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연 May 06. 2023

스스로 괜찮다고 말해주기.



식은땀이 난다. 꼭 긴장을 잔뜩 한 사람마냥 얼굴 테두리 쪽으로 식은땀이 흐른다. 어 왜 이러지, 나는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도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 내 몸상태에 잔뜩 예민해져 있다. 자꾸만 몸이 쳐지고, 땀이 흐르는 주변이 가렵다. 습기에 취약한 몸을 가진 내가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뭘 하지 않아도 기운이 빠진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처럼 내 몸도 그만큼 축축 쳐진다. 




남편과 큰아이는 구강검진 때문에 치과에 갔고, 나는 작은 아이와 둘이 집에 있다. 타자를 두드리며 집안을 살펴보니, 곧 있으면 이사 갈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우리는 결국 이사를 가야 하고, 이제 집도 구해야 한다. 이 집보다 좀 더 좁은 집으로 갈 계획이다. 역시 집을 줄이는 것만큼 돈을 아낄 수 있는 건 없다. 우리는 이 많은 짐들을 다 들고 갈 수는 있을까. 나는 중간중간 정리를 꼭 해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을 살펴본다. 이번에는 좀 낮은 층의 집으로 가보고 싶기도 하다. 나무가 보이는 집이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병충해약을 뿌릴 때마다 집 창문을 닫아둬야 하는 건 스트레스겠지만, 아마 그만큼 만족감이 더 클지도 모른다. 그건, 내가 집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 하고 애정을 쏟느냐에 따라 다르게 생기는 감정이니 말이다. 


책들도 정리해야 하고, 아이들 장난감도 정리해야 한다(물론 물어보고 정리해야 한다.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크게 되돌아올지 모른다) 나의 수많은 옷들도 정리를 해야 한다. 와, 그것만 해도 진이 빠지는데 이사는 어떻게 간담. 나는 오랜만에 막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집이 작아지든, 집이 같은 평수든, 짐을 줄여야 하는 건 맞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남편 회사 간 평일에 조금씩 조금씩 미리 버려야 할 물건들을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지향하던 미니멀 라이프를 이제야 할 수 있는 건가. 아니다. 나는 미니멀하게는 절대 못 살 것 같다. 끝도 없는 물욕이 나의 생각을 전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살기에는 이미 틀린 것 같다. 나는, 그냥 되는대로 원래 이렇게 생긴 대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처음의 나는 그런 내가 싫었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원래 물욕이 많은 나 자체를 받아들이자고, 나는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스스로 알아주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이사를 어디로 가야 한담. 어느 날은 우스갯소리로 그랬다. 낯선 곳에 가서 살아볼까.라고 남편에게 물었더랬다.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호기 어린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남편은 뭐랬더라. 그냥 웃었던 것도 같다. 마치 네가? 그럴 수 있겠어?라는 웃음 같기도 했다. 그래. 그건 그냥 치기 어린 말이었다고 하지. 나는 사실 쫄보라서 그렇게는 못할 거야. 이 동네가 불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 학교를 핑계로 떠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내가 새로운 환경을 거부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나는, 항상 새로운 걸 부정해 왔다. 음식도, 육아도, 환경도 말이다. 나란 여자는 정말로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여자이다. 한번 마음을 주는 게 쉽지 않고, 그만큼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게 쉽지 않다. 어쩌면 나는 고지식한 꼰대의 끝판왕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게 쉬운가. 마음을 주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 이 집에서도 적응하기까지 1년이 넘게 걸렸는데 적응하려니 떠나야 한다. 시간은 늘 그렇게, 야속하게 흘러간다.



부정적인 생각만 잔뜩인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안 좋은 타이밍은 전에 일어났을지도 모르고, 지금이 움직여야 할 타이밍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잔뜩 가질 불안을 다 가지고 진료실로 찾아간 나를 진정시키고, 당신의 이사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정말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한다. 지금이 타이밍일지도 몰라요. 의사 선생님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래. 그럴지도 몰라. 타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의사 선생님은 사실은 이쪽으로 오려고 했는데 그때 안 좋은 시기라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움직여야 했던 건 아이들 때문이었으며, 이사를 하고 나서 그때 이사했으면 아찔했을 뻔했다고 하셨다. 역시 인생은 큐브 같은 건가. 계속 맞춰가며 살아야 하는 삶인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사를 하긴 하겠지. 억지로 맞춰가고 싶지는 않은데. 참 어렵다.


그래도 우리, 참 수고하고 있다고 나의 남편에게 말해준다면, 그는 웃을지도 모른다.

우리, 그래도 정말로 수고하고 있어. 생각보다 어른이 잘 되어가는 것 같아.라고도 말해주고 싶다.

물론 아무것도 정해진건 없지만, 불안해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좀 더 멀찍이 바라봐도 된다고 나 자신을 위안한다.

참 사소하지만,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나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은.








작가의 이전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공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