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지난주 일요일에는 하프마라톤을 달렸습니다. 공식 대회에 나가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10K를 달리는 동거인과 함께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6시에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잘 일어나고 잘 도착했습니다. 8시 반에 먼저 풀마라톤 주자들이 출발합니다. 5분 뒤 하프마라톤의 시작을 알립니다. 달리기 시작합니다. 1시간 57분을 달려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습니다. 먼저 들어온 동거인이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웃음이 나왔습니다. 첫 하프 마라톤을 마쳤습니다.
첫 1키로미터는 사람들과 뒤죽박죽 섞여 달렸습니다. 처음 나온 대회라 어떻게 앞서고 뒷서야할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천천히 달립니다. 올림픽 주경기장을 돌아 한강을 향했습니다. 2키로부터는 한강 공원 길을 따라 달립니다. 세 명이 겨우 달릴 수 있을 정도의 폭이 계속됩니다. 계속 천천히 달립니다. 추월하려고 애쓰지 않고, 혼자 달릴때보다도 느긋하게 마음을 먹습니다. 대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하는 달리기라고 생각합니다. 잘 되지 않습니다. 페이스가 어느 정도인지 감도 잘 오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뛰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달리고 있으니 고민하는 것을 그만 멈추기로 합니다. 지금 달리고 있는 이 길을 따라갑니다. 언젠가 사람들 사이에 간격이 늘어나고, 편하게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올 것입니다. 오지 않으면 또 어떻습니까. 오늘 저의 목표는 처음으로 21키로를 달려보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달려보는 것이고, 처음으로 대회에 참가해 기분을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이번주 내내 아프던 왼쪽 무릎은 오늘 통증이 없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3키로 즈음부터 오른쪽 발목이 시큰거립니다. 생각보다 많이 아픕니다. 부담을 왼쪽 다리에 실어봅니다. 절룩거리는 모양새가 되지만, 지금은 오른쪽 발목이 자리를 잡는 것이 먼저입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어딘가 아픈 일은 매일같이 벌어집니다. 스트레칭을 하고, 가볍게 뛸 때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왼쪽 발목, 왼쪽 무릎, 왼쪽 발바닥, 오른쪽 발목, 오른쪽 무릎, 오른쪽 발바닥이 갑자기 달리기 시작하면 아파옵니다. 어제는 건강했는데 오늘 아플수도 있고, 어제 아팠던 곳이 오늘은 멀쩡하기도 합니다. 이건 좀 많이 아프다, 오늘은 쉬어야겠다 생각되는 날은 거의 없습니다. 조심해서 달리다보면 대부분 아픔이 사라집니다. 오늘도 숨을 골라봅니다. 자세를 고쳐봅니다. 이 정도 아픔은 달리면서 사라진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달렸습니다. 숨을 고르고 자세를 고쳐잡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오른쪽 발목이 아팠다는 것을 어느새 잊었습니다. 계속 달립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비슷한 페이스로 달려 뒷모습이 익숙한 사람들이 생깁니다. 함께 달리다 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모르는 뒷모습을 지나치기도 합니다. 반대편에서 뛰어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환점을 돌아오는 사람들입니다. 건강하고 빠르게 달리는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지나갑니다. 물을 나눠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화이팅 소리를 치는 사람도 있고, 감사합니다 대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NRC의 하프마라톤 프로그램은 오늘 따라 말 수가 적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달리느라 잘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앞서가며 뒷서가며 그냥 달립니다. 코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미리 보지도 못했습니다. 몇키로가 남았다는 감각도 희미합니다. 그냥 달립니다. 사람들이 달리는대로 나도 따라 달립니다.
5키로가 남았을때 멀리 출발지점인 올림픽주경기장이 보입니다. 이제 돌아가는구나, 끝을 향해 가는구나 실감이 납니다. 3키로가 남았을때 2:00:00 페이스메이커를 지났습니다. 교차로를 건너고 물을 마실때마다 화이팅! 소리가 잦아집니다. 감사합니다! 대답합니다. 1키로가 남았습니다. 무릎도 괜찮습니다. 발목도 괜찮습니다. 팔도 앞 뒤로 잘 움직이고, 발바닥이 좀 아프지만 아직 건강합니다. 체력이 아직 남았으니 페이스를 올려도 될 것 같습니다. 힘을 내봅니다. 주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입구는 아직입니다.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둘러가야 합니다. 이쯤이면 도착일 것 같은데, 기약이 없습니다. 숨이 차기 시작합니다. 장거리를 달리며 숨이 차서 힘든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마지막 1키로에서 숨이 턱끝까지 차오릅니다. 무리를 했습니다. 안하던 짓을 했습니다. 반성합니다. 힘을 내본 적이 없는데 힘을 냈습니다. 그래도 1키로 입니다. 어찌저찌 안될 거리는 아닐것 같습니다. 달립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옵니다. 골인 지점이 보입니다. 먼저 도착한 동거인이 손을 흔듭니다. 웃음이 나옵니다. 결승전을 지납니다. 하프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건강을 챙겨야겠다고 시작한 달리기가 반년 후에 나를 하프마라톤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올해는 잘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달리기는 빠질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을 배웠습니다. 매일의 연습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과정을 함께 고민해준 동거인과 NRC의 코치님들이 하프마라톤을 뛸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제대로 된 자세를 고민하고, 음식이나 연습에 대한 이론을 챙겨보고, 체력 운동을 시작하고, 무엇보다 매일 달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달리기가 새로 생겼습니다. 하프마라톤이 새로 생겼습니다. 잘하는 일이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하는지, 왜 하는지를 고민하고 고민한 나의 첫번째 운동입니다. 앞으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또 있을까요. 올해와 내년에 생겨날 무수히 많은 나의 일들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