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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행복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거미

한결


휴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이스 커피를 한 잔 만든다. 약간 쓴 맛에 고소함을 가미한 커피와 더위는 시작되기전의 선선한 아침 분위기가 참 잘어울리는데 비록 도시의 중심이지만 커피와 함께 조경수를 바라보면서 즐기는 휴일의 아침은세상이 잠을 깨고 생명이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과 맞물려 내게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일주일중의 단 하루이기에 늦잠을 자도 좋지만 아침 일찍 시작해도 느긋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1층으로 내려와 쉼터 의자까지 가려면 한 10m쯤 걸어야한다. 쉼터에는 천정 기둥이 있어서 비를 피하기 좋다. 쉼터에 도달해 의자에 앉으려고 다가가는데 얼굴에 '트드득'하며 무언가 닿는 느낌이다. 얼굴에 뭐가 붙은 느낌인데 떼어내려고 해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거미줄이었다. 거미가 그물망을 치고 잠복 중인듯 하다. 위를 쳐다보니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 했는지 몸을 돌돌 말아 죽은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여긴 날파리도 안 날라다닐 듯한데 포획망을 잘못 친게 아닌지 의아스럽다. 작대기로 톡 건드려보니 여덟개의 다리로 쏜살같이 도망간다.


거미는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거미줄을 친다. 아무리 봐도 거미는 뛰어난 설치미술가이며 곡예사 인듯 하다. 가로와 세로를 일정한 간격으로 맞추어 동심원 형상으로 뻗어내린 그물망을 피해갈 수 있는 먹잇감은 없으리라. 거미의 실은 엉덩이의 실 샘에서 나오는데 그 은빛 실에는 끈적거리는 성분이 들어있다.

거미의 몸에서는 끈적임을 막는 화학물질도 층도 있을뿐 아니라 발에 특별한 털구조 덕택에 끈적이는게 묻어도 쉽게 떨어지ㅣ만 밀 곤충들은 끈적이는 물질 때문에 거미줄에 걸리면 꼼짝 못한다.


거미는 목표물을 기다리는 저격수 처럼 은폐의 대가이며 참을성 또한 대단히다. 저격수가 목표물을 사격하기 위해 며칠이고 한 자리에서 꼼짝 않고 기다리듯 거미도 거미줄을 설치한 후 죽은척 아무 미동도 없이 잠복해 있다가 먹이가 걸리면 끈끈이풀이 묻지 않은 세로줄로 잽싸게 움직인다. 그러나 먹이가 걸리면 좋지만 안 걸리면 굶어야한다. 거미의 바램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기에 끈기와 인내로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면 작은 하루살이부터 운이 좋으면 나비, 작은 잠자리까지 사로잡을 수 있다. 또, 한 번 거미의 포획망에 걸리면 절대 빠져나가지 못한다. 거미실로 먹이를 돌돌말아 고치를 만들고 영양분을 쪽쪽 빨아먹는 것이다.


거미는 모성애의 동물이다. 죽음이 가까오는 거미는 새끼 거미를 위해 자기 내장을 꺼내 집을 짓는단다. 삶을 마감하기전에 마지막 남은 자신의 내장으로 만든 거미줄로 새끼들의 집을 지어 주고 말라비틀어 질 때까지 빈 껍질로 허공에 매달려 자기 생을 마감한다. 거미의 마지막 생을 보니 자식을 위해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하시다가 지금은 요양병원에서 투병중이신 어머니가 떠오른다. 징그럽고 여덟 개의 다리는 어머니의 굵어진 손가락 마디며 거친 굳은 살 배긴 손바닥, 갈라진 뒤꿈치다. 내일은 병원에서 어머니 외출을 시키는 날이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주고 떠나는 거미의 안타까운 생을 생각하면서 어머니 앞에서 좀더 밝게 웃을 수있기를, 돌봄에 짜증내지않고 다 받아들일수 있기를, 좀더 부드럽게 다독일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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