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현재 하고 있는 문제집의 개념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학습 사이트에 로그인을 했다. 뭐가 이렇게 방대하게 양이 많은 건지, 과목도 많고 다 들으면 지쳐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보기만 해도 질리는 느낌이랄까.
세상에 선생님은 또 왜 이렇게 많아.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데 이렇게 해야 할게 많은 거야? 나는 여백이 없는 강의 목록들의 화면을 보면서,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눈에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와, 나 어렸을 때도 많다 생각했지만 초등학생부터 이렇게 많은 강의를 듣는단 말이야? 뭔가, 끝이 없는 시작을 실행하는 것 같았다. 클릭하기를 몇 번이나 망설이고 망설이다 클릭을 하고 1강만 들어볼까 했는데 아, 역시 못 듣겠어 나는 공부는 역시 안 맞아. 하면서 얼른 창을 닫아버렸다. 아이의 험난한 공부길을 잠깐 훔쳐본 것 같았다.
공부를 못하면 나의 유전자를 닮은 것이고, 잘하면 잘하는 대로 그냥 고마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공부할 무언가를 던져준다는 건, 꼭 아이에게 미션을 주는 것만 같다. 이 단계 끝나면 그 윗단계로. 또 그 단계가 끝나면 그 윗단계로. 아이에게 주어진 계단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것 같다. 나는, 공부엔 영 집중력이 없는 여자였기 때문에 그 느낌이 기억난다. 끝도 없이 펼쳐진 문제집의 향연들. 엄마 아빠의 기대 아닌 기대감. 무기력한 학습태도를 보이는 나. 내가 인문계를 가지 않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갔다면 어땠을까. 좀 더 빨리 취업했을까? 그러면 돈이라도 쓰는 재미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원래 사회에 나와서 돈을 알게 되면 공부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재미없는 회사를 다니며 꼰대 상사를 욕하고 나도 꼰대가 되어있을지도 몰랐다. 사람 일이란, 으레 다른 삶을 늘 상상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나는 남편을 못 만났을지도 모르고, 부모님의 불화를 끝도 없이 비난하며 빠져나올 생각 같은 건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이 부모님으로부터 도피처이자, 안식처였기 때문에. 음, 지금생각하면 끔찍하네. 그 광경을 나이 들어서까지 보고 싶은 건 아닌데 말이다. 그저 그런 남자와 결혼해서 살았을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혼자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냥 그럴 수도 있다.라는 가정하에 이루어지는 생각일 뿐.
빈틈없이 채워진 아이의 공부 목록들은 어쩌면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권유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그렇게 아이를 보며 때때로 과거로 돌아가서 나와 마주한다. 나는 이랬는데, 네가 살기는 환경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도 우리 때와 변함이 없는 것 같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제공자인가? 그건 모르겠다. 나에게는 해답의 권리가 없을뿐더러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저 노력하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줄 수 있기를 늘 바라고, 희망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봐봐, 네 주위에서도 다 하고 있는데 우리만 안 하는 건 우리가 문제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져온 남편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의 공부에 대한 생각은 내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부모에게 주어진 미해결 과제 같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건, 자신이 없어서였고. 내가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며, 나는 무엇보다 사교육을 많이 받은 여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아이의 사교육에 관심은 있지만, 섣불리 발을 디디지 않는 여자이고, 꽤나 어쩌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여자이기도 하다. 나는, 겪어보지 못한걸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겁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과거와 마주하는 이 시간은,
정말이지 영 기분은 별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겠지.
또 한 번 엄마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망설여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