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그런 삶은 있지.

by 김태연




오늘은 아침부터 해가 쨍쨍하다. 어제 장마 시작이라고 한걸 비웃듯이 해가 뜰건 또 뭐람. 나는 그러면서도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힌다. 자 집안에 있던 공기야 이제 순환해보렴. 하듯이 활짝 열어 젖히지만, 방충망도 채 닦지않은 우리 집의 창들이 과연 깨끗한 공기와 맞닥뜨렸을때 순환이 될지는 의문이다. 기분상. 느낌상. 그냥 해가 떴으니 왠지 창문도 열어 젖혀야만 할것 같았다. 습한 바람이 들어왔을때 조금, 정말 조금 후회한것 빼곤.


나는 사실 예술이라곤 잼병이다. 예술에 예자도 모르는 여자 여기 한명 추가요. 나는 미술도 너무 못하고, 체육은 정말 정말 못한다. 느려터진 몸에 재주 없는 손은 예술을 알기에는 거의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신체다. 심지어 읽은책도 가끔 기억을 못한다. 나는 내가 읽으면서 제대로 읽고있긴 한건가 하는 의심을 하면서도 읽는 책들이 몇권정도 있다. 집중력이 산만한 탓이리라.

여하튼 그런 나에게도 뭔가 해보고싶은것 따위는 존재하는데, 가령 느려터진 손으로 정리를 한다거나. 피아노가 갑자기 배우고 싶어서 개인 과외를 찾아본다거나 한다는.. 그런것들 말이다.

나는 최근에 피아노를 배우고, 그리고 그만두었다. 그만 두기에는 아까웠지만, 지금의 재정 형편으로는 피아노도 사치였다. 나의 피아노 선생님은 나를 약간 우쭐하게 만드는 아주 큰 재주가 있다. 그건 바로 악보도 못보던 내가 한 곡 정도는 칠수 있게 만들었다는 사실이고, 음계도 모르던 내가 도레미파 솔라시도 정도는 이제 조금이나마 읽을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은 선생님에게는 큰 자랑거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중 하나였다, 정말 대단해요. 라는 말을 들을때마다 내 어깨가 조금씩 솟아올랐고, 그녀는 그런 나를 다룰줄 아는 정말 천상 선생님이었다.


예술의 예자도 모르는 내가 피아노를 배우다니. 놀랄 노자였다. 배우는 피아노를 연습해보겠답시고 전자피아노도 충동적으로 구매한걸 금방 후회하긴 했지만, 덕분에 조금 늘기도 했고, 띵가띵가 눌러보는 재미도 나름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그만둔다는 사실에 크게 상심했지만, 나 역시 속상하긴 마찬가지였다.

피아노를 배워서 어디에 써먹나? 라는 생각을 한다면, 내게는 어디 써먹을곳이 없다는것쯤은 잘 알고 있다.

내가 어디 대회를 나가서 신나게 곡을 칠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주를 할것도 아니며, 무언가 크게 대단하게 하겠다는 포부따위는 없다. 그냥 하는거다. 처음부터 그랬다. 운동은 정말 싫고, 삶은 무료하고, 그당시엔 책 읽는것조차 싫었고, 그냥 나 자신이 싫었다. 다들 무언가를 열심히는 하는것 같은데 집에 틀어박혀 손에도 맞지 않는 살림을 하려니 이게 뭐하는건가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건 피아노였다. 피아노라니? 초등학생때인지

유치원때인지 몇달 다니고 그만두었던 피아노를 이제와서? 너무 뜬금없긴 했지만, 맘카페 글에 우연히 개인 피아노 레슨이 가능하다는 글을 보자마자 말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심란한 마음과 재정적인 압박 때문에 피아노를 그만두게 된걸 아쉬워한 선생님이 오늘 톡을 보내왔다. 잘 지냈느냐며 마음은 좀 괜찮아졌느냐며. 나는 그녀의 다정함에 새삼 또 아쉽다. 비록 잘 치진 못했어도 유일하게 저 밑바닥으로부터 끌어올려주는, 나라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녀대로 아이들과 성인들을 가르치는 삶이 있었고, 나는 그 삶의 한 부분에 내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깊게 박혀왔다. 잘 지내고 있어요. 선생님 보고싶어요. 라는 톡으로 나 역시 답장을 보내며 인연의 끈이라는게 만들어 지려면 어떻게든 만들어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주 스케줄을 보고 커피 한잔 마시자는 그녀의 말에 나는 좋다고 흔쾌히 대답했다. 금전적인 이유로 그만둔 내가 창피하지만, 이것도 나니까. 나는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는 나의 말에 아쉽지만 더 부담주지 않는, 딱 그만큼의 선을 지켜주는 여자인걸 너무나도 잘 알고있기 때문에 창피하더라도 그녀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창피하다고 말하면 무슨소리냐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말라고 손사래 칠것이 뻔하다.


우리집에 남겨진 전자 피아노를 보며 나는 가끔 그녀가 잘한다 잘한다 했던 곡을 가끔 쳐본다. 엉성하지만 어차피 나랑 집에 있는 우리 강아지만 듣는것이니 민망해도 상관없다. 처분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이유는 다시 또 피아노를 치고 싶어질까봐서이다. 미니멀하게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나에게도 뒤늦게 찾아온 늦바람마냥 피아노를 치는게 썩 내 삶에서 나쁘지는 않다. 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가끔 정말 가끔 아들이 쳐보라는 말에 신나게 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있노라면 내게도 피아노 하나쯤은 사치 부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드는것이다. 한번씩 먼지 묻은 건반을 닦아주고, 전원을 켜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치면 실로 나는 엄청난 예술가가 된 느낌이다! 까진 아니어도 그래도 괜찮아. 라고 이정도도 대견해요. 라며 말해주는 나의 선생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것만 같다.


이렇게 나의 삼십대 중반, 삶의 한 부분에 피아노가 쏙 들어왔다. 참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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