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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Jan 25. 2022

이해 또한 내로남불을 거쳐서 온다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이번에 우리 사위가 백만 원을 부쳤더라구. 맛있는 거 잡수시라구."

"우리 며느린 김장김치에다 보약이랑 오십만 원 보내왔어."


엊그제 휘몰아치던 바람은 잦아들고 흩날려 구석진 자리로 몰려 쌓인 눈이 다 녹을 무렵이었다. 햇볕 따사로운 마을 둘레길을 걸으며 벤치에 앉은 노인 두 분의 대화 아닌 대화를 듣게 되었다. 주민 건강을 위해 마련된 운동기구들이 햇볕을 받으며 따로 놀듯 노인 두 분의 이야기 역시 서로 어우러지기보다는 각자 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십여 미터를 더 걸어가는 동안 노인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랬어, 좋았겠다'라든가 '사위가 효자네', '나도 따라갈까?' '아이고 며느리 잘 들이셨수, 김장 안 보내 주면 사먹어야잖우', '사 먹는 김치 입에 안 맞아' 등 상대의 좋은 일을 일단 축하한 뒤 자신의 자랑 단지를 펼쳐 보여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이제 두 노인은 그게 안 되는 시기로 들어섰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삶이 어느 시기를 정점으로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는 말은 살아오면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기도 하다. 저 노인분들 역시 인생의 정점을 지나 일정 연령의 성장기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상대에 대한 호응 없이 자신의 이야기만을 나열하는 시기 말이다. 





나는 이웃들과의 대화에서도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 편이다. 특히 남들에게 자랑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은 아예 잊어버리고 지내니 입 밖에 꺼낼 일도 없다. 이웃들끼리 차 한 잔 나누는 시간에도 그 자리에 모인 이들 중 누군가는 주로 자기 자랑이나 주변 사람 이야기로 일정 시간을 점령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의 자랑을 펼치는 그 시간이 조금은 불편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하기에 바쁠 뿐만 아니라 시간 내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말도 빠르다는 걸 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이전에도 그랬지만 코로나19 이후엔 얼굴 들이밀고 누구 이야기를 들을 일도, 맞장구를 쳐 줄 일도 없이 그야말로 음식을 먹을 때나 하품을 할 때처럼 일부러 입을 벌리지 않으면 입을 열 일이 더 줄어들고 말았다.  


조금 전 지나친 그 노인들이 행여 상대의 자랑에 찬물을 끼얹기라도 하는 대화를 듣기라도 했다면 내 마음은 또 어땠을까? '요새 백만 원이 돈이야? 그까짓 거 어디다 써?'라든가 '맛있는 거 사 먹으라니. 지들이 와서 맹글어 대접해야 하는 거 아니야?', '며느리니까 오십밖에 안 주는 거야, 딸이라면 그렇겠어?' '요즘은 김치 사 먹는 사람이 더 많아, 까짓 김치 보내온 걸 뭘 자랑이야'...... 자칫 이런 말이라도 들었다면 내 마음이 어땠을까. 


내가 아는 말 많은 이 중에는 이런 식으로 모처럼 누군가가 어색하게 꺼내 놓은 자랑을 확 깎아내리는 이도 있다. 자신의 것은 손녀딸 배설물 하나도 이뻐 죽겠는 이가 다른 사람의 그것은 더럽고 냄새난다고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내로남불이 저 먼 권력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 역시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위가 침향환을 보내왔다. 이번 명절에도 코로나19 변이종이 판을 치는 바람에 찾아뵙겠다는 걸 올라오지 말고 조용히 지내시라고 말렸다. 이런 건 어떠신가 물어보기라도 하면 거의 '괜찮네, 보내지 마시게' 식으로 답을 하는 처가임을 파악했나 보다. 말없이 술이든 건강식품이든 본인이 좋다고 판단이 되면 딸과 의논해서 보내오곤 한다. 


드러내 놓고 이야기할 곳이 없는 나는 주로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이용하여 내 삶의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일들을 기록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말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랑 단지를 꼭 틀어막고만 사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떤 식으로든 나를 털어놓을 수 있으니 사람들과 얼굴 맞댔을 때는 입을 꾹 닫아도 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닐까. 


남편과 함께 며칠 동안 아침 공복에 침향환을 깨물어 미지근한 물에 녹여 삼켰다. 아침으로 치즈 넣어 구워낸 식빵을 한 입 깨물어 먹으며 생각한다.


'우리 사위가 지금 경제적으로 힘들다면 나는 사위를 어떻게 생각할까? 또 우리 딸이 사회적으로 일정한 위치에 있지 않다면 사돈댁에서는 우리 딸을 어떻게 대할까?'


아마 지금처럼 우리 사위를 대하는 게 편하지는 않을 거다. 신혼 시절 친정어머니가 집도 없이 시작한 나를 보고 힘들어하셨듯 나 또한 우리 딸을 엄청 걱정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이라도 내가 우리 친정 엄마를 내로남불로 대했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친정 엄마가 되고 나서야 친정어머니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는 이야기이지만 내 이야기는 내 안에 머물고 만다. 남편에게 털어놓는 순간 남편이 상처를 받을 게 뻔하니 말이다. 





요즘 들어 친정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우리 친정엔 나보다 사위인 남편이 더 정성이어서 늘 감사했으면서도 더 좋은 걸 못 해 드린 게 많이 아쉽다. 사위가 좋은 걸 보내올 때면 더욱 그렇다. 우리 어머님 아버님께도 나는 좋은 며느리라기보다 바른말 잘하는 까칠한 며느리였다는 게 많이 죄송스러울 뿐이다.


내가 마음 깊이 묻고 사는 일 중에 용서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나라면 그 시기, 같은 상황에서 상대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내가 마음 불편하게 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세상일이란 꼭 경험을 통해서 배워야만 하는 건 아니다.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 부끄러운 나를 마주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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