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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Jan 01. 2022

디 데이 D-DAY /독후감176

 한국인이니까 한국인으로서 사고思考한다.

일본인이니까 일본인으로서 사고한다. 당연하겠다.

세계유산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사도광산 문제로 이번 주 뉴스가 떠들썩한데 이런 이유로 아름다운 결말은 없을 듯하다. 일본이 만들려고 하는 세계유산 뒤에는 두 나라 사이의 불행한 근대사로 인해 사무치는 원한이 여전히 남아있다. 두 나라 사이만의 불행한 근대사가 아니다.

전 세계의 불행한 근대사인데 그 사실들을 간과하고 만든 세계유산이라면 안타깝기만 하다.


 동시에 일본의 SNS에서는 한글 붐이 일어나고,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10~20대들에게는 ‘#한국풍’이라는 해시태그는 인기가 좋다. 그렇다고 그들이 역사적 인식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세상이 변하면서 생기는 기호嗜好이고 현상일 뿐이다.

 두 나라 사이의 골을 메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




 같은 한 주에 성격이 다른 두 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두 나라 사이의 깊은 골을 조금이나마 메울 만한 영화 대본 같은 소설 한 편을 만났다. 첫 페이지를 펼치는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이다. 독일 군복을 입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세상에 이런 조합은 어디에도 없다!! 읽으면서도 계속 신박했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이 둘은 어릴 적 해외로 입양된 것도 아니다. 그 둘은 조선에서 같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 둘이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경멸하여 부를 때 ‘쪽발이’라고 불렀다. 일본인들이 버선발로 나막신을 신으면 동물의 발굽처럼 발가락이 두 갈래로 갈라져 보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본인들도 일본의 식민 통치에 반항적이거나 비협조적인 조선인을 불령선인이라고 불렀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들은(조선인들은) 항일의병이라 불렀다.

 몇 자의 호칭만 들어봐도 조선인과 일본인, 서로의 마음과 생각의 골이 너무나 깊다는 것이 실감 난다. 이런 상태로 우리는 식민 통치 시대를 지났으며, 이런 상태로 일본은 전쟁을 치렀다.


 전쟁은 지옥, 생지옥이다.

얼마 전 읽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지옥에 대한 여러 가지 참혹한 표현들이 있었지만, 적의 포탄에 직격 당한 참호를 표현한 다음의 이 한 문장은 전쟁이 생지옥이라는 것을 보여주기에 차고도 넘친다.  ‘사람이 피와 살과 뼈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전쟁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너무나 비참하고 지랄 같은 이벤트다.

이런 전쟁을 겪고 나면 인간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반응할 것 같다.

하나는 일상을 참으로 감사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국의 축복이라고 느낄 만큼.

다른 하나는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할 것인데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전쟁의 상처와 아픔으로. 아마도 마음에 품어진 희망이 없어서 일 것이고, 그 희망을 만드는 믿음이 싹 틀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믿음을 희망을 이 소설에서는 ‘달리기’라고 독자에게 쥐여준다.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조선인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마라톤 경기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은 일제 치하를 겪고 있던 조선인에게는 독립에 대한 믿음이고 희망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주인공 한대식에게는 모든 것이었다.

 ‘길면서도 탄탄한 다리가 번갈아 가며 쉼 없이 땅을 내디딜 때마다 힘줄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복근들이 도드라져 보일 만큼 군살 없는 복부, 넓게 자리 잡고 적당하게 두툼한 가슴 근육과 잘 발달된 어깨 근육들도 나의 힘찬 질주를 위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나의 몸통 속엔 큰 폐활량을 가진 폐와 지칠 줄 모르는 심장이 맥동하며 근육들이 태우는 산소를 신속히 보충해준다.’


 인간의 육체를 표현하는 너무나 신선하고 상쾌한 문장이다.

2022년 신년이니 하나만 더 해보자!! 검은 호랑이 올해를 더욱 파이팅 할 것 같다.

 ‘나는 달린다. 습기를 머금은 싸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이슬에 젖어 미끈하고 폭신한 풀을 발아래로 느끼며. 신선한 공기가 폐 깊숙이 까지 들어가며, 돌 먼지로 찌든 폐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심장은 뜨거운 혈액을 온몸으로 펌프질 하고, 피부엔 땀이 배어 나온다.’

 신박한 픽션이 만들어낸 극적인 상황보다도 직접 달려보면 ‘저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하는 논픽션의 마음으로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제일 기분 좋았던 부분이었다.

 신나게 달리는 2022년이 될 것 같다.




 중3인가 ‘아차!’ 싶었을 때가 있었다.

친구 덕에 아니, 친구 때문에 소설 무협지 영웅문을 펼쳤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이든 잠자리에 들기 전이든 예외는 없었다. 한 번 펼치면 책 반 권은 술술 읽힌다. 어지간한 자제를 하지 않고 선 책 읽기를 그만두기가 쉽지 않다. 총 18권이었다!! 문득 ‘곽정’이란 주인공 이름도 떠오른다. 한동안 참~~ 힘들어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디 데이] 읽기를 마치면서 [소설 영웅문]이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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