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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Nov 13. 2022

너의 생각을 따라 도는 11월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하는 기술을 익혀야 할 때.

이제 만 9세를 향해 부지런히 자라는 중인 딸아이의 요즘 최대 관심사이자 최대 고민은 '인간관계'.


성인인 나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고민스러운  난제를 거대한 환경변화와 함께 숙제로 받아  초등학생의 매일은 고민과 선택의 연속인 듯하다. 노는 방식과 의사 표현방식이 미국과는  다른 한국 친구들 사이에서 감을 잡느라 어려워했고,  뒤에는  떡볶이의 묘미와 더불어 K-POP 아이돌들의 안무를 꿰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아 헤매는 시기의 연속이다. 어른에게만 reverse culture shock(역문화(逆文化) 쇼크 :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사람이 고국으로 돌아왔을  느끼는 소외감))있는  알았더니, 아이에게도 똑같다는 사실을 지난 1 아이를 관찰하며 알게 되었다. 그래도  안에서 나름의 전열을 매일 가다듬으며 애쓰는 중인 아이는, 어떤 친구와 단짝이 되어   없이 지낸 하루는 "오늘 재미있었어." 이야기하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내일 학교  가고 싶어." 같은 이야기를 하며 2022년을 지냈다.


곁에서 보는 나는.

어떤 날은 "아니 그 친구는 왜 그랬대?"라며 같이 격분하기도 하고, "그건 네가 좀... 잘못한 것 같은데?"라고 아이 행동을 지적하기도 하고. 아이가 다 잠든 늦은 밤에 남편을 붙들고 "제대로 다니고 있는 것 맞겠지...?"라며 걱정 가득한 소리를 한숨과 함께 내어놓는다. 주로 퇴근 후에 이미 up&down을 경험한 후의 나의 얼굴을 보며 어디에 맞추어야 하나 눈치를 보는 것은 또 남편의 몫....(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건 무슨, 감정의 먹이사슬인가 싶다. )


살면 살 수록 중요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고, 특히 여자 아이들의 경우 엄마인 나와의 소통이 아이의 인생에 걸쳐 이루어질 모든 '여성'들과의 소통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사람을 키우기란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가!' 싶어 어깨가 무거워 주저앉을 것 같은 마음일 때도 많다. 더불어, 그렇게 형성될 우리의 관계가 나중에 아이가 성인이 되어 같은 여자 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지가 되었을 때 더욱 중요하다 생각하며... 최대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는 요즘이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도 마침. 내내 이 이야기뿐이었기에 그 구절을 좀 가져와 보았다.)

Because talk plays such an enormous role in women's lives, understanding how conversation can lead to frustration and finding ways to improve conversations is key to more satisfying, less frustrating relationships between adult daughters and mothers.

[You're wearng that? : Understanding mothers and daughters in conversation. by Deborah Tannen.]
You're wearng that? : Understanding mothers and daughters in conversation. by Deborah Tannen.


지난 며칠.

밤에 잠을 자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 부스럭 거리며 새벽에 찬 물에 손을 씻고, 가려움을 진정시켜주는 크림을 잔뜩 바르고는 다시 자리에 눕는 일이 이어졌다. 어릴 때는 그저 울고 잠을 못 자 우리까지 잠을 설쳐야 했는데, 이제 다 자란 여덟 살 언니가 되어 우리를 깨우지 않고도 잠결에 부스스 일어나 가려움에 필요한 대응책들을 단계별로 하고는 다시 쓰러져 잠을 자는 것을 곁에 누워 느끼면서 또 다른 의미로 마음이 아프다. 이제는 자기 몫의 힘듦을 우리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알아서 넘어가 보려 애쓰나 싶어서 더 짠하고, 그렇게 잠을 설치는 밤의 다음 날 아침은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학교로 가는 차 안에서도 피곤해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줄을 모르고 나의 온 하루를 점령하고는 한다.

태어날 때부터 약한 피부를 가지고 태어나 고생하기도 했지만, 지난 8년 반의 시간을 통해 이 증세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면 심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요즘 무슨 일이 있구나.'싶어 무거운 마음으로 손에 로션을 가득 덜어 아이 다리를 쓸어내리는 밤이었다.


그렇게 계속, 가려움. 건조, 불면의 밤이 이어지던 11월.

또 어제와 똑같이, 잠들기 전에 약간 높아진 체온으로 또 온몸이 가렵다며 울상인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나 오늘 학교에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그래서 이렇게 가려운가 봐 엄마. 그저께도... 00랑 싸우고 나니 그날 밤에 나 정말 난리 났었거든. 새벽에 가려워서 잠 못 잤어. 아.. 근데 또 가렵다 엄마. 너무 가려워..."


중얼중얼 거리며 벅벅 긁고 있는 아이 말을 듣고 있던 이 순간.

