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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May 23. 2023

안 하니 보이는 것들

요즘 내 마음의 해이 해졌다 할까. 아니면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할까. 뭐 어떤 말로도 다 적용이 될 것 같지만 어쨌든 진정되지 않았던 마음인 터라 큰 아이의 공부를 제대로 봐주질 못했다. 오전에 마음잡고 공부한 걸 채점하려니 가관이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꾸준히 한 게 어디야. 근데 너 이리 좀 와서 이것 좀 봐봐. 나도 모르게 착실히 이건 왜 이런지 설명하라고 한다. 내 아이는 귀찮음과 짜증이 섞인 얼굴로 연필을 든다. 답을 써야 하는 자는 왜 써야 할지 모르겠고, 답을 채점하는 자는 왜 틀렸는지를 모르겠다. 우리 둘이서. 정말로 이럴 때는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바보 둘이서 뭔가를 하긴 하는데, 뭔가 성과 없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느낌이랄까. 나도 느끼고 있는데, 당연히 아이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오전부터 엄마가 틀린 문제를 다시 풀라고 하니 짜증이 날 수밖에.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후시간에 자유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선 최대한 오전에 많이 공부를 해놓아야 한다. 아이와 나는 서로 알고 있지만, 오전부터 얼굴을 찌푸리려니 영... 마음이 별로다.




그래도 많이 컸고, 많이 키워왔다. 제시간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놀 때는 확실히 노는 것. 우리는 그 생활을 근육을 만들듯이 꾸준히 해왔다. 이제는 내가 말만 해도 본인이 뭘 해야 할지를 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발전이다. 나는 언제나 아이의 성실함을 믿는다. 문제를 다 맞지 않아도 괜찮다. 문제라는 건 꼭 다 맞을 수만은 없는 법이니까. 큰아이가 하는 이 모든 과정들이 분명히 큰 아이의 삶에 미약하게라도 영향을 미친다면야, 더 바랄 게 없다. 요즘 큰아이가 하는 영어문제집을 보면 알 수 있다. 독해 부분이 아주 조금 늘었다. 10분짜리 독해를 지금은 8분에 끝낸다고 치면 2분이나 단축된 셈이다. 나는 그런 아이가 기특하고, 대견하다. 서툴러도 본인이 잘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믿는 것. 해야 하는 것을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하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되게 교육에 관심이 많아 보이지만 나는 사실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는 여자다. 왜냐하면 나는 공부에는 아주 질색을 하는 여자고, 공부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방법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내가 아주 중요한 사람인지라 내 마음이 먼저고, 두 번째가 아이 마음이다. 

어쩔 수 없다. 사람인지라.

내 마음이 아플 때는 주위를 돌보지 못한다. 삶도 피폐해지고, 게을러진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 둘의 심정은 오죽하겠냐만.. 나는 그렇게 주위를 돌아볼 여건이 되지 못한다. 깊은 늪에 빠져서 빠질 때까지 몸을 담갔다가 이제 좀 살아야겠다 싶으면 천천히 나온다. 그 과정을 아이들은 지켜본다. 엄마가 늪에 빠져있다가, 나오는 과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나의 아이들은 어쩌면 기다려주는지도 모르겠다. 답답하고, 또 막막한 그 감정에 왔다 갔다 하는 엄마의 기분을 기다려주고, 또 기다려준다. 엄마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심정에 대해 나는 미안하고 안타깝다. 힘을 줘야 하는 내가 힘을 못 내고 이렇게 빌빌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눈치가 백 단인 아이들은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사랑과는 별개로 삶은 다르다는 것을.



맞다. 삶은 이상하고, 희한하게 흘러간다. 내가 바라던 대로 흘러가지 않고 꼭 옆으로 샌다. 내가 생각지 못했던 길로 들어서고, 하지도 않던 고민을 하게 만든다. 뭐든지 유연하게 흘려보내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늘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몸과 마음은 나의 소망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 나도 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쯤은. 근데 달라도 이건 너무 다르다.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다. 어쩌면 아직도 나 스스로가 나를 모르는 걸 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 섭섭하다는 느낌도 든다. 좀 친해지면 좋을 텐데, 나는 아직도 내가 낯설고 어렵다. 



주위를 둘러보니 집안이 엉망이다. 정신도 엉망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매일 애들 학교와 유치원에 꼬박꼬박 물을 챙겨서 보내는 지도 의문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보이는 게 산더미다. 나는 그 산더미 속에서 정말 '보고만'있다. 아, 이젠 움직여야 하나. 작은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 다 버리고 가고 싶어. 정말 다 버리고 가고 싶다. 노트북 옆에 쌓여있는 문제집들도 버리고 싶다. 하지마 하지마 그냥 우리 하지 말자. 나는 아이에게 가끔 그렇게 속삭인다. 학원도 그만두고 공부도 하지 말자. 그냥 하지말자 라고 외치기도 한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인 거다. 




아, 여전히 마음이 갈팡질팡이다. 사람마음이란.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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