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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사랑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연못

한결


어려서부터 난 물고기와 놀기를 참 좋아했다. 도처에 연못과 냇가가 있는 농촌마을에서 성장했으니 당연하겠다. 마을에서 조금만 떨어져 외곽으로 나가면 커다란 연못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 연못에 사는 물고기의 종류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그 종류는 의외로 다양했다. 붕어, 메기, 미꾸라지는 물론 우렁이, 방개 등 수중생물까지 가득해서 매년 여름이면 친구들과 연못가에 앉아 낚시도하고 족대질도 해서 매운탕거리를 잡아오곤 했는데 아무리 많은 물고기를 잡아도 다음 해 여름이 되면 연못은 어김없이 많은 물고기들을 내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날, 여느 때처럼 물고기를 잡으러갔는데 이상하게도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물고기는커녕 개구리 한 마리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누가 농약을 잘못 쏟아서 연못이 완전히 황폐화 된 것이었다.


성인이 되어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이 무기력하고 답답하다고 생각이 들 무렵 고향의 연못이 생각나 물고기를 길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동네 시장 어귀에 수족관 가 들어섰기에 큰맘 먹고 유리 수족관을 사고 물 소독제와 공기정화기, 그리고 어항 바닥에 깔 작은 돌들과 먹이까지 사서 키우기 쉽다는 조그맣고 귀여운 물고기를 입양했다.

아침, 저녁으로 물고기를 보는 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물고기가 있는 수족관은 지치고 힘든 일상에 커다란 고향의 연못이 되었고 내가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수면으로 올라오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물고기 한 마리 한 마리마다 이름을 지어주고 마치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화를 하며 물고기 기르는 맛에 한동안 흠뻑 빠져 지냈다. 물도 자주 갈아주고 오염되지 않도록 먹이도 정성껏 챙겨 주면서 키웠더니 어느 날엔 손톱 끝보다도 작은 귀여운 새끼들까지 낳아 얼마나 흐뭇했던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나태해지기 시작한 나는 수온 점검을 등한시 하고 물갈이할 때 수돗물의 경우는 하루 정도 볕을 쬐어주고 사용하라는 수족관 가게 주인의 말도 무시하고 대충 갈아주었고 먹이를 주는 간격도 들쑥날쑥 해지면서 어느 날 부터 물고기 들이 병에 걸려 한두 마리씩 죽기 시작했다. 남은 물고기를 살리기 위해 뒤늦게 정신 차리고 물을 다시 갈아주고 약도 투여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죽은 물고기를 꺼낼 때마다 딱딱하게 굳은 모습을 보면서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보살피지도 못할 거면서 괜히 데려와 죽게 하고 끝까지 정성들여 돌보지 않은 무책임함으로 물고기들을 죽게 만든 것은 나였다. 물고기도 사람만큼이나 소중한 생명이 있고 그들이 사는 수족관은 사람이 사는 세상과 같을 것이다. 물고기들은 내가 없으면 밥을 굶고 내가 물을 갈아주지 않으면 더러운 물을 마셔야한다. 나에게 물고기 들은 보는 즐거움과 기르는 보람, 새끼를 낳아 번식하는 신비로움을 주었다면 당연히 난 그들에게 깨끗한 물과 적당한 먹이와 산소를 공급할 의무가 있었건만 결국은 서로 주고받는 공생의 관계임에도 내 소유라는 이기적 생각만 한 것이었다.


우리는 가족 간에도 친구 간에도 서로 모르는 사이라 할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처럼 연결된 틀 안에서 살아간다. 세상이라는 연못 안에서 서로 주고받고 정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다. 연못에 유입된 농약이 물고기를 폐사시키듯 우리 안에 있는 이기와 질시, 나만 잘살면 되고 남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무관심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세상을 혼탁하게 한다. 최근 고독 사에 대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평소에 망자가 살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말해주는 책상에 수북이 쌓인 이력서와 체납 내역이 가득한 국민연금 고지서, 텅 빈 잔고의 통장은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현재 한국사회의 그늘이며 아무도 살지 않는 시골 빈 집에서 발견된 망자와 망자가 평소 어떤 질환이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구겨진 약봉지는 세상의 차가움을 말해준다. 연민과 사랑의 마음은 다 어디에 있는가. 누구나의 탄생이 소중하고 살아있는 동안의 삶이 소중한 것처럼 어떻게 죽는가도 소중하다.


동네에 하나 있는 민물매운탕 집 앞을 지나다보니 수족관에서 물고기들이 힘없이 왕복한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는 것처럼 힘이 없어 보이고 몇몇 물고기들은 이미 하늘을 향해 배를 드러내고 둥 둥 떠 있고 나머지도 겨우 마지못해 움직이는 듯하다. 물고기 들은 여러 개의 수족관에 종류별로 구분되어 갇혀 있는데 마치 정원이 초과되어 겹겹이 갇혀 있는 수용시설 같기도 하고 저녁 퇴근시간 녹초가 된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 같기도 하다. 산소가 모자라는지 수면 위로 올라와 연신 입을 뻐끔대는 붕어, 모든 것이 다 귀찮다는 듯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잠에 취한 듯 미동도 없는 메기, 다른 수족관에는 미꾸라지가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차있다. 곧 사람들의 식탁에 오를 운명인 저들을 보니 어떤 놈은 커다란 강을 누볐겠고 어떤 놈은 양식장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살아온 환경은 달라도 어느 쪽이나 똑같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의 생, 뜰채 질 한 번에 삶과 죽음의 세상을 경험하는 목숨이다. 요리사가 나와 무표정하게 메기 한 마리를 건진다. 뜰채로 물고기를 건져 낼 때 퍼덕거리는 것은 살기위한 본능일까 아니면 놀라서 그런 것일까. 뜰채에 건져질 때 물고기는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을까. 물고기는 수족관 유리벽만큼만 딱 자신의 세상이다. 어디서 잡혀왔는지는 제각각이지만 곧 죽을 운명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도 유한의 문제에 있어선 매 한가지다. 우리는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산다. 돈, 명예, 권력을 가지면 무한하게 살 수 있는 것처럼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데도 갖고 싶은 것을 향해 온 힘을 전력투구한다. 우리의 삶도 물고기들과 똑같다. 넓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늘 일상이라는 틀에 얽매여 다람쥐 쳇 바퀴 돌 듯 살고 있는데 드넓은 바다를 마음껏 누비는 고래처럼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아무리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사는 인간이라고 해서 내가 수족관 물고기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음이 넓지 않고 생각이 크지 않다면 넓은 세상을 넓게 보지 않고 좁게 볼 것이다. 내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마음먹느냐에 따라 세상은 좁고 더러운 수족관도 되고 넓고 깨끗한 연못도 된다.


점점 개인화되어 가고 단절되어 벽을 세워두고 살아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작은 도움이라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나의 무관심이 물고기를 병들게 하여 빈 수족관만 남았듯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이기심이 텅텅 빈 고독의 세상을 만든다.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태양아래서 모를 심고 수확하는 농부가 있어야 밥을 먹고 건설현장에서 못질하는 사람이 있어야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듯 우리는 각자의 할 일이 있고 그럼으로써 더불어 산다. 이 각박하고 메마른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이며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공존의 정신과 상생의 마음이다. 물이 맑아야 수중생물이 어울려 살아가고 맑은 물을 공급해주어야 관상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사는 세상이 이기와 질시, 속임수, 무관심으로 오염된 수족관이 아닌 양보와 이타심, 관용과 용서 등 따뜻한 마음으로 채우는 모든 생명이 함께 사는 연못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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