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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Dec 19. 2020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독후감121

A. 솔제니친

 ‘레일 토막을 망치로 치는 소리’로 기상 신호가 울린다.

벌써부터 고단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시작된다. 스탈린 시대 강제 노동 수용소의 하루가 시작된다. 비참할 것이 뻔하다. 더구나 소설은 작가 자신이 공산주의 소련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권력에 의해 유린당하는 약자들의 인권을 대변하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읽다 보면 비참함에 지칠 것이다.

비참할 것이 뻔하다면 그 와중에 감사한 것을 찾아보자. 그렇지 않고는 책을 다 읽고 착잡한 기분에만 휩싸일 것이다.




 언제나 기상 신호가 울리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슈호프가 엊저녁부터 오슬오슬 춥기도 하고, 어디가 쑤시는 것 같이도 해서 기상 시간에 늑장을 부려 ‘노동 영창 3일’을 벌로 받았으나 다행히 간수실 마룻바닥 청소로 대체되었다.


 12월에는 제때에 방한화 배급이 나왔다.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43년 우스치 이지마 수용소에 있을 때, 괴혈병 때문에 이를 몇 개나 한꺼번에 잃고 만 것이다. 바로 그전에 이질을 앓아서 위장이 몹시 상한 탓으로 얼마 동안 먹지 못했는데, 아마 그것이 괴혈병의 원인이 되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죽지 않고 무사히 살아나서, 지금은 다만 말을 할 때 입김이 새는 소리를 낼 뿐이다.


 의무실을 가는 바람에 직접 빵 배급을 받지 못했다. 빵의 정량 규정은 550그램으로 되어 있지만, 정량 부족은 으레 그런 것이고, 문제는 다만 얼마나 덜 부족하냐 하는 데 있다. 오늘은 그리 많이 가로챈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쩌면 거의 규정량에 달할지도 모르겠는걸?


 영하 27도, 게다가 바람까지 부는데, 불을 피우기는커녕 바람을 피할 만한 장소도 없는 ‘사회주의 단지’로 배치되지 않았다.


 슈호프에게 쌈지 담배는 부스러기 하나 남은 것이 없었다. 이 순간 그에게는 피우다 남은 꽁초 한 대가 자기 한 몸의 자유보다도 더 귀중하게 여겨질 지경이었다. 옆에 앉은 체자리는 슈호프에게 얼굴을 돌리면 입을 열었다. “한 모금 피우시오, 이반 데니소비치!”


 오늘부터 새해가, 곧 1951년이 시작되는 것이다. 슈호프는 1년에 두 통의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되어 있다.

 흰 수염을 기른 간수는 두 번째 장갑을 쥐어보는 대신에 한 손을 휙 저어 보였다. 좋아! 하는 뜻이다. 그러고는 그냥 통과시켜주었다. 낮에 공사장에서 주운 부러진 줄칼 토막을 몰래 수용소에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잘 갈아서 조그만 칼이라도 만들면 신발을 고치는데 편리하고 바느질할 때도 쓸 수 있다. 또다시 영창을 면했다!


 슈호프는 저녁식사를 마쳤다. 그러나, 빵은 먹지 않았다. 국을 곱빼기로 먹어치우고, 게다가 빵까지 먹는다는 건 분에 넘치는 일이다. 빵은 내일 몫으로 돌리자.


 그리고, 글은 이렇게 마친다.

슈호프는 더없이 만족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오늘 하루동안 그에게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재수가 썩 좋은 하루였다. 이렇게 하루가,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가 지나갔다.

 이런 날들이 그의 형기가 시작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만 10년이나, 3653일이나 계속되었다. 사흘이 더해진 것은 그사이 윤년이 끼었기 때문이다.




 강제 노동 수용소 안이라도 감사한 일들을 적지 않게 찾을 수 있었지만, 찾으면 찾을수록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독재의 그늘에서 이반 데니소비치가 내일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내년엔 또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계획을 세운다든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한다든가 하는 일이 아주 없어졌다는 것이, 인간으로서 사고思考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불행했다. 

감사함을 찾아봄으로써 비참함과 씁쓸함을 고의적으로 회피하려 했으나 결국엔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 솔제니친의 명성이 아닐까!

정말로 기나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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