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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Apr 02. 2022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라 /독후감189

 인간은 고난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이거나 심리적인 질병에도 불구하고 또는 강제수용소의 운명 속에서도 삶의 물음에 대해 ‘예’라고 대답할 의미가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조금 쉽게 풀어 말하자면,

명망 있는 법률가 한 분이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동맥경화로 괴저가 생겨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했다. “난 이런 것을 견디지 못할 거야, 불구자로 산다는 건 아무 의미도 없어!” 

의사가 질문한다. “말씀해보십시오, 어르신, 육상선수가 돼서 경력을 쌓으시려는 겁니까? 육상선수가 되는 게 꿈이셨습니까? 만약 그런 거라면 어르신의 절망을, 지금 하신 말씀을 저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육상선수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고, 그럼에도 계속 살아간다는 건 무의미할 테니까요.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삶 전체를 최고로 의미 있게 만들어오신 분이 고작 다리 하나 잃어버렸다고 해서 삶의 의미를 잃으셨다는 건가요?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 영향력도 발휘하고 널리 이름도 날리신 분이요?”


 처형 전날 밤 사형수라면 삶의 물음에 대해 과연 ‘예’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죄인은 신부님 앞에서 젊디 젊은 자신의 인생을 아주 ‘헛되이’ 살았다고 자책했다.

 신부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이번 일요일에 설교단에 오르면 제 교구 공동체 분들이 아마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오늘 우리 신부님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나, 오늘은 아주 다르시네, 이렇게 우리 심금을 울리는 설교를 하시다니!! 그리고 저는 알게 되겠죠.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바로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용감하고도 결연하게 죽음을 향해 나아갔는지를, 주의 말씀이 얼마나 당신의 심경을 변화시켰는지를 제가 함께 지켜볼 수 있어서입니다. 당신은 비록 주를 위해 살진 못했지만 주를 위해 죽을 수는 있습니다.”




 병에 걸린 삶도, 죽음에 곧 바쳐질 삶조차도 결코 무의미한 삶이 아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삶의 물음’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질문을 받는 것이고, 우리 모두는 대답해야 하는 것은 삶의 의무이다.

 삶은 무조건적인 것이고 의무이다.

지나서 보면 그 무조건적인 것과 의무가 삶의 즐거움이었다. 삶에서 행복과 기쁨이 목표여서는 안되며 이것들은 단지 결과로써 얻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불완전하다고 하는데? 그리고, 우리는 사실 불완전한 존재인데?

개별적인 인간 각자는 불완전해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불완전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각자는 ‘자신의 방식으로’ 불완전하다. 생긴 대로 그렇게 불완전한 것은 단지 그 사람뿐이다.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을 위한 유일무이함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를 위한 유일무이함이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작가는 1,500년 전 랍비의 문구를 채택한다.


 내가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것을 하겠는가?

 그렇지만 내가 나만을 위해 그것을 한다면 나는 대체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내가 지금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대체 언제 해야 한다는 것인가?


 산다는 것 자체는 질문받는 것이며 대답하는 것이다. 그때마다의 자기 고유의 현존을 책임지고 답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삶은 이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부과된 것으로 나타난다. 삶은 매 순간의 과제이다.




강제수용소에서 몇 년간 모든 것을 체험하고 살아남은 자가 우리들보다 훨씬 더 자신에게 놀란다고 한다.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남편으로서 부모로서 친구로서 사는 것은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 누구를 위해 사는 것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내 삶의 질문’에 답변을 제시하면서 사는 것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다. 각자 ‘삶의 질문’이 다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할까?

사실 매 순간 다음 순간을 위해 책임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책임에 대해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미래가 나 자신의 미래임을 아는 것은 장엄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고난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이거나 심리적인 질병에도 불구하고 또는 강제수용소의 운명 속에서도 삶의 물음에 대해 ‘예’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 프랑클 씨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후, 1942년 부모와 아내, 형제들과 함께 나치에 체포되어 체코의 테레친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그해 아버지는 굶주림으로 사망했으며, 1944년 어머니와 형이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 이듬해 아내가 베르겐벨젠에서 사망하고, 4월에 그는 수용소에서 풀려나 빈으로 돌아온다. 이 책은 그 이후 1946년 빈 시민대학에서 했던 강연들을 묶어 출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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