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에세이
[에세이] 풍경 소리
한결
새벽에 비가 얼마나 거세게 왔는지 벼락이 내려치는 소리에 몇번을 잠에서 깨었다. 하루 중에 귀를 닫고 세상의 시끄러움을 듣지 않는 시간이 유일하게 잠을 자는 시간인데 깜짝 깜짝 놀라며 깨기를 몇 차례, 잠을 설치고 말았다. 사실 세상은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부터 온갖 불편한 소리로 가득차 있다. 일어나자마자 들리는 층간소음, 밖에 나가면 차의 경적 소리에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의 또각거리는 구두소리, 이는 세상이 제각 기 자기 할일을 하고 있음을 알리는 치열한 삶의 증거 이기도하지만 한 편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일종의 소음 공해이기도 하다. 일과가 끝나고 저녁이 왔다고해서 소리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다. 아침과 똑같은 소리를 들으며 집에 돌아오다 조금 혼자 만의 시간을 갖고파 커피 숍에 들르면 음악인지, 대화인지 모를 혼잡한 소리, 집에 돌아오면 관리실에서 매일 하는 똑같은 방송소리, 겨우 잠자리에 들어서야 온갖 잡소리에서 해방된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찾아 조용한 자연을 찾거나 산사를 찾는듯 하다.
삼림 속에서 초롱롱 날아다는 새의 지저귐, 산사에서 울리는 목탁 소리, 바람이 불 때마다 속삭이는 나뭇잎들의 대화는 세상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는 소리다. 난 그 소리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위안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난 산사의 풍경소리를 무척 좋아하는데 유명사찰에 가면 예불을 위해, 관광을 위해 찾은 사람들이 많아 한가한 시간이 아니면 고즈넉한시간을 즐기기 어렵다. 고로 그리 유명하지 않은 아주 조용하고 작은 사찰에 가곤하는데 그곳에선 때묻지 않은 주변 풍경과 함께 물고기가 매달린 또다른 풍경을 만나게된다.
앞의 풍경(風景)은 경치고 뒤의 풍경(風磬)은 소리다. 점점 도시에서 멀어져 자연이 주는 풍경 속으로 한 발자국씩 내딛으면 어느새 아스팔트 길은 사라지고 흙으로 뒤덮힌 가로수가 아닌 울창한 삼림 길, 인공으로 치장한 인위의 냄새가 아닌 순수한 자연의 냄새가 기다리고 있다. 언제 목적지가 나올지 모르는 울퉁불퉁하고 돌이 박혀있는 산 길을 묵언 수행이라 생각하고 걸으면 마치 108배를 하는 듯한 경건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이마에 땀을 훔치며 걷다보면 사람의 손이 거의 닿지 않은 숲의 끝 어디쯤에서 바람이 내 목덜미를 스치며 땀을 시켜주는 사이 허공에 떠있는 물고기 한마리가 나를 반긴다. 사찰에 물고기가 있는 이유는 바로 풍경이 있기 때문인데 물고기가 하루 24시간 눈을 뜨고 있듯 수행자는 늘 깨어있어 수행에 정진하라는 의미다. 꼭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나같은 범부에게는 허망한 한 꿈을 꾸며 욕심의 끝을 잡고 삶을 허비하지 말고 늘 바른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라는 독경의 읊음으로 들린다. 풍경을 깨우는 것은 바람이고 소리는 조그만 바람에 의해서도 생긴다. 이는 세상의 작은 미혹에도 눈을 뜨고 대응하라는 부처의 가르침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고민하고 갈등히는 미약한 인간의 마음은 늘 눈 앞의 이익에 흔들리기에 세상의 허망한 세상 것에 매달려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한 경고음인 것이다.
풍경은 사람의 손을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 목탁이나 법고 처럼 두드리지 않아도 경처럼 소리내어 읽지 않아도 처마밑에 매달려 바람이 불거나 비가 건드려야 소리를 낸다. 이는 강제로 깨우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각성하고 변화하라는 의미인 듯하다. 커다란 돌 위에 걸터앉아 주변 풍경(風景)을 바라본다. 파아란 배경에 하얀 구름이 흐르는 하늘과 맞닿은 곳에 풍경(風磬)이 소리를 내고 그 순간 난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속절없이 흐르는 인생,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어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일수도 있다. 어쩌면 다 지나가는 것들을살아왔는지한 허욕으로 살아왔는지 모른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서, 욕심을 충족하지 못해서, 지나고보면 아무것도 아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집착이 나를 갉아먹고 마음 속 응어리를 만들며 괴롭혀 왔을 것이다.
무엇이 중요한가. 지금의 삶이다. 지금 내 주변에있는 것들, 나와의 관계에 있는 이들, 그냥 마땅히 존재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일상 들, 이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고 현재의 인연들에 중요시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지금의 세상을 감사하게 사는 것이 깨우침이고 수행 아닐까 나만의 정의를 내려본다. 천천히 다시 내려가는 길 풍경소리는 멀어지고 가을이 저만치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