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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Apr 10. 2021

빨간 기와 /독후감137

빨간 기와는 중학교 시절 이야기이고, 까만 기와는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이다.

유마지읍의 이 일대는 원래 황무지였는데, 왕유안 교장이 그야말로 빈손 하나로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당시에는 중학생만 있었으므로 빨간 기와 교실 세 동을 그해에 세웠고, 마침내 정부의 지지를 얻어내 고등학교까지 만들게 되면서 이 황무지 위에는 세 동의 까만 기와 교실이 더 들어서게 된 것이다. 빨간 기와 교실은 중학교를 위해, 그리고 까만 기와 교실은 고등학교를 위해 사용되어져 왔다. 이 지방 사람들은 누구나 초가 교실에서 공부하는 초등학교 자녀들에게 말하곤 했다. “열심히 공부해라. 그래서 얼른 빨간 기와에 들어가고, 까만 기와도 가야지.”




 드디어 [허삼관 매혈기], [형제] 등등으로 유명한 위화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한다.

어쩌다 보니 중국문학은 주로 그의 소설들을 읽었고, 썼던 독후감도 세 편이 된다.

다른 중국인 작가의 소설도 시도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와이프는 ‘차오원쉬엔曺文軒’을 추천한다.

 [빨간 기와]는 주인공 임빙이 유마지 중학교에 들어가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세상 이야기를 들려준다. 갓 입학한 중학생의 눈에 비치는 이야기는 약간 어눌할 수도 있지만, 이런 부분이 순수하고 이런 부분이 감동적이다. 소설의 배경은 역시나 문화 대혁명 1966~1976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위화의 소설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위화가 풀어놓은 문화 대혁명은 조금은 과격하며 강도가 높고 너무나 현실적인 묘사로 충격적이기까지 하지만, [빨간 기와]에서 풀어놓는 문화 대혁명의 강도는 조금은 약하다. 그렇다고 문화 대혁명의 역동성과 대유행을 왜곡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대연계를 소재로 한 부분에서는 중국 문화 대혁명의 새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대연계는 서로 왕래한다는 뜻으로, 먼저 학교에서 일기 시작한 불길은 여러 분야의 사람들에게까지 번져갔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몸담고 있던 직장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 대혁명을 참관했다. 예컨대 모택동의 생가를 방문하거나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소재지 등을 방문하는 식이다. 그 기간 동안 교통편은 모두 무료로 제공되었다. 각지에 대연계 무리를 접대하는 기관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두가 참가했었다.


 임빙은 기숙사 방에서 마수청, 서백삼, 유한림이라는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지낸다.

작가의 인물 묘사가 인상 깊다. 어떤 캐릭터를 가졌는지 단방에 느낌이 온다.

 서백삼은 천성적으로 노예근성이 있었지만, 반장이 되면서 이제는 남을 지휘하고 싶은 욕망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에겐 지휘 능력이 부족했고, 매정하게 남을 부리는 일에 익숙하지도 않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지시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가 일꾼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는 타고난 노예였고 그의 이 노예근성은 평생 그에게 그런 역할을 맡길 것이다.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 때 대충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물주는 사람들을 무수한 분류로 나누어 역할을 맡겼고 일단 각자의 역할이 정해지면 아무도 다시는 바꿀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서백삼은 땀투성이 노예 역할을 맡은 게 분명했다.

 마수청은 늘 일을 저질렀는데, 일을 저지르지 않으면 생활에 흥미를 못 느끼는지 평온한 생활을 지겨워하는 것 같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하고야 마는 마수청의 대담함을 서백삼은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고, 다른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며 서백삼에게 따르라고 명령할 때는 제대로 판단을 내릴 겨를조차 없었으므로, 서백삼은 언제나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마수청이 시키는 대로 그저 따를 뿐이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끝까지 유지된다.

성격 안에서 내적 갈등은 끊임없이 보여주지만, 사람의 성격을 하루아침에 변화시키진 않는다. 이런 부분도 사건사고를 통해 등장인물의 성격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는 작가 위화의 작품과 대조된다.


 차오원쉬엔 [빨간 기와]는 은은隱隱한 글이라고 은은隱隱한 소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분명히 같은 시대의 같은 문화 대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특별히 미화美化하고 있지도 않은데 파스텔 톤으로 느껴지는 글이다. 하다못해 첩을 두기 위해 홍등가에서 여자애를 데리고 오는 부분도 남다르다.

 정소광은 일순간 정신이 아득해짐과 동시에 이 방으로 들어서기 전에 들끓던 욕정이 순식간에 사라짐을 느꼈다. 정소광은 소녀를 그저 한참 동안이나 그윽이 바라만 보았다. 이튿날 정소광은 친구를 중매인으로 삼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장 좋은 옥토 두 마지기를 팔아서, 그 소녀를 유마지 마을로 데려왔다. 그 소녀는 정씨의 대궐 같은 집에서 아무 근심 없이 살았다.

 글 중간에 갑자기 훅 들어오는 작가만의 인사이트도 무언가 매력을 느끼게 한다.

생활이란 본래 일정한 경계와 격식이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에게 그것들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고정된 테두리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매번 새롭게, 모두 다른 빛깔로 만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쉽게 만족하게 마련이다.




 다시 한 달이 지나 드디어 소식이 왔다. 까만 기와의 유마지 고등학교 입학자 명단이 중학교 집무실 밖 창에 나붙었다는 것이다. 담벼락 밑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그들 틈을 파고들어가 처음서부터 끝까지 찾아보았지만 그 벽보에 붙은 수많은 이름 중에서 내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이렇게 [빨간 기와]는 끝이 났다. 

그리고, [까만 기와]라는 차오원쉬엔의 다른 소설을 발견했다. 참 매력 있는 사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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