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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Oct 15. 2019

직장 내 괴롭힘, 왜 하필이면 나일까?

직장 내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이유

주객전도

직장 내 괴롭힘은 그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폭력이다. 모른 척, 아닌 척하고들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직장인들이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 상사의 폭언, 일 떠넘기기, 과중한 업무 부여, 뒷담화와 헛소문, 따돌림, 노골적인 무시, 심지어는 폭행까지, 직장 내 괴롭힘은 대상이 괴로워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된다. 오죽하면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법이 명문화되었는지를 생각하면 겉으로는 한껏 이성적으로 구는 직장인들도 감정의 쏠림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라는 생각까지 든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폭언은 악의가 결코 없는, 다소 격정적인 질책이었을 뿐이다. 일을 떠넘기는 것은 더 많은 업무 경험을 쌓아주기 위한 코칭의 방편이며 과중한 업무를 부여한 것은 현재 업무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뒷담화를 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인상평일 뿐이고, 헛소문은 원래 맥락과는 다르게 이야기가 부풀려진 것이다. 친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뿐이지 의도적인 따돌림은 없었으며, 워낙 바쁘고 정신없는 직장생활이라 살갑게 대해주지 못한 것이 무시로 받아졌을 수도 있다. 경고와 충고를 좀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친동생 같이 생각하며 머리를 툭툭 친 것을 폭행이라고 하는 것을 과하다.


이런 식의 구차한 변명과 핑계는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눈곱만큼도 먹히지 않는다. 방식이 어쨌든 간에 그 뉘앙스에서 풍기는 의도는 감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발뺌이 사람을 더 괴롭게 만든다. 당사자가 아무리 괴롭힘이라 여겨도 괴롭히는 그 사람의 속마음을 까뒤집어 남들에게 보여줄 수가 없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곤란한 상황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별다른 대응 방법이 없다. 법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법보다는 그들이 더 가까이 있다. 처음에는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력해진다. 급기야 자신을 탓하게 되고 "왜 하필이면 그 대상이 나일까?" 하는 억울함이 솟는다.


괴롭히는 사람들, 법적으로 말하면 '가해자들'의 변명은 일관적이다. 괴롭힐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그럴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뿐이다. 이 논리는 교묘한 탈출구를 만든다. 만약 자신들이 행동이 누군가에게 괴롭힘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해도 결국 그 원인은 '피해자'에게 있는 것이다. 때로는 괴롭힘을 당하는 직장인들에게 주는 충고들마저 가해자의 논리에 힘을 싣는다. "상대 입장에서 이해하라.",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꿔라.", "나의 잘못된 점을 찾아라." 걱정해주는 척하면서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지우는 못된, 내지는 생각이 짧은 말들이다. 


심지어 상사나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놓아도 비슷한 말들이 나온다. "혹시 당신 행동이 좀 잘못된 건 아니야?", "그 사람들이 괜히 그랬겠어?", "어린애도 아니고 이런 일로 회사 시끄럽게 할 거야?" 딱히 가해자 편을 드는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묻는다. 이쯤 되면 피해자는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 혹시 엇나가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예민한 것은 아닌지, 어른스럽지 못한 것은 아닌지, 사회성이 결여된 성품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괴롭힘의 의도를 들키지 않으려는 교활함, 남의 일로 괜히 머리 아프고 싶지 않으려는 게으름, 한쪽 편을 들었다가 다른 편의 눈총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비겁함이 피해자를 원인 제공자로 몰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주객전도일 뿐이다.


가해자의 유형

직장 내 괴롭힘 분야의 권위자인 사회심리학자 기어리 네미(Gary Namie) 박사는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를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 번째 유형은 '절규의 미미(Mimi)'다. 이 유형은 소리를 지르고 고함을 쳐서 대상을 괴롭히는 유형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목소리부터 높이고 폭언을 일삼는 상사가 이 유형이다. 이들이 폭언을 하는 이유는 감정적으로 분위기를 장악하고 통제하는 데에 있다. 두 번째는 '쉴 새 없는 비평가' 유형이다. 이 유형은 소위 말하는 '입으로 괴롭히는' 스타일이다. 끊임없이 상대의 약점을 지적하고 단점을 잡아낸다. 대상이 부하직원인 경우 주로 면전에서 대상을 '갈구'지만, 대놓고 지적질을 하기 어려운 선배나 동료에 대해서는 뒷담화를 통해서 대상을 조롱하고 폄훼한다. 이들의 목적은 대상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은 '쌍두사(The two-header snake)'다. 이들은 대상에게 친밀하게 다가가 같은 편처럼 군다. 물론 같은 편은 아니다. 이들은 허위의 관계를 이용해 일이나 책임을 떠넘기고 성과를 가로챈다. 또 대상의 진심을 통해서 얻은 개인적인 정보를 여기저기 퍼뜨려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이들이 머리가 둘인 교활한 뱀처럼 행동하는 목적은 대상의 평판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네 번째 유형은 '문지기'다. 이 유형은 적극적으로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듯 보인다. 그저 일상적인 듯이 과중한 업무를 부여하고, 대상을 무시하며, 관계망에서 대상을 제외시켜 버린다. 이 문지기가 지키는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그런 괴롭힘을 당해야 한다. 그들의 목적은 대상을 통제하고 굴복시키는 것이다.


