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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by 한결

[에세이] 지렁이

한결


월요일부터 부산 출장을 당일치기로 다녀왔더니 오늘은 피곤함에 눈이 떠지지 않는다. 겨우 일어나 출근 길, 어제 비가 그리 오더니 오늘 아침 제법 선선한 것이 이제 가을이 한발 짝 다가오려나보다. 회사에 도착해 들어가다보니 왠 지렁이가 현관 앞에 떨어져 있다.


"뭐야. 왠 지렁이가 여기 있어."


자세히 보니 살아서 살짝 미세하게 움직인다. 하긴 비온날 뒤에는 가끔 지렁이가 나타난다. 사방이 시멘트 바닥인데 집에서 쉬고 있지 해가 뜨면 말라 비틀어질텐데 굳이 기어나오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화단에서 나무가지 하나를 주워 지렁이를 집어 풀밭으로 옮겨준다. 지렁이는 흙 속의 세균이나 낙엽같은 유기물을 흙과 함께 섭취하여 일부만 흡수하고 나머지는 배설물로 내놓는데, 이게 산성화된 토양을 중성화시킨다. 땅 속을 뒤집고 다니며 공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기 때문에 식물의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지렁이가 많으면 좋은 토양인 것이다. 이는 인간에게 이로운 동물이라는 뜻이 된다. 어디 그뿐인가. 지렁이는 민물 낚시꾼들의 대표적 미끼다. 어린 시절 고향의 낚시 가게에 가면 주인아저씨가 카메라 필름 통 한개를 주시고 그안에 지렁이를 가득 채워 오면 오백원을 주셨다. 아저씨는 서울에서 낚시꾼들이 오면 그 지렁이를 되파는 것이었다. 아저씨와 동네 꼬마들은 돈벌어서 좋고 낚시꾼 들은 그 지렁이로 대어를 낚아서 좋고 지렁이는 자연에게 이롭기 뿐만아니라 나와 동무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도 돈벌이가 되었다.


예전에 고등학교 때인가 한 때 지렁이가 사람 몸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언론매체에 나왔던적이 있는데 음식인지 보약인지 정체 모를 흙의 용이란 뜻의 '토룡탕'이란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어느날 보약이라며 어머니께서 꼭 감기약 처럼 캡슐을 주셔서 그걸 한동안 먹었는데 알고 보니 캡슐안 에 있던 것은 지렁이 가루였다. 그 후로 지렁이만 보면 그 때 생각이 난다. 우리가 주로 마주하는 지렁이는 거의 빨간 지렁이다. 특히, 여성 들이 많이 징그러워하는데 꿈틀거리는 길다란 모습이 혐오감을 부르는 모습이긴 하다. 얘는 몸통 3분의 1지점에 고리 모양의 빨간색보다 조금 옅은 환형이 몸을 둘러싸고 있는데 그 쪽이 입이고 반대쪽이 항문이다. 자웅동체이지만 다른 지렁이와 정자를 바꾸어 수정을 한다는데 진짜 외로울 때는 혼자 자가수정을 하기도 한단다. 자가 수정이라니 종족번식의 본능을 남에게 피해를 안주고 스스로 해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 그 놀라운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점심시간, 식사 후 회사 내 등나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지렁이 한 마리가 보인다. 이번에는 개미 떼에 휩싸여 공격을 당하고 있다. 땅 속도 아니고 땅 밖으로 나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지렁이를 보니 불쌍하다. 집어서 화단으로 보낼까하다. 그만 두었다. 개미 들의 겨울을 생각하니 이것도 자연의 순환이라고 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지렁이의 모양새를 보고 징그럽다며 피하기도 히고 문전박대하기 일쑤다. 세상구경이 하고 싶어 땅위로 나와 느릿느릿 구경하다가 어느 발에 발에 채이고 차 바퀴에 밟혀으스러지기도 하고 뜨거운 햇볕에 데어 결국 말라 비틀어진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살아온 삶이 위대하듯이 지렁이의 삶도 위대하다 . 비록 개미 들의 먹잇감으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모습이지만 자신의 마지막을 공양으로 마감하는 삶의 끝자락을 경건히 배웅한다. 어쩌면 세상을 호령하는 인간이 지렁이보다 못할 때도 많고 못한 인간도 천지이니 지렁이의 삶이 더 숭고할지도 모르겠다.

사진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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