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봉투

한결 러브이즘

by 한결

[에세이] 쓰레기 봉투

한결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니 저녁 식사도 아직인데 갑자기 쓰레기 봉투를 사오란다. 최근 유가 폭등으로 비닐봉투의 원료인 나프타 수입가격이 오르면서 쓰레기 봉투도 한 묶음으로 구매가 제한되어 앞으로 문제가 될 것이니 미리 사놔야 한다고 한다. 나와 큰아이는 쓰레기 봉투 구매 작전을 지시받았다. 살면서 라면 사재기나 코로나 시기 마스크 사재기는 들어봤어도 쓰레기 봉투 사재기는 처음 들어봤고 내키지는 않았으나 가만히 있으면 온갖 잔소리를 감내해야할 것은 뻔한 이치, 억지로 발걸음을 옮겨 한 묶음을 사다주고 힐당량을 끝냈다. 전쟁이 났는데 라면도 아니고 생수도 아니고 쓰레기 봉투라니 요즘 말로 웃프다고 해야하나 뭐가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탁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불안하다는 거다. 세계적인 전쟁으로 미칠 여파에 대비해 무언가를 대비해야 하는데 돈이 많은 사람은 걱정이 없겠지만 서민은 뭐라도 해야한다. 그게 쓰레기봉투였다.


쓰레기 봉투를 산 김에 내 방 정리와 청소를 한다. 원래 이사 올 때 버릴까 말까 부담스러운 것들은 간소하게 줄여왔으니 내 짐은 버릴 것도 이젠 없다. 방안을 둘러보니 모든 물건이 있을 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저마다 그 자리에 있어야할 이유만 있으면 된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양만큼 무게를 달아 카드로 결제하는 음식문 전용 수거기가 있고 종이류는 일주일에 두 번 분리수거를 따로 하는 날이 있으며 플라스틱, 쇠붙이는 재활용 수거함에 내놓으면 되니 특별히 쓰레기가 나올 것같지 않은데 10리터들이 봉투가 금방 찬다. 필요없는 겉 껍데기들이 많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된다. 어떤 물건을 살 때는 활용도와 보유기간에 대해 신중해야할 듯 싶다.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수거를 위해 나가보니 수거해간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쓰레기봉투를 버리는 함은 이미 가득차 문이 열려 꼬릿한 냄새를 풍기고 재활용장에는 전기밥솥, 가구, 운동기구까지 엄청 쌓여있다. 가만히 보니 아직 쓸만한 것들이 많은데 진짜 버려야해서 버리는 건지 아니면 새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버리는 건지 헷갈린다. IMF 구제금융은 이미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 현대문명의 혜택을 누리려는 것을 넘어서 버리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듯 하다. 그런데 버리고 나면 빈 자리가 생기고 그곳을 새로운 것들로 채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써야할까. 정작 버려야 할 것은 내 마음속의 똬리를 틀고 앉아 꿈쩍 않는 욕심, 이기 등 나쁜 마음 들인데 물건을 버리고 난 빈 곳을 더 좋은 것으로 채우기 위해 오히려 나쁜 마음 들을 더 장착하고 있지 않은지 의문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을 공격하고 속이고 아무렇지 않게 거짓을 일삼는 행위들을 스스럼없이 하는 점점 더 양심이 퇴락하고 무서운 각자도생의 세상이 되고 있는 요즘, 쓰레기는 그나마 재활용하고 안되는 건 불에 태우고 땅에 묻고 하지만 사람들의 오염된 마음은 어떻게 처리할가. 가장 존엄하다는 인간이 인간끼리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서로 저지르고 있다. 쓰레기 봉투에 먼저 들어가야할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인간의 나쁜 마음 들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관리실에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정해진 분리수거일에 종이류를 배출해달라는 내용이다. 종이류가 너무 산만히 널부러져있어 출근길에 서둘러 내논다는 게 택배상자에 동 호수와 이름을 안 떼었던 모양이다. 부끄럽다. 작은 규칙부터 잘 지켜야하는데 가볍게 생각했던 것을 반성하게 된다. 다음 날 퇴근 길 박카스 한 상자를 사서 경비실에 들렀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어제 분리수거일 지키라고 문자를 받았는데 앞으로 잘 지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꼭 이래야할 것 같았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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