기어리 네미 박사가 가해자의 유형을 구분한 기준은 괴롭힘의 방식이다. 공격의 방식은 공격의 대상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괴롭힘의 방식에 따라 피해자의 성향도 다를 수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각 유형의 가해자에게는 선호하는 대상의 성향이 있는 것이다. 절규하는 미미의 경우 주로 온건한 성격의 사람을 목표로 삼는다. 온건한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 싸우려 들지 않으며 남에게 친절하다. 그리고 합의와 협력의 관계를 추구한다. 그들은 싸움을 싫어하기 때문에 괴롭힘에 적극적으로 대항할 확률이 낮으며, 덕분에 모든 유형의 가해자들이 반긴다. 그중에서도 폭언이나 욕설 같은 직접적이고 과격한 공격을 하는 가해자들에게는 온건한 성격의 사람이 괴롭힘의 대상으로는 제격이다. 


내향적인 사람들도 온건한 사람과 비슷한 대접을 받는다. 그들은 괴롭힘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응하거나 즉시 반응하는 일이 거의 없다. 괴롭힘으로 인한 분노와 괴로움을 속으로 삭히는 경우가 많으며 밖으로 잘 드러내지도 않는다. 이는 모든 유형의 가해자들이 반길만한 조건이며 특히 직접적인 공격을 일삼는 절규하는 미미가 희생양으로 삼기에는 더없이 적절하다. 연구에 따르면 학교든 직장이든 괴롭힘을 당하는 대상들은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괴롭혀도 티를 내지 않는 사람만큼 속 편한 괴롭힘의 대상이 없는 것이다.


쉴 새 없는 비평가나 쌍두사 유형의 가해자들은 남과 구별되는 '특별함'을 갖춘 사람들을 괴롭힘의 대상으로 삼는다. 뛰어난 능력이나 그것을 증명하는 경력, 우수한 학벌이나 지성,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외모나 스타일, 호감을 일으키는 인성이나 성품 따위가 가해자들에게는 특별함으로 보인다. 그 특별함은 가해자들로 하여금 질투와 시기심, 경쟁심을 일으킨다. 가해자들은 그 특별함을 깎아내리기 위해 지적질과 뒷담화를 일삼고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린다. 매력 있고 유능한 사람으로 인해 갖게 된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바꾸기 위해 대상을 열등하게 만드는 '하향평준화 전략'을 쓰는 것이다. 쉴 새 없는 비평가와 쌍두사는 '대놓고 까느냐', '뒤에서 까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자신들의 열등감을 괴롭힘으로 보상받으려는 유아적 심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같다.


문지기 유형의 가해자에게는 독립적인 성향의 사람이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독립적 성향의 사람은 높은 자존감을 지니고 있으며 남에게 이유 없이 고개를 숙이거나 굴복하지 않는다. 약자들의 전유물인 파벌 싸움, 무리 짓기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모든 유형의 가해자들에게 껄끄러운 존재다. 독립적 성향을 지닌 사람은 괴롭힘에 쉽게 무릎을 꿇거나 좌절하는 온순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절규의 미미는 감정적으로 제압이 불가능한 상대 앞에서 목소리가 잦아들게 되고, 쉴 새 없는 비평가와 쌍두사도 기껏해야 '잘난 척' 한다는 뒷담화 정도에 만족해야 한다.


바로 그런 점이 문지기 유형을 발끈하게 만든다. 문지기 유형의 가해자는 대상을 통제하고 굴복시키고 싶어 하지만 독립적 성향의 사람은 쉽게 숙이고 들어오지를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문지기에게 굴종하지만 이들은 문지기 앞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 괴롭힘의 강도가 커진다. 과중한 업무를 부여하고 따돌림을 주도하며 약점을 발견하면 비판의 탈을 쓴 악의적인 공격을 가하게 된다. 문지기 유형의 가해자가 독립적인 성향의 사람을 괴롭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만만하거나 약해 보여서가 아니다. 독립적인 성향의 사람을 자신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위협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들

괴롭힘의 가해자들이 선호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능력 있고, 멋지고, 친절하고, 협력하길 좋아하고, 정치나 파벌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불의에 고개 숙이지 않고, 일이 크게 될까 봐 혼자 속으로 삭히는 사람이다. 심지어 이들은 복수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을 보는 일반적인 시선에서 우리는 이런 이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다시 말해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선량하고 좋은 사람들인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는 세 개의 관점이 있다. 가해자의 관점, 피해자의 관점, 주변인의 관점이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상황을 합리화한다. 피해자는 자신이 약하고 무능해서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주변인은 가해자를 비난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여긴다. 이 세 개의 관점은 괴롭힘의 대상이 주로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준으로 삼아 수정되어야 한다. 


'좋은 사람'은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품성을 지녔거나 끊임없이 지적을 받고 욕을 먹을 정도로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 가해자들이 아무리 상황을 합리화해도 결국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 자신의 지배력을 발휘하기 위해, 나쁜 감정을 배설하기 위해 좋은 사람을 괴롭힌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주변인의 어설픈 중립도 피해자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 앞에서는 비겁한 태도일 뿐이다. '좋은 사람'이 많을수록 조직은 건강해진다. 좋은 사람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조직에 해가 되는 일이다. 건강한 조직에서 일하고 싶다면 좋은 사람이 핍박받는 일에 주변인들이 나서야 한다.


피해자의 관점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자신이 약하거나 무능해서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좋은 사람'이라서 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약함이나 무능, 낮은 자존감 따위를 억지로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왜 하필 나일까?"라는 질문의 답도 마찬가지다. 하필이면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 서다. 그러니 피해자인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그런 자책에 뿌리를 내리고 기생한다. 그들에게 양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고통받는 자신을 가장 먼저 돌봐야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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