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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엄마

행복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큰 엄마

한결


아저씨가 소천하셨다. 어떤 아저씨인가 하면 우리 아이들을 간난아기 때부터 근 20년간 우리집에서 출퇴근 하며 돌봐주던 보모의 남편이다. 나에게는 평생 은인인 그 아주머니를 아이 들은 큰 엄마라고 불렀다. 야간 당직이 잦았던 나를 대신해 큰엄마는 우리 아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가 먹이고 재웠다. 월급도 많이 드리질 못했고 늘 죄송스런 마음뿐이었다. 아저씨도 내 아이들을 너무 예뻐하셔서 정을 많이주셨고 아이들도 그 만큼 따랐다. 아이들 큰 엄마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시는 참된 분이셔서 지금까지도 난 부모님을 제외한 최고의 은혜를 입은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같은 존재였다. 어렸을 때 인성교육을 큰엄마로부터 받았고 지금의 성인이 될때까지 잘 자라준 것은 모두 큰엄마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 엄마가 가족 단체방에 아저씨의 타계소식을 띄웠다. 군대에 있는 막내가 휴대폰을 보고 문상을 온다고 한다. 나 때는 상상도 못한 일이고 엄밀히 말하면 우리랑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직계가족도 친척도 아닌 온전한 남인데 청원휴가도 안될 것 같은데 아들이 선임에게 먼저 보고 후 부대에서 제일 높은 분을 만나 면담 후 사정을 설명하고 1박 2일로 자신의 연가를 쓴다고한다. 휴가에서 그만큼 제외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난 아들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아들을 전철역에서 만나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경기도 포천에서 버스를 타고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오는 아들, 어제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군복무에 충실하고 피로가 가시기도 전에 몇 시간을 달려오는 아들이 고맙다. 不忘之恩(불망지은)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는데 잊지못할 은혜라는 뜻이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여 태어나자 마자 큰엄마의 손에서 자란 아이는 큰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도 각별할 것이고 아저씨와도 많은 날을 보냈기에 늘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마음대로 신변을 움직일 수 없는 군대에서 나온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울 것인데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저씨가 천국에 가기전 우리 아이 들을 꼭 한 번 보고 가려고 했던 마음이 하늘에 닿았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갑자기 다 큰 어른처럼 보인다. 내 눈엔 마냥 어린 아이 같았던 녀석인데 먼길을 그것도 군대라는 조직 특성 상 어려운 연가까지 내서 온 아들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낮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큰 엄마, 큰 엄마의 딸들, 큰 엄마의 사위 들, 그리고 손자, 손녀까지, 큰 엄마가 아들을 보더니 반색을 하며 반긴다. 친척되는 분이 오자 큰엄마가 말씀하신다.

"내가 키운 애들 이예요"

가슴이 뭉클하다. 가끔씩 찾아뵐 것을, 아저씨와 함께 식사라도 할 것을, 한 발자국 내딛으면 닿는 죽음 앞에서 뭘 그리 바쁘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매었을까. 저녁식사를 하던 중 큰 엄마가 오셔서 고맙다고 몇 번을 말씀하시는데 당연한 것을 고마워하셔서 되려 내가 감사했다. 이제 갈 시간이다. 이제 갈 시간이다.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아저씨 사진을 본다. 아들이 큰 엄마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올린다. 아저씨의 미소 띠고 있는 사진이 꼭 고맙다고 말을 하는 듯하다. 이제는 다시 세상에서 보지 못할 또 한 사람이 여행을 떠났다. 서글픔이 밀려온다. 살아 있을 때 만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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