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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식량

행복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전투 식량

한결


지난 토요일 집에 혼자있자니 마땅히 먹을 게 없어 냉장고를 뒤지던 식탁 위 아들이 휴가나왔을 때 선물로 주고간 전투식량 한 봉지가 눈에 띄어 이 참에 뜯기로 했다. 발열팩이 있어 잡아 당기면 밥이 데워지고 안에 개별포장 되어있는 반찬과 함께 먹는 구조다. 나때와는 다르게 엄청 편리해져서 설명서대로 따라하니 순조롭게 진행이 된다. 배가 고파서 먹긴 먹었는데 김치볶음 빼곤 반찬이 별로다. 밥도 볶음밥이긴 한데 그다지 땡기는 맛은 아니다. 기대만큼이 아니어서 실망했지만 그래도 아들이 선물로 주고 간 것이니 고생하는 아들을 생각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싹싹 긁어 다 해치웠다. 그날 저녁에 아들과 전화 메시지를 주고 받았는데 전투식량을 먹으면 부종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설마 무슨 부종, 이녀석이 날 놀리려고 하나, 그런데 일요일 아침 아침에 일어나니 전날 라면을 먹고잔 듯 손가락이 약간 부었다. 금방 없어지긴 했지만 아들 말이 맞았다. 손가락을 보며 다짐한다.


'제길 다신 먹나봐라'


지난주 부대개방행사가 10월 말일에 있다고 하였고 그렇잖아도 면회 한 번 가려던차에 잘되었다 싶어 식구들 모두 좋아했었는데 갑자기 11월로 연기 되었고 연기된 날 마침 자격증을 위한 교육을 가게 되있어 결국 우린 부대개방 행사에 못가게 될 판이었다. 월차도 미리 내놓고 갈 준비를 다 해놓았는데 난감하다. 아들은 군대의 두서없는 행정체계에 실망하고 분노했다. 아들에게 군대라는 곳이 수시로 상황이 바뀌니 화낼 필요도 없고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다. 지금으로선 기분이 나쁘겠지만 전화위복이라고 좋지 않은 일 있으면 또 좋은 일생긴다고 위로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수시로 있을텐데 분대장도 달고 후임들 통솔하려면 그 정도는 이겨내야한다고 조언하고 자격증 공부에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했다.


그런데 그게 또 며칠 사이에 도로 10월 31로 다시 환원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역시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 세상 사가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 있었던가.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고 비가 온 뒤는 갠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때 그때의 상황에 일희일비해서 실망하고 분노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군대지만 부모님들 계획이 있을텐데 뭐하는 거냐며 투덜거렸다. 부대개방 일자가 원위치 되자 손바닥 뒤집기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다. 그러나 또 바뀔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이럴 땐 유연하게 대응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한데 잘 되지 않는다. 나의 얄팍함 또한 여전함을 알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아침 출근길이 매섭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나뭇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겨울이 오려는지 예측할 수 없는 날씨가 또 내 마음을 시험한다. 추위에 약한 나로서는 괴롭다. 그러나 겨울없이 봄이 올 수 없으니 추위를 즐기지는 못해도 참고 받아들여야한다. 바로 인내가 겨울철 내게 필요한 전투 식량이다. 아들과 대화했던 메시지를 다시 보다가 내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아들은 잘 이겨낼테니 너님이나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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