난 마음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몸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마음이 아파서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

굉장히 당연하게 느껴지는 상관관계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이 두 가지를 연결시키는 것만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던 나와 달리 적어도 이 꼬마는 지금 '증상'과 '원인'을 제대로 파악은 하고 있으니 더 빠른 해결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기뻤다.


지금 느끼는 증세와 본인이 느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으니.

반대로 말하자면, 그 마음을 즐거이 한다면.... 증세도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엄마도 오늘 회사에서 진짜 힘들었다? 근데 엄마 무슨 생각했냐면..

너무 좋았고, 너무 즐거웠던 생각을 해.

작년에 하와이에서 거북이 갑자기 만났을 때 기억나? 물속에서 막 거북이가 우리한테 헤엄쳐와서 엄마 너무 깜짝 놀라서 막 물속에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잖아. 진짜 웃기게 ㅎㅎ 그리고 우리... 아 맞다. 정말 정말 넓은 volcano park에 가서, 끝도 없이 달렸었잖아."

"맞다 ㅎㅎ 엄마 막 꽥꽥 소리 질렀어! ㅋㅋㅋ 아, 나 하이킹하고 싶어 엄마. 이번에 가게 되면 운동화 챙겨가서 폭포 나오는 길로 걸어가 보자. 그리고....(조잘조잘 조잘)."


그렇게. 언젠가의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던 아이는.

팔다리를 긁던 손을 내려두고, 어느새인가 곁에서 편안히 잠이 들었다.

-

학교 보건실로 찾아오는 각양각색의 아이들을 지켜보는 보건교사님이 써 내려간 책 '여기서 마음껏 아프다 가'라는 책 속에, 아이들과 식물의 공통점을 이야기한 구절이 있었다.

하나, 사랑(물)을 주는 만큼 쑥쑥 자란다.
둘, 햇빛을 좋아하나 그늘에서도 잘 자란다.
셋, 한꺼번에 꽃 피우지 않는다.
넷, 꽃의 크기가 다 다르다.
다섯, 요리조리 위치를 바꿔주면 빛을 따라 자란다.
여섯, 한번 꽃 피우면 고개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일곱, 양분이 부족한 흙에서도 제법 잘 자란다.
여덟, 바람을 좋아한다.
아홉, 싱그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열, 보일 듯 안 보일 듯 영역을 넓혀간다.

[여기서 마음껏 아프다 가/ 김하준 지음] 중 '식물과 아이들의 공통점'에서 발췌.

여기에 내가 하나를 더 해보자면.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 아픔이 겉으로 드러날 때가 되어서야 알아채게 되기도 한다는 점]이라 쓰고 싶다.


아프고 힘든 때. 그것을 아프다 말하고, 도움을 청하고.

그리고, 그 아픔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해서 해결을 하는 일은 성인인 나에게도 아직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참고 견뎌야 무엇이든 해 낼 수 있다.'와 '그 정도는 다들 참고 살아.'가 기본값이고, 스스로의 감정을 진짜 소리 내어 말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가 가진 분위기 속에서 싫고 못 견딜 상황에서도 [괜찮은 척]하는 것이 더 몸에 익숙하게 배어있다. 괜찮은 척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진짜 괜찮은지 아닌지 알 수 없어졌을 때는 이미 탈이 크게 나버리는 상황을 몇 번 경험하고 나서야 '나의 감정'이 어떠한지를 더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성인이 된 뒤 한참이 지나서야.


그래서 이 날, 그날 아이와의 대화가 더욱 감사했다.

여덟 살 반.

삶을 살아가며 필요한 여러 기술을 익혀야 하는 나이. 그것을 배워야 하는 학교에서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진 친구들과 마주하며 감당 불가의 스트레스를 마주하기도 하고, 이를 넘어서는 방법과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같이 익혀야 하는 그런 나이.

그런 나이를 지나는 아이가 쉽지 않지만, 그 방법을 찾아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 가만히 손을 잡고 곁에 누워서 잠든 얼굴을 만지작 거리며 쓸어보았다.


힘들 때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털어놓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힘껏 운동하며 땀 흘려보고.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해보기.

끝도 없이 펼쳐진 길을 뛰었던 어느날. 이 날의 추억으로 깔깔 웃던 아이는 편안히 잠이 들었다.

이런 작지만 소중한 삶의 기술을 부디 하나씩 잘 쌓아내 가기를, 그리고 그럴 때마다 곁에 있는 엄마인 나에게 손 내밀어 주기를 바라며 11월이 가고 있다. 하나 둘 쌓이는 아이의 궤적을 따라 더 많이 아이를 사랑하게 되기를. 더 아이를 를 알아가고 그만큼 더 사랑하게 되는 2022년의 가을이 되기를 바라며.



하나의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하의 가을을 알 수 있듯
작은 행동 하나를 관찰하면
그 아이를 좀 더 알 수 있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  
- [여기서 마음껏 아프다 가/ 김하준 지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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