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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Aug 12. 2019

40대 남자,
그들은 아내를 사랑하는가

40대 남자의 감정 Chapter 3 사랑

익숙함, 지루함, 권태

중년에 든 40대 남자들의 결혼 생활은 '권태'나 '위기'로 상징된다. 아내와의 관계에 별 다른 일이 없으면 권태이고 관계가 삐걱거리면 위기다. 극단적인 구분이겠지만 사실 중년에 들어선 남자들의 결혼 생활을 상징하는 다른 말들은 찾기 어렵다. 지금 40대 중반 남자들의 평균 혼인 연령은 대략 29세고 40대 초반 남자들도 30세 초다. 40대 초반 남자들은 10년 가까이, 그 위로는 10년을 넘어 결혼 생활을 이어왔다. 한 이성과 그 정도 시간 동안 살게 되면 남자만 아니라 여자도 지루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 지루함은 익숙함에서 온다. 배우자가 곁에 있음이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지루함이 시작된다.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 놓여 있다 장롱이 그러듯이 / 오래 묵은 습관들을 담은 채 / 각자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일을 하곤 한다...(중략)...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 그저 아내는 아내의 방에 놓여 있고 /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도종환 시인은 <가구>라는 시로 남편과 아내 사이를 채운 권태를 그렸다. 말없이 같은 자리에 놓인 두 사람은 낯설지는 않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다. 늦은 밤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이 묻는 것은 아이들의 안부이고 아내가 묻는 것은 저녁밥을 먹을 것인지 여부다. 그 외의 말들도 지난 결혼 생활 동안 숱하게 해왔던 익숙한 것들이다. 더 이상 특별할 것이 없는 두 사람의 관계는 권태가 채운다. 그런 권태가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쌍소가 말하는 고상한 권태, 형이상학적인 권태로 접어들면 부부 관계에 위기가 온다. 고상한 권태, 형이상학적인 권태는 자신을 초라하고 허약한 존재로 보이게 만든다. 그 탓이 배우자에게로 향하면 것으로 위기는 촉발된다. 무관심만큼이나 잔인한 비난과 멸시의 언어가 오가고 상대를 자신에게 부정적인 존재로 규정하면 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40대의 이혼율이 가장 높은 것은 절정에 오른 권태를 익숙함으로 받아넘기지 못함 때문이다.


권태가 무르익어가면서 아내와 남편의 관계도 전에 없던 단어로 표현된다. 연애 시절은 달콤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그 열정은 상대를 곁에 두고 싶은 욕망을 부르고 영원을 함께 하자는 헌신의 약속으로 현실화된다. 신혼은 서로를 가졌다는 성취감에 행복감이 충만해진다. 같은 둘 만의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면서 친밀감이 높아지는 것도 이 즈음이다. 그런 감정들을 고스란히 안고 둘만의 생활을 이끌어가다 보면 익숙함이 지루함으로 변하는 시기에 도달한다. 그즈음부터는 열정 같은 말은 낯간지럽게 느껴진다. 중년에 이른 남자들의 입에서 부부는 의리로 사는 것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얘기가 나온다. 거친 세상과 함께 싸워나간다는 의미로 '전우애'를 들먹이기도 한다. 요즘 나오는 어떤 건강보조 식품에서는 중년의 아내와 남편을 '우정호'라는 배를 함께 탄 동료로 묘사한다. 이런 분위기라면 40대 남자들에게 아내는 더 이상 사랑의 대상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중년의 남자가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

사랑의 휘발성을 생각한다면 아내와 남편의 사랑은 중년에 접어들기도 전에 끝나는 것이 맞다. 사랑에 빠지면 페닐에틸아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촉진되어 황홀감과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뇌가 페닐에틸아민에 내성이 생기면서 소위 말하는 '사랑의 감정'이 식기 시작한다. 과학자들은 페닐에틸아민의 영향력이 지속되는 시간이 길어야 3년이라고 말한다. 열정과 황홀감에 흠뻑 취한 사랑의 유효 기간은 3년이라는 말이다.


