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 페넬라 파가 간밤 마차에서 둔기에 머리를 맞아 병원에 실려간 사건과 브루키 헤어우드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종행무진으로 돌아다니는 화학 소녀의 이야기.
결국 사건을 해결한다. 똑똑한 딸내미다.
마지막으로 책 제목인 겨자 빠진 훈제 청어의 맛과 소설 내용은 별 상관이 없다. 다시 독후감을 쓸 때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글 중에는 한 번 언급되는 것으로 기억된다.
책 읽는 것을 마치는 것만으로도 긴 하루였다.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훈제 청어를 겨자에 찍어 먹어봤어?
홍어를 초장에 찍어 먹으면 모를까 뭔 뜬금없는 소린가 하다가 속으로 ‘어디 유럽이나 영국 여행 다녀왔다고 자랑하나 싶어’ 듣기 싫어 나도 대뜸 에둘러대어 화두를 옮겼다.
“[겨자 빠진 훈제 청어의 맛] 읽어봤어?”
오랜만의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이긴 하나 케미컬(Chemical)이 피처링한 상큼 발랄 버전의 추리소설이다. 주인공 소녀 플라비아의 영향이 크다.
시체 안치실 주변의 포르말린 냄새를 맡고 짜릿함을 느낄 정도로 독특한 취향의 10살짜리 소녀의 일상 이야기가 추리소설이 되었다.
관습적으로 소설에 묘사되는 우리 시골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산으로 개울로 뛰어다니며 배고픔을 잊기 위해 물고기도 잡아먹고 나무 열매도 따먹지만, 영국의 가세가 기울어가는 귀족 집안의 막내딸은 도무지 평범하지가 않다. 돌아가신 종조부의 화학실험실을 물려받은 덕에 (사실 아무도 저택 내의 실험실에 관심조차 없다) 온갖 질산, 염산과 같은 위험물질로 화학실험을 밥 먹듯 하고, 다니는 곳마다 시체를 발견한다.
더구나 자신의 집 앞마당인 벅쇼 영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니 또래들처럼 매일 아침 침대 이불속 단잠에서 깨어나기 싫어 겨우겨우 눈을 비비고 일어나기는커녕 집안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집안을 몰래 빠져나와 새벽 첫차를 타고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힌리 병원으로 향한다.
재미있는 점은 아직 나이 어린 소녀를 배려해 주듯 힘들게 갔던 목적 지점에서 돌아오는 길은 차가 있는 다비 박사나 트랙터를 몰고 다니는 디터와 같은 이웃 어른들의 도움으로 쉽게 집으로 돌아온다. 어찌 보면 현장에서 잡혀 귀가조치가 취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돌아오는 길에도 상식이 부족한 어린 소녀의 단점을 메우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들로 대화를 이어 나간다.
2명의 친언니인 필리, 대피와의 대립각이 흥미롭다. 서로 골탕 먹고 먹이기를 반복하지만 결국 눈물 흘리는 쪽은 아직 어린 플라비아다. 골탕 먹이는 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아직 언니들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그 순간까지도 살인 사건과 연관된 궁금한 질문을 한다. 둘째 언니 대피는 의무인양 척척 대답해주지만 마지막에 항상 동생을 비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지하실은 플라비아에게 치욕의 장소다. 머리에 자루가 씌워지고 거꾸로 들려 언니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장소인데 소설 전반에 언급된 지하실은 후반에 포슬레인과 함께 사건 해결을 위한 실마리의 장소로 연결된다.
매끄럽기만 한 스토리 라인으로 이 책의 구성이 탄탄한지 느낄 수도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전개된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재미있으면서 상큼 발랄 버전의 추리소설로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매력적인 유머와 위트를 꼽을 수 있다.
지문 채취를 위해 방문한 그레이브스 경사를 두고 플라비아의 혼잣말은 문장을 다시 한번 읽게 만든다.
‘무슨 권리로 허락도 없이 나를 보러 온 남자를 가로채는 거야?’
필리 언니의 비꼬는 말투로 자신을 한탄한다. ‘내 인생에 비하면 신데렐라는 복에 겨운 계집애였지.’
이 소설은 정말로 십 대 소녀가 썼을 것 같다. 그 십 대 소녀는 언니도 둘 있어야 하겠고, 점잖은 우표 수집광인 아빠도 있어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팔순이 넘은 할아버지가 작가다.
아마도 금속원소나 화합물의 이름을 제외하고 ‘플라비아가 직접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