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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Aug 31. 2019

청춘의 문장들+/ 독후감52

[청춘의 문장들] 10년, 그 시간을 쓰고 말하다

 산문의 시절인가! 이 책은 시작 전에 많은 인연을 갖는다.

어제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읽기를 마쳤다. 자신의 라면 끓이는 레시피를 알리기 위함이 동기가 되었다고 하지만 또다시 그의 글에 감동받았고 나는 다시 한번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어찌 같은 사물을 보고, 눈 앞의 자연을 보고 저리 묘사할 수 있을까? 

읽으면서 느끼면서 동감하나 모방할 수조차 없다. 명작을 남기기 위해 5만 점의 그림을 그렸던 피카소에게 다시 한번 (꾸준히 많이 쓰다 보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위안을 받는다.

 얼마 전 인친의 책 리뷰로 이 책을 기억 속에서 꺼냈다.

기억이라 할만한 것도 못 되는 것이 ‘읽은 책인지, 사놓고 안 읽은 책인지, 눈독만 들인 책인지’ 판단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만큼의 기억이었다. 2년 전 내가 읽었던 책은 [청춘의 문장들+] (2014)이었고, 이 책을 기억하게 해 준 인친의 책 리뷰는 [청춘의 문장들] (2004)이었다.

덕분에 읽고 싶은 책 한 권이 늘었다.

 작가는 10대 청춘에 [데미안], [폭풍의 언덕] 그리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나는 40대에 와서야 앞의 책들을 읽었다. 작가가 책의 앞날개에 독서의 흔적을 남긴만큼 나도 감명 깊게 읽어 독후감까지 적은 책들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시작 전에 많은 인연을 갖는다.




 소설가 김연수는 1994년에 등단했고, 10년 후 2004년에 [청춘의 문장들]을 출간했으며, 소설 등단 20주년이자 [청춘의 문장들] 출간 10주년을 기념하며 [청춘의 문장들+]를 출간했다.

소설가의 10년간 글과 사고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의 책이다.

한 편의 글을 쓰고 인터뷰를 더해서 한 권의 책을 만든다는 생각이 참신하기도 하지만 한 편의 글과 인터뷰에 대해 쉽게 연관성을 찾지 못하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아했다.

왜 의아해하고 있을까? 내 의아함의 이유를 찾았다. 나에게 김연수는 아무 누구도 아니다.

나는 그의 소설 한 편 읽어본 적이 없으니 나에게 그에 대한 질문은 없다. 나는 그가 궁금하지 않다. 어느 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집어 든 그의 책 한 권으로는 아직 그가 궁금하지 않은 것이다. 기존에 그의 팬이었다면 [청춘의 문장들] 시리즈는 나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으리라. 소설가 김훈 씨가 이와 같은 시리즈를 글로 써서 책을 출간했다면 아마도 나는 환장했을 것이다.

 먼저 쓰였던 [청춘의 문장들]을 먼저 읽어야만 했을까? 원래 나는 그 책을 먼저 찾았으나 비닐까지 이쁘게 싸여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었던 [청춘의 문장들+]가 내 눈에 먼저 들어왔고 끌리듯 이 책을 집어 들었다. 10년 전 먼저 쓰인 그 책을 읽어 보아야겠다.



 글 쓰는 사람의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글쓰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유명 작가의 속마음이 궁금할 것이다. 글쓰기를 해야겠다 마음먹은 사람들은 직업으로 글 쓰는 사람의 10년간의 격차를 둔 마음과 현실이 궁금할 것이다.

10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까? 아님 생각보다 너무 많이 변하지 않았을까?

나만해도 독서하면서 2년 전 밑줄 그었던 문장을 지금 보면 왜 표시를 남겼는지 이해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작가) “감수성의 측면에서 10년 전보다 지금은 외부의 일들을 덜 받아들이죠. 대신 해석하는 능력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 나아요. 결과적으로는 거의 똑같은 거죠.”


 나에게 이와 같은 질문은 흥미롭다. ‘소설 쓰기와 산문 쓰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소설 쓰기가 산문 쓰기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 말에 동의한다.

산문은 소재가 있는 상태에서 쓰기 시작하지만 소설은 소재부터 만들어야 하는 엄청난 노력과 고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쓰고는 싶어 할까? 나는 산문을 쓸 수 있을까? 쓰고는 싶어 할까? 나에게 참으로 요원한 일이리라.

 소설과 산문을 비교하면서 발바닥의 티눈 생각이 갑자기 난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많이 걸어서 자연스레 생기는 발뒤꿈치의 굳은살과 같은 것이 아니라 발바닥에 생기는 티눈의 심을 만드는 것이리라. 심이 생겨나야 티눈이 생길 수 있다. 산문 쓰기도 어렵지만 소설 쓰기는 더욱더 어렵다.




 독후감을 적고 있지만 알맹이가 없는 듯 허전하다. 주변부에 머무른 듯하다. 

나 자신이 이유를 알고 있는 듯하고, 모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 사람의 중견작가가 글 쓰는 20년을 보내는 동안의 심경을 엿보는 것 자체가 의미 깊다. 언젠가 글 쓰는 것이 힘들 때 도움을 받기 위해 다시 펼칠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이미 나는 이 책의 도움을 받았다. 나의 독서를 확장시켜준 책이기도 하고 나에게 작가 김애란을 소개해준 책이기도 하다. 침이 고인다. 김애란만 생각하면 자꾸 입안에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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