40대 남자들에게 그런 3년은 이미 지났다. 연애를 제법 길게 했다면 결혼을 하기 전에 눈에 씐 콩깍지가 이미 벗겨졌을 확률도 높다. 하지만 40대 남자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한다. 아내의 등 뒤에 서서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고 귓불 가까이에 입술을 가져가 '사랑해'라고 말하라고 하면 학을 떼겠지만 어쨌든 사랑은 한다고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가 "아빠는 왜 엄마랑 살아?"라고 물으면 "사랑하니까"라고 대답한다. 물어본 자녀 입장에서는 '저런 게 사랑인가?'라고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겠다. 어쨌든 40대 남자들도 나름대로 아내를 사랑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사랑의 모양새가 다를 뿐이다.


40대 남자들이 아내를 사랑하는 모양새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사랑과는 거리가 있다. 열정적이지도 않고 낭만적이지도 않다. 그런 이유로 40대 남자들이 아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의리와 전우애를 외치는 남자들의 희희낙락 뒤에는 무언가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예일 대학교의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로버트 스턴버그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 따르면 사랑은 친밀감, 열정, 결심/헌신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그 세 가지 요소들의 배합에 따라 사랑의 형태도 달라진다. 


친밀감(intimacy)은 사랑하는 대상과 연결되었다는 느낌, 유대감을 말한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안락감, 따뜻함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이 친밀감 때문이다. 열정(passion)은 사랑의 관계를 연애, 육체적 매력, 성적 결합의 완성으로 이끄는 동기이자 동력이다. 결심/헌신(decision/commitment)은 단기적인 관점에서 어떤 대상을 사랑하겠다는 결심(decision)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약속(commitment)을 말한다. 단기와 장기로 구분되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사랑을 유지하겠다는 헌신의 마음 없이도 누군가를 사랑하겠다는 결심이 가능해서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의 결합에 따라 사랑은 8개로 나누어진다.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없을 경우 사랑하지 않음이고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면 완전한 사랑이다. 친밀감만 있다면 단지 좋아하는 것일 뿐이고 열정만 있으면 도취된 사랑, 결심/헌신만 있으면 공허한 사랑이다. 친밀감과 열정으로 이루어진 사랑은 낭만적인 사랑이고, 친밀감과 결심/헌신으로만 구성된 사람은 동반자적 사랑, 열정과 결심/헌신만 있으면 얼빠진(어리석은) 사랑이다.


40대 남자들에게 아내에 대한 사랑이 위의 여덟 가지 사랑 중에 어떤 것에 가장 가까운지 묻는다면 대답은 거의 일치할 것이다. 연애와 결혼 초기의 열정은 식었지만 함께 살면서 쌓아온 친밀감과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동반자의 사랑'이다. 뜨거운 열정 없는데 어떻게 사랑일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로버트 스턴버그 교수도 논문에서 '동반자의 사랑'이 열정의 원천인 육체적 매력이 사라진 결혼 생활에서 자주 발생한다고 언급했다. 사랑의 열정이 식는 것, 그럼에도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한 동일한 현상이라 보아야 한다.


많은 40대 남자들이 그런 방식으로 아내를 사랑한다. '동반자의 사랑'이라는 말이 어색하다면 '애착'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애착은 특정 대상과 형성하는 친밀한 정서적 관계다. 애착은 대상이 없으면 불안하고 누군가 나의 애착 대상에게 잘 대해주면 질투나 시기가 생기는 감정이다. 중년에 들면 평소에는 건넬 말도 별로 없고 따라다니면서 잔소리하는 것이 귀찮기만 했던 아내가 막상 며칠 집을 비우면 허전함을 느낀다. 젊은 시절 환히 빛나던 외모는 저물어 가고 있는 아내이지만 다른 남자가 눈길을 던진다는 상상만으로도 경계심이 치솟는다. 애착도 열정은 없지만 사랑의 많은 면을 포함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랑하는 대상을 현실에서 소유하고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그 말이 유효하다면, 40대 남자들은 아직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여전히 아내와 가장 친밀한 사람은 남편인 자신이며, 아내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유일한 사람도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불꽃같은 사랑의 열정이 식은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열정이 식었다고 타박할 일은 아니다. 사랑의 열정은 원래 사라지는 것이다. 그 열정이 영원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남들 못하는 그 영원한 사랑을 이루겠다고 남산에 올라가서 자물쇠는 채우는 것이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면 그런 퍼포먼스를 벌일 이유가 어디 있으랴. 40대 남자가 아내를 사랑하는 법은 그저 말없이 담백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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