 다나카가 마주하고 요시코를 데려갈 것이며 당분간 시집보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요시코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도키오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도키오는 요시코가 떠난 후 그대로 놔두었던 그녀의 방에 올라간다. 요시코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방에서 도키오는 그녀의 머릿기름이 배어 있는 리본을 집어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요시코가 덮고 자던 연두빛 당초무늬의 요와 이불을 꺼내 이불을 덮고 누워 그 이불에 배인 요시코의 체취를 맡으며 얼굴을 묻고 운다. 도키오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물론 나이가 든 유부남의 입장에서 생각해서도 않되고 실행해서도 안될 일인 것은 맞다. 자신의 애인으로 삼을 수 없는 환경에서 오는 그 회한은 아마 요시코를 애인으로 만들 수 있는 젊은 시절도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커다란 장벽 앞에서 질투와 분노와 그리움을 반복하며 스스로 얼마나 볼품없고 왜소한 존재인지를 자조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한 없는 미약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사진 전체 출처 네이버,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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