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의 햇살 아래, 바다로 돌아간 물개

by 캐나다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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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1월 넷째 주 목요일이지만,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은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는 10월 두 번째 월요일이고, 올해는 우리의 추석과 시기가 비슷하다.


캐나다의 ‘땡스기빙’은 미국처럼 북적이는 세일이나 파티가 없다.
그저 가족끼리 조용히 식탁을 나누는 소박한 명절에 가깝다.
(사실 캐나다의 모든 명절이 그렇다. 크리스마스조차도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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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명절을 맞은 우리에게 옆집에 사는 케런이 문자를 보냈다.


“화이트락 해변에서 물개 방생 행사가 열린대요.”


쌩스기비에 밴쿠버 인근 바다에서 구조된 물개들이 아쿠아리움에서 치료를 받고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에게도 이 행사에 대해 말하지 말란다.

설마 비밀 초대라도 받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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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참가하겠다고 하자 케런이 안내문을 보내줬다.

상업적인 행사가 아닌, 봉사자 중심의 조촐한 모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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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아쿠아리움에 가보니 규모가 꽤 큰 자원봉사 단체가 참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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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부처님 오신 날의 ‘방생’이 떠올랐다.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추수감사절에 자연으로 생명을 돌려보내는 의미가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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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장속인 화이트락 해변에 도착했다.

미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조용한 바닷가이고 저 멀리 보이는 땅은 미국이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행사가 열리는 흔적이 없었다.
안내판도 없고, 사회자도 없고.
그저 개 산책을 시키는 사람들뿐이었다.

심지어 차도 안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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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곳이 맞을까?’
의문이 들 무렵,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 눈빛으로 “당신도 그 소식 들었나요?” 라고 묻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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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자원봉사자들이 커다란 케이지를 들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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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바다로 돌아갈 물개는 여섯 마리.
사회자도, 카메라도 없이 물개들은 조용히 한 마리씩 해변으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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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물개가 놀라지 않도록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런데 한 마리가 다시 해안가로 다가왔다.
겁이 난 걸까.

아니면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걸까.
작은 몸이 파도 사이를 멤돌다 천천히 사라졌다.

그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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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맑아 필터를 쓰지 않아도 사진이 멋지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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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촐한 행사장 전경. 아무 표시가 없어 언뜻 보면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장면이다.)


자원봉사자의 손을 떠난 물개들이 사라지고.

그들의 행복을 빌어준 사람도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우리는 행사가 끝난 뒤 그 자리에 잠시 머물렀다.
플랜카드 하나 없는 해변, 바람과 파도, 그리고 여운만이 남았다.


작아서 더 진심이 느껴진 조용한 방생의 순간.

그날, 나는 진정한 ‘감사의 의미